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로(中谷 宇吉郎, 1900-1962)의 《과학의 방법》은 ‘과학’이라는 개념을풀이하며 과학과 과학적 사고의 경계를 알려주는 책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이 과학 활동에서는 절대적이지만 과학자 사회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가령 과학 논문에 대한 과학자들과 저널 편집자들의 평가에는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새로운 데이터에서 얻은 과학 지식 그 자체뿐만 아니라 학계의 최신 유행과 저자의 명성 등이 반영된다. 게다가 과학자 또는 관련 업계 종사자가 과학 논문을 비과학자들에게 소개할 때는 기업의 상품 광고에 버금가는 선전 기술이 동원되기도 한다. 특히 그런 활동이 연구비나 명성과 관련되어 있을수록 그 경향성은 더 심해진다.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구성원이 과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는 않더라고 과학이 어떤 학문이고 과학적 지식이 어떠한 지식인지를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사람들은 “과학의 힘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게” 되고, 이는 결국 사회의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책의 첫 장은 ‘과학의 한계’다. 사실 과학뿐만 아니라 어떠한 학문에도 '한계'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데, 그런 말에는 말하는 이의 흑심(?)이 들어있기 때문이다.한계란 말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다. 그런데 과학이라는 학문이 인격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격을 가졌다고 해도 과학의 대상이 아닌 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만무하다. 예컨대, 대한민국 사람으로 계속 살고 싶은 나에게 누군가 다가와 ‘유대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너의 한계야’라고 말한다면 웃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결국 과학을 하는 사람이 과학으로 과학의 영역이 아닌 것에 놓여있는 문제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을 때, 흑심을 품고 과학의 한계라는 말을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나카야 우키치로도 독자들이 혹시 갖고 있을지 모를 과학에 대한 착각을 바로잡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 자극적인 말을 사용하고 있다.
어쨌든 나카야 우키치로는 과학을 “재현 가능한 현상을 자연계로부터 뽑아내서 그것을 통계적으로 규명해 가는 학문”이라 규정하며 과학의 경계를 더듬는다. 언뜻 이해하기 쉽고 당연해 보이지만 의외로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도 꽤 있다. 가령 재현 가능하지 않은 자연계의 현상은 무엇이고 여기에 대해서는 과학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가? 그럼 재현가능하지 않는 천재지변이나 각종 사건사고 등에는 과학이 해줄 말이 없는 걸까? 예컨대 10·29 이태원 참사나 일본의 오염수 방수 같이 재현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 과학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일까? 만약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나카야 우키치로는 책 전반에 걸쳐 이렇게 당연해 보이지만 막상 적용할 때 애매해지는 과학 관련 개념들을 아주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 그는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자연의 실체가 점차 깊이 있게 이해된다는 표현에 대해서”, “과학이 계속 진보한다면 생명과학의 전부를 해명할 수 있을 거라고 할 때, 바로 그 ‘전부’라는 단어의 해석에 대해서” 서술한다. 이 질문들에 대해 명료한 대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과학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받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과학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도 유용하다. 일본 특유의 문체가 강하게 느껴지기는 하나 서양 저술의 엉성한 번역에 비한다면 그러한 번역체로 인한 고역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많은 예시를 들며 상술하기 때문에 읽기 편하면서도 이해가 풍부하게 되고, 독자는 그의 의견에 자신의 생각을 쉽게 대질할 수 있다. 모두에게 권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