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깍쟁이의 신혼일기(1)
'자기야! 나 당첨됐는데?'
'응? 나도.... 근데 자기가 어떻게 당첨됐지?'
이 대화는 바보 둘의 대화이다.
(이 일화는 개인적으로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혹여나 나와 같은 일을 겪는 분이 있을까 하는 노파심에 써본다.)
결혼 전 남편이 2년 정도 살고 있던 경기도 A시의 아파트 청약소식을 듣고 부동산의 ㅂ도 모르는 둘은 근사한 브랜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방문 후 내 집마련이 코앞인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남편 - 분양가격도 나쁘지 않은데 청약 넣어볼까?
나 - 그럼 혹시 모르니까 공부 삼아 나도 넣어볼까?
(과거의 나 제발 멈춰...)
자 처음 대화로 돌아가보자.
그렇다. 임장은커녕(남편이 같은 시에 살아 아주 가끔 그 근처를 지나가본 게 다였다.) 그저 모델하우스방문과 입담 좋은 청약담당자와의 상담으로 내 집마련의 현실화를 꿈꾸며 청약신청을 하였고, 사이좋게 당첨된 것이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남편은 하루빨리 내 집마련을 하고 싶어 했지만 나의 경우 한국의 부동산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입장으로(대충 아는 것이 제일 무섭다.)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조금도 아닌 아주 큰돈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무리 은행대출서비스가 있다고는 한들 구체적인 대출상환 계획 없이 진행한다는 건 너무 무모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원하고 있고, 설마 (청약점수가 현저히 낮은 남편과 서울에서 30년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는 나, 심지어 신혼부부특공도 아니다.) 우리가 당첨되겠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청약 신청을 했다. 당시 부동산시장에 피바람이 불고난 직후였고 서울을 제외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신축아파트의 청약미달이라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며 들려오던 중 청약미달아파트의 당첨자가 된 것이다.
그렇게 당첨이 된 우리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그제야 처음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왜 미달이 났는지, 이 아파트의 메리트는 무엇인지, 이 지역에서 시작해도 되는 것인지 등등
청약 넣기 전 무수히 많은 정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찾아보지 않았던 것인지..
여러 가지로 복잡한 마음만 가진채 바보 같은 우리의 선택에 책임져야 할 현실은 다가오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청약미달아파트를 포기하고 공무원인 남편이 결혼식 전 급하게 넣은 공무원아파트에 당첨되어 신혼집을 해결할 수 있었다.
다만 청약포기의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지금은 청약통장의 열풍이 조금 식었지만 국민 대부분 가지고 있을 청약통장이 깨졌고 10년 동안 투기과열지구의 아파트에 청약당첨제한이 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했다. 청약이라는 제도는 평생 내 집마련을 꿈꾸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 먼 이야기일 뿐 부동산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덤벼들기엔 어려운 영역이라 생각이다. 또 무리하게 집을 마련하는 것이 과연 내 행복과 이어지는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원영적 사고회로를 돌려 적어도 10년 동안은 청약에 대한 욕심 없이 공부하며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참 웃픈 사실은 청약포기 이후 우리에게 가장유리한 청약제도가 신혼부부특공이지만 국가에서 인정하는 신혼부부는 혼인 신고 후 7년간으로 지금 혼인신고를 해버리면 신혼부부특공에 넣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혼인 신고 이냐 청약 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딜레마에 빠져 법적 부부가 되고 싶지만 되지 못하는 웃픈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