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극장이 문을 닫는다
<안녕, 서울 극장>
스무 살이 되도록 동대문에도 한번도 나가보지 않을 만큼 좁은 생활 반경 속에서 살았다. 학교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나가는 곳은 버스나 지하철로 20분 내로 갈 수 있는 부근의 쇼핑몰이 전부였고, 거기만 나가는 것도 큰 맘을 먹고 나가 하루 연습을 절반 이상 건너 뛰는 날이었다.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팥이 많이 올라간 빙수만 먹어도 황홀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패션 쇼핑에 통달했던 미술과 패션 전공인 친구A의 손에 끌려 낯선 시내로 나갔다. 동대문 쇼핑몰 안에서 매번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구경하는 나를 두고 매대에 앉은 주인들은 혹시 제주도에서 온 관광객인지, 아니면 일본인인지 물었다. 광화문과 교보문고, 씨네큐브, 세종문화회관이나 대학로의 극장은 이따금 부모님과 함께 가보았지만 동대문 쪽은 처음이었다. 쇼핑몰 사이사이 들어선 노점에서 파는 핫도그와 호떡 냄새에 저거 먹고 갈까, 기웃거렸는데 친구는 우선 쇼핑몰을 빨리 돌아야 한다며 내 소매를 잡아 끌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잘 아는 친구 덕에 모르던 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던 외출이었다.
좋은 영화들을 매번 미리 챙겨보고, 기차를 타고 전주국제영화제까지 영화제 기간에 직접 다녀오는 B는 멋을 아는 사람이었다. 친구가 약속 장소를 서울 극장이라고 잡은 덕분에 나는 그곳에 처음 갔다. 서울우유의 ‘서울’ 처럼 상호가 붙은 ‘서울’ 극장이라고? 근처에 지금은 사라져버린 또 다른 예술영화극장이 있었고, 홍차를 딱 맞춰 우려서 내 주는 카페가 멀지 않았으며 3개의 노선이 지나가는 종로 3가 역은 출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복잡했다. 아무 출구로나 나와서 어떻게든 가보려던 나는 방향 감각을 잃고 두리번거렸다. 공간 지각 능력과 방향 감각이 별로 없는 나 같은 사람은 탈 것만 바뀌어도, 위치에 대한 감을 잃는다. 그 근처에 조금만 걸으면 종종 갔던 을지면옥이 있다는 것도, 조금만 더 가면 우래옥이 나온다는 것도 까맣게 몰랐다. 북쪽으로 걸어가면 인사동 도입부라는 것도 몰랐다. 그렇게 처음 갔던 서울 극장에서 인생의 영화라고 할 영화를 만났다.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마음이 여렸던 시절이라 너무 많이 울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찌어찌 부은 눈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도 영화를 본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고,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블로그에 긴 글을 썼다. 원작 단편을 열심히 찾아 읽으며 복기하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일 년에 열 번, 열 두 번쯤 이렇게 우리의 내면을 뒤 흔드는 영화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 건물인 허리우드 극장에 들어가 있던 시절이었다. 이후로 사는 도시를 옮겼고, 쓰는 언어를 바꾸었고, 이어서 전공까지 달리한 이후에 거의 10년만에 다시 서울에 왔을 때에는, 서울 극장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옮겨가 있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라는 영화제가 있었고, 인터뷰를 통해 만났던 존경해 마지 않는 감독들이 함께 보고 싶은 영화들을 골라 소개를 했다. 늦 겨울의 어느날, 나는 내가 만났던 감독님 덕분에 인생의 영화라고 할 만한 지난 세기의 걸작들을 더 만날 수 있었다. 마틴 스코세지 감독님이 아니었더라면 복원이 안 되었을 놀라운 영화를 만난 날은 새벽이 되도록 가슴이 벅차 어쩔 줄 몰랐다. 자끄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를 이렇게 영화로 구현해 내다니... 복원된 영화 속 색감과 미술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고, 당시 런던 로열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가 주연을 맡아 선보인 '인형의 노래'에 맞춘 그랑 푸에테 앙 투르낭의 강렬함과 그걸 담아낸 현란한 촬영 기법...불과 2년 전,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소프라노 조수미가 선보이는 현존하는 최고의 콜로라투라 기교를 통해 실연으로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로지 음악으로만 가능했던 그 찬란한 경험에 발레리나의 푸에테가 겹쳐지는 것은 제 7의 예술인 영화이기에 가능한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 뒤로도 자끄 드미, 비스콘티, 아녜스 바르다의 대표작들을 보러 서울 극장에 갔다. 인터뷰이로 만났던 감독님들의 초대로 GV에 가고 뒤풀이까지 합석하는 운좋은 날들도 그 시작은 모두 서울 극장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영화 매거진에 이미 당도한 걸작이라고 리뷰를 쓴 영화의 제작자를 만나는 행운도 모두 서울 극장에서 닥쳐왔다. DVD추가 영상 인터뷰로만 접했던 영화 제작자를 눈앞에 두고 떨리는 마음과 신기함을 감추느라, 유쾌한 영화 현장의 에피소드를 듣느라 술을 마시지 못하는데도 그 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서울 극장이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꿈 같은 행운이었다.
이 극장이 이제 8월을 끝으로 사라진다. 나처럼 씨네필도 뭣도 아닌, 그저 훌륭한 영화를 만나면 설레고 떨리고 울컥해지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간 쌓인 기억으로 인해 한없이 특별한 장소인데, 영업을 종료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 일까. 수 없이 서울 극장 앞에서 개봉작의 관객 반응을 초조하게 살펴보았던 영화인들은 대체 지금 어떤 심정일까.
사위가 어두운 극장에서 두 시간 넘게 꼼짝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것은 OTT로는 흉내낼 수가 없지만,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이 대안은 대안이 아닌 대세가 되었다. 이렇게 극장이 사라지면, 이 장소에 다시 발 디딜 때마다, 서울 극장 부근을 어슬렁 거리며 다음 회차 영화를 기다릴 때마다 아지랑이 처럼 피어오르던 내 기억들은 다 어디로 갈까. 내 인생의 영화들이라고 꼽을 만한 걸작들도, 펑펑 울고 있던 나에게 건네던 휴지와 생수를 내밀던 친구의 이십 대 초반 앳된 얼굴도, 그냥 이렇게 사라지는 걸까.
8/31일 전까지 몇 번 더 서울극장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