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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윤 Aug 18. 2020

우주의 외딴 섬, 벙커 이야기

뮤지컬 로빈

갑자기 시작된 코로나 시국으로 공연들은 취소되고 연기되기를 반복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여러 번을 연기한 공연이 있었다. 그 공연은 음원을 먼저 공개하고, MD 상품을 선판매 하는 등 공연을 꼭 올려줄거란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했다. 심지어 참여하는 배우들도 한 팀이 된 것 같았다. 유독 그런 인상을 받았던 공연 로빈이었다. 


로빈은 뮤지컬 속 인물의 이름이다. 그는 루나라는 16살 소녀의 아버지로 로봇 집사인 레온과 함께 방사선으로 뒤덮인 지구를 탈출해 우주의 벙커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천재 과학자라 코딩으로 뭐든 설정할 수 있고, 5년 분량이라곤 했지만 10년을 벙커에서 살 준비까지 한 철저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꼼짝도 못하는 것이 딸인 루나였다. 심지어 그는 딸을 키우는 것은 시스템 오류같다고 말한다. 사춘기를 맞이해 자신에게 소리지르는 딸을 어쩔 줄 모르는 그에게 지구 귀환을 앞두고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다.


이 작품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아빠와 딸의 이야기에 우주와 미래까지 필요한가? 너무 거창한 것 아닌가 싶었다. 물론 처음 볼 때는 저 레온이란 로봇이 배신하는 걸까? 아니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복제인간을 만든 저 로빈에게 복제인간이 반기를 드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단순히 일밖에 모르는 아빠와 슬픈 딸의 일탈 이야기일까 여러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정답은 아니었다.


로빈 또한 복제인간이었고, 그를 만든 것은 인간 로빈이었다. 아직 6살밖에 되지 않은 딸을 위해 스스로를 복제인간으로 만들었고, 그 수명은 10년. 로빈이 벙커에서 루나와 지낸 시간 또한 10년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그를 이을 복제인간 뉴빈을 만들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고, 그는 뉴빈이 어떻게 하면 루나의 좋은 아빠가 될지를 고민한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기억이다. 처음 로빈을 만든 인간 로빈은 마음은 기억에서 나오는 것이라 말하며 자신의 기억까지 로빈에게 이식했다. 그렇게 자신이 복제인간인지도 모르고 루나의 아빠로서 살아온 사람이 로빈이었다. 로빈은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을 알게된 후 뉴빈을 만들고, 루나에게 우주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자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이 사실들을 기억하고 전달하는 레온이 있다.


이 극은 기억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말한다. 마음을 만들어내는 기억, 추억으로 남는 기억 그리고 기억은 개체를 구분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기억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 작은 벙커 속 세 인물은 여러 기억 속에 서 있다. 로빈과 레온이 애지중지하며 10년간 우주에서 성장한 루나는 로빈이 준 마지막 선물을 보고 이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갈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 것은 새로운 아빠인 뉴빈이다. 그녀에게 좋은 기억을 주고자 로빈은 우주로 나갔다 세사람이 지구로 떠난 뒤 텅 빈 벙커로 돌아온다. 그곳엔 10년간의 기억으로 가득한 루나의 방이 남아있고, 뉴빈이 남기고 간 루나의 선물이 남아있다. 


처음 이 극을 보고 나는 다음날까지 울었다. 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고일 정도다. 기억과 가족이라면 정말 온갖 매체를 통해 여러 이야기가 가득할텐데 이렇게 사람을 펑펑 울리는 극은 뭔지 모르겠다. 좀 더 생각하면 복제인간의 윤리적 문제와 이 상황을 모르는 루나라던가, 우주에 남겨진 로빈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기억 외에도 희생에 대해, 가족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극이다. 그러면서도 무대 곳곳의 색채는 선명하고 아름다운 발랄한 색으로 가득하다. 분명 루나를 생각하는 로빈의 마음이 전해져 관객도 함께 루나의 행복을 바라고 함께 행복해지고 싶은 것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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