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섬세하게 주변을 살피지 못할 때가 있다.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기도, 무심코 내 뱉은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내 의도야 어찌 되었든, 상대방이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상처를 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지불식간에 누군가의 미움을 사기도, 적이 되기도 한다.
'사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풀어주면, 적이 되는 일까지는 없을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더라.
특히, 어려운 건
상대방의 상처에 내가 공감하지 못할 때.
한마디로, '이게 그렇게까지 반응할 일인가?' 싶을 때.
사소한 농담으로 던진 말에 상대방이 화를 내면, 그도 상처받지만 나도 화들짝 놀란다. 상대가 예민한 걸 수도 있고, 내가 무딘 걸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서로 불편해진다. 몇 번이야 사과하고 넘어갈수 있지만, 그게 반복되면 그와 편한 관계는 되기 어렵다. 남은 질문은 이거다. '내가 좀 더 조심할 것인가?' '자꾸 불편해지는 그를 멀리할 것인가?'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내가 좀 더 조심하는 편을 택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즉시 사과하고, 그 일을 통해 배우고, 다음엔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민폐를 끼치거나,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내 딴에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싫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늘 생겼다.
그럴 때마다 '나 그런 사람 아니야.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라는 둥의 해명을 하고, '어쨌든. 죄송해요. 다음엔 좀 더 주의하겠습니다.'하고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느라 진이 빠졌다.
그 결과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점점 피곤해졌다. 그것보다 더 큰 부작용은 자꾸 나를 자책하게 되는 것, 내가 나에 대해 불만이 많아지는 만큼 타인에 대한 불만도 커져가는 것이었다.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자꾸 불편해지는 관계라면 당분간 거리를 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해버린다. 서로 다른 기준을 맞추려고 애쓰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척하느라 거짓 웃음을 짓는 대신 '아 저 사람은 저렇구나.' '나랑은 세계관이 다르구나.' 하고 말면, 관계가 부담스러울 일도, 서로를 미워할 일도 없을 테니까.
당분간… 이리는 표현은, 내 생각도 상대방의 생각도 변할 수 있음을 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맞지 않는다면 일단은 빠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배려'일까? '관용'일까?
둘 다 필요하지만, 나는 '관용' 쪽에 더 무게를 싣고 싶다. 배려는 주관적이라 하는 사람 마음과 받는 사람 마음이 다르다. 나는 하느라고 했는데, 상대는 '배려'가 없다.라고 나를 비난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폐를 끼치게 되었을 때,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정신이 좀 없었나 보지.'라고 생각하는 '관용'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사회라면, 조금 덜 긴장하고 덜 외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없으니,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만 남기고 싶다. 덜 예민한 사람들, 대충 넘어가는 사람들과 적당히 민폐를 주고받으며 맘 편히, 사람 냄새나게 살고 싶다. 그러니 나와 함께 힘빼고 어우렁더우렁 살고 싶으신 분들은 우리 마을로 오시길
2025. 11. 26
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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