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ㅡ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부르는 마음의 노래

by 하늘나라누리네

기려의 할머니는 신앙심이 깊은 분이었습니다. 할머니의 기대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던 기려도 그 신앙심을 고스란히 내려받았지요. 마음도 약하고 몸도 약한 기려는 밤낮없이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용기를 얻곤 했어요. 친구들이랑 다 튀서 울고 싶도록 속상할 때에도, 무엇인가 마음에 안 맞고 짜증이 나서 마구 떼쓰고 싶을 때에도, 남의 것이 탐나서 가져왔을 때에도, 할머니 목소리가 귀에 쟁쟁 울렸지요.
"우리 금강석이 무럭무럭 자라서 크게 쓰이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그럴 때면 희한하게도 곧바로 마음이 가라앉았어요. 제 잘못이 부끄러워졌고 뉘우쳐졌지요. 두 번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마음 깊이 다짐하곤 했습니다.
"그래, 난 크게 될 금강석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다! 이다음에 나라를 위해 큰 일하는 사람이 될 거다!"

웅진씽크빅. 가난한 이웃을 어루만진 의사 장기려. 2005.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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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뱃속에서부터 다니던 교회에는 오래된 피아노가 한대 있었다. 제대로 피아노를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음악적 감각이 있었던 여자 집사님 한분이 치시던 피아노 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나는 자연스럽게 피아노 곁에서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노래를 부를 많은 기회들을 가질 수 있었다. 위로 5명의 형제들이 있어 우리 집 형편은 늘 좋지 못했지만 막내라는 이점으로 인해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학원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산고개를 넘어 30분을 가야 했지만 늘 동경해 오던 것을 배울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달을 못 갔다. 집안 사정이 안 좋아졌다. 무척 아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피아노를 배워서 교회 예배 때 찬송가 반주를 하던 3살 많은 언니가 한 명 있었다. 아빠의 제안으로 나는 그 언니에게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피아노를 배웠다. 차비 걱정이 없고 레슨비도 반값이었으니까. 그렇게 몇 달을 배웠을까? 바이엘 하권을 채 끝내지도 못했는데, 더 배울 수 없었다. 그 언니가 고등학교 를 진학하며 기숙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도 그 무렵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의 시작점에 있었고 알고 있는 반주 코드 몇 개로 연습을 하며 피아노를 쳤다.


학교 갔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마을 언덕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교회를 지나칠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빠지고 날마다 교회에 가서 서툰 손놀림으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틀린 음을 눌러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나만의 노래와 음악에 푹 빠져 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바깥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한창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더 늦으면 엄마가 걱정하실 것 같다.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나는 아버지께 반항도 많이 하고 그래서 집도 나와보았다. 몇 시간 후 다시 기어 들어갔지만. 아빠와는 TV 때문에 많이 다퉜다. 언제나 아빠의 승리였고 나는 오리입이 되어 토라지는 걸로 끝났기 때문에 싸웠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아빠는 동물의 왕국을 보고 싶어 하셨고 나는 음악프로그램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엄마께 소리를 많이 지르는 떼쟁이였다. 시골학교에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는 한없이 착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지만 내 마음 속에는 아버지를 행한 미움과 엄마를 향한 못마땅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로 가슴이 답답하고 '무엇인가 마음이 안 맞고 울고 싶도록 속상할 때에' 나는 그 교회 피아노 앞으로 갔다. 그리곤 피아노 한음 한음을 누르며 내 울적한 마음과 속상한 마음을 녹여낸다.

'우리 모두 노래합시다.
세상 모든 슬픔 가진 사람들도...'

아! 이 곡은 나를 위해 쓰였구나!
하며 노래한다. 크게 어려운 일이나 슬픈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지개처럼 밝은 빛으로 가득한 것도 아닌 나의 사춘기를 보내면서 그 시절 겪게 되는 왠지 모를 울적함과 반항이라는 질풍의 시기가 피아노 소리와 나의 영혼의 노래와 함께 무사히 지나간 것이다.

지금 우리 집에는 키보드가 한대 있다. 케냐에서 구하기 쉽지 않은 것인데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가 큰 맘먹고 큰 돈 주고 사준 것이다. 나는 남편이 '내 마음 날같이 모르실 이'로 돌변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날에 키보드를 친다. 나는 하루 종일 아이들 돌보고 하루 세끼 밥하느라 힘든 날에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를 보며 남편이 내뱉는 말이 너무 무심하게 느껴지고 얄미워서 키보드를 친다.
아이들이 장난감 하나를 두고 서로 갖겠다고 싸우고 욕심부리는데 먼저 양보하는 사람이 멋진 사람이라고 내가 아무리 말해도 안들을 때는 그냥 참고 지나갔어도 또 조금 뒤 장난감으로 뒤죽박죽인 거실과 김치를 담으려 사놓은 배추가 시들어가는 것을 연속적으로 봤을 때 나는 키보드로 달려간다. 그리고는 힘없이 건반을 누르며 노래를 부른다.

'당신이 힘들다는 걸 알아요.
아픔이 너무 많다는 것도.
위로하기 원해요 감싸주고 싶어요...'

그러면 '희한하게도 곧바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디선가에서 힘이 생겨났다. 다시 사랑하게 하는 힘, 차근차근 다시 해보고 싶은 힘이 생긴다. 어떻게 해? 가 아니라 천천히 하면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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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한식 공모전 결과를 보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당선되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라 당선작 심사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글쓰기가 싫어졌는데 시간이 약인가 아니면 브런치 북을 출간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건가.

어쨌든 글쓰기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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