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자격

by 김부슬

그렇다. 우리 아이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이 글에 무형의 형태로 혼재할 것이다. 그 점을 수긍한 채로.


연말이 다가온다. 여느 유치원이 그렇듯 아이의 유치원에서도 해마다 발표회를 한다. 유치원의 최고참 연령인 7세반 친구들은 짤막한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공연이야 예술 행위임이 분명하나, 이 예술은 아마도 배역 선정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누가 어떤 배역을 맡을 것인가. 이 질문은 성공적인 뮤지컬 공연을 만들어가야 하는 감독으로서, 아이들의 성장과 교육의 책무성을 지닌 교사로서, 선생님에게 쉽지 않은 난관 중 하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 첫머리에서 암시한 바와 같이, 우리 아이는 주인공을 맡게 되었다. 엄마 입장에선 어깨가 으쓱할 일이다. 그런데 아이는 처음부터 주인공 역을 희망하지는 않았다. 배역을 결정하기 전, 아이는 주인공 옆 조연 역을 마음에 두고 있었노라고 귀띔해 주었다. 약간의 의견 조율과 선생님의 설득으로 덜컥 주인공을 맡게 된 것이다.


예전에 읽은 어떤 글에서 비슷한 일례를 접한 적이 있다. 그 글의 글쓴이는 타지(아마도 미국이었던 것 같다)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국인 엄마였다. 아이의 학교에서 연극 공연 배역을 정하는 일이 있었는데, 동양인의 외모를 가진 자신의 아이가 혹여나 주요 배역에서 원천 배제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며 기민하게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는 내용이었다. 교실이라는 세계에서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위치성은 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쉽게 반영되어 버릴 테니, 상대적 약자의 자리에 놓인 자신의 위치를 인지한다면 위상과 배분의 문제에 더 예민해질 수 밖에 없을테니. 어찌보면 불필요해 보이는 걱정거리에 노출된 글쓴이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다시 나의 자리로 시선을 옮겨보자면, 한가지 확실한 건 우리 아이는 약자의 위치는 아니다. 오히려 자타공인 모범생이다. 학기 초부터 교실의 규칙과 원칙, 약속을 솔선수범하여 지키고, 이를 어기는 친구들에게 바른말을 하는 일종의 꼬마 선생님 역할을 자처해왔다(고 들었다). 선생님의 권위를 확장하고 재생산하며, 두터운 신임을 확보해 왔다. 나는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현장에서 면밀히 관찰한 적이 없으므로, 교실 내 아이들의 위상과 권력 관계를 쉬이 넘겨짚는 것은 어쩌면 오만이다. 다만, 아이의 유치원에 있는 다양한 아이들을 떠올려본다. 정서적, 인지적 어려움이 있는 아이도 있고, 소위 다문화라고 지칭되는 외국 국적을 가진 아이들도 꽤 있다. 이 아이들은 교실 세계에서 어디에 있을까.


누가 주인공을 맡을 것인가.

누가 주인공을 맡을 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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