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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Dec 22. 2023

펜션 사장이 되고 싶은 나정만 씨 - 2

제주도로 온 이유는 소비를 덜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곧 일을 덜 해도 된다는 뜻이다. 지리산 자락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면 자급자족도 가능했겠지만, 평생 도시에서 살아온 아내와 아들에게 그건 비현실 적인 이야기였다. 제주라면 흔쾌히 받아들일 것 같았다.


“제주도 가자. 이 집 팔아서 대출 정리하고, 남은 돈이랑 퇴직금 합치면 펜션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책과 음악이 있는 펜션 어때? 요즘은 뭐든 개성이 확실해야 하거든. 마당에는 잔잔한 바흐의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고, 조식으로 갓 구운 따끈한 베이글과 머핀을 제공하는 거야. 당신 빵 굽는 거 재미있다며. 요즘은 SNS 시대잖아. 타깃층과 컨셉이 확실하면 금세 자리 잡을 수 있어. 어때?”


아내는 웃었다. 네 잔 째 와인에 불그스름해진 얼굴은 ‘인생 뭐 별거 있냐’ 고 말하는 듯 가벼워 보였다. 징조가 좋았다.


“아 좋다. 제주도… 빵 굽는 펜션…. 바닷가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앞으로 딱 10년만 고생하면 우리한테도 그런 날이 오겠지?”

“무슨 소리야. 나는 지금 당장 가자고 말하는 거야. 당장. 롸잇나우! 오케이?”

“하하하. 오케이. 오케이. 근데 회사는?”


취했구나.


“그만둔다고 했잖아.”

“왜?”

“제주도 가려고. 가서 펜션 하려고.”

“아… 그렇지! 근데, 자기 회사 잘렸어?”


아내는 취기가 올라 횡설수설하는 와중에도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만큼 피곤한 일은 없다. 그래서 그냥 쉬운 방법을 택했다. “응. 곧 잘릴 것 같아. 사실, 거의 잘렸다고 봐야 해.”


다행히 아내는 자세한 내용을 묻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는 내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배려심이 많은 여자다. 꼬치꼬치 묻고 싶은 게 많아도 내 자존심을 다치게 할까 봐 잘 참아 낸다. 침대에 앉아, 셔츠의 단추를 채우고 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아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자기야. 억지로 버티지 말고 품위 있게 그만둬.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나는 괜찮아. 제주도 가서 사는 것도 좋고. 빵 굽는 펜션도 좋고. 정우도 작은 시골 학교 보내자. 생각해 봤는데 나 너무 기대돼.”


SNS를 열심히 하는 아내는 그날 바로 프로필 이름을 ‘곧 제주댁’이라고 바꾸었다. 아내의 추진력이 고맙고 사랑스러우면서도, 그 경망스러움에 약간의 짜증이 올라왔다. 두려움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출소를 앞둔 죄수가 이런 기분일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공포가 한 덩어리가 되어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느낌.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온 지 1년째다. 경망스러운 줄 알았던 아내는 무척 신중했다. 경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며, 근방의 펜션 주인들을 다 만나고 다녔다. 아내는 마치 펜션을 하지 말아야 할 100가지 이유를 수집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직원을 쓰면 되지 않냐고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좀 덜 가져가더라도 최대한 사람을 써서 내 시간을 확보해야겠다.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제주도에 온 건 좀 덜 벌더라도 여유롭게 살고 싶어서 온 거니까. 근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라는 거지. 제주도에 온 사람들은 다 워라밸이 중요해. 그런 사람들이 밤낮으로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일을 월급쟁이로 하겠어요? 24시간 리셉션 직원을 돌리는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닌 이상, 결국 5분 대기조는 사장이 직접 다 해야 돼.


청소하는 사람은 구하기 쉬운 줄 알아요? 조금 일하다가 금세 그만두지, 일당으로 오는 사람들 맡겨봐야 엉망으로 해 놓고 가 버리면 그만이지. 누구를 시켜도 사장이 직접 확인하고 마무리는 또 해야 한다고. 그렇게 안 하면 전화 오니까. 요즘 사람들 까다롭기가 보통이 아니에요. 머리카락 하나 나오면 난리를 치면서 인터넷에 올린다느니 어쩌느니. 아휴. 말도 마요. 후기로 사람 협박하는 진상 만나면, 뻔한 속셈이 눈에 보여도 그냥 환불해주고 말아야 돼. 같이 붙어 싸우면 몇 날 며칠을 속 끓여야 하니까.


아,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죠. 조용히 있다가 집을 쓴 것 같지도 않게 깨끗이 해 놓고 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대화가 잘 통해서 술친구가 된 단골손님도 꽤 있고. 좋은 추억 쌓았다고 돌아가서 선물까지 보내주고, 그런 분들 만나면 참 고맙죠. 그런데, 손님 열 명중 한 둘은 꼭 진상이고, 그 한 두 사람 때문에 솔직히 인간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니까. 그게 이 업이에요.”


우리는 아마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펜션 사장만 만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차별화된 개성과 확실한 소신이 없이, 단순한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 펜션을 운영하며 불특정 다수의 손님들에게 스스로 갑의 자리를 내어 주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스스로가 노예 같으면 그만 두면 될 일이지, 선뜻 그러지도 못하면서 불만만 잔뜩 늘어놓는 꼴이라니.


귀 얇은 아내의 두려움이 커가는 동안 우리는 야금야금 통장의 돈을 까먹고 있다. 마음이 바뀌어가고 있는 아내도 문제지만, 집을 아직 팔지 못 하는 것도 문제다. 사실 팔 기회가 몇 번은 있었는데, 아내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며 고집을 피웠다. 장사를 아무리 잘한 들 결국은 부동산 만한 것이 없다며, 월세 따박 따박 들어오는 집을 급하게 팔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대출 이자 오른 건 생각을 못 하는 건지. 아내의 단순함이 답답했지만 반문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돈을 까먹고 있는 책임이 100% 내 탓은 아닌 게 되니까. 



*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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