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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ne Unsterbliche Jul 09. 2021

브런치에 글 쓰세요?

때로는 말귀가 어두워서 다행이야

팬데믹으로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는 일상을 이어오고 있지만, 종종 따뜻한 음식이 있는 자리에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라면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자리에서 나는 종종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리거나 혹은 평론가, 라고 지칭이 되고 책도 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90%는 이렇게 나를 소개 받은 초면의 사람들이 되묻는다.

"브런치에 글 쓰세요? 출간도 그럼 거기서?"

뉘앙스와 분위기는 조금씩 미묘하게 달라지지만 이 말이 주는 의미를 알아차리는데 도움이 된 것은 그 생면부지의 이들에게 나를 소개한 사람들의 표정이 이 질문을 듣자마자 이어서 묘하게 바뀌는 것과 

부연 설명을 길게 하면서 그게 아니라, 는 답변을 하는 것을 여러번 목격한 이후였다.

업무적으로 통역이나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아닌, 적당히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은 상태로 있는 평상시의 나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곧이 곧 대로만 듣고 이해하는 버릇이 있다. 

"언제 한번 밥 한끼 먹어요." 가 그저 인사치레 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수년이 걸렸으며,  어떤 제안에 대한 분명하고도 정중한 거절이 없이 무응답 혹은 회피와 딴청을 부리는 것도 또다른 방식의 완곡한 거절이라는 것, 사람에 대해 호감을 표시할 때에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행동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알기까지도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서울에서는 서울의 룰, 한국어로 말할 때에만 통용되는 룰이 있었다.

나는 근 십여 년간 적응할 새도 없이 늘 떠나야만 했고, 올 때마다 새로운 지하철 노선이 생겼거나 새로운 빌딩이 훌쩍 들어서 있는 이 곳이 낯설어 얼마쯤 헤맸고, 떠나는지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숱하게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문화권이 다른 곳에서 내가 너무 오래 살았거나, 모든 것을 언어로 분명하게 표현해야만 하는 상황에 오래 놓여 있으면서 생긴 버릇이라고 여겼다. 또렷하지 않은 상태로도, 일종의 암묵적인 함의만 가지고도 일종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서울에는 길어야 몇 주 있다가 다시 돌아갈 테니까, 어떤 말을 듣더라도 그 함의를 굳이 생각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게 부정적일 때에는 더욱 그랬다.


책을 출간한 이후 만나서 직접 초판 1쇄를 사인과 감사의 손편지와 함께 전달하려고 만나 내가 밥을 사는 자리에서 

"너 그런데 이런거 하면 돈 얼마나 버니?" 소리를 하는 A의 다분히 속이 보이는 질문을 들었을 때에도 대수롭지 않게 답을 하려다가 하마터면 인세와 초판 부수를 다 털어놓을 뻔 했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 자리에 합류했던 다른 B가 먼저 다소 화난 목소리로 그런 걸 물어보는 건 경우가 아니라고 해서 A의 호기심은 결국 충족되지 않고 지나가기도 했다. 


작가라고 소개가 되었을 때, "브런치에 글 쓰세요?"가 상대의 경제력을 가늠하기 위해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교통수단)" 라고 묻는 것과 비슷한 질문이라는 걸 나는 한참 나중에 알았다. 


브런치가 뭐 어때서?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간지나 다른 매체의 지면과 차이가 있다면 편집을 맡아줄 담당 기자나 에디터가 없다는 것인데, 그만큼 한없이 더 자유롭고 마감이나 분량이나 스타일에도 제약이 없으니 그 또한 장점 아닌가. 

"브런치에 글 쓰세요?"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브런치를 열어둔 상태라서 또 그렇다, 라고 대답했던 적도 있었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 쓴다고 간신히 눈썹만 그리고 다니고 있는데, 철없이 대학가의 카페에서 알아서 먼저 학생 할인을 해준다고 (학생증이 없는데도!) 카페라떼를 절반 가격에 마신다고 신나서 헤헤거리던 성격이 어디로 안 가겠지. 

딱 원하는 만큼 원하는 지면에 글을 쓰게 된지 이미 수년이 흘렀고, 지면의 성격이나 매체를 따져 보는 편이라 거절도 적지 않게 하기 때문에 나는 브런치에 글 쓰는 일에는 영 게을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브런치에 글 쓰는 건 성실하고 꾸준하고, 스스로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강렬한 창작 동기와 에너지를 지닌 작가라서가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초면의 누군가가 대뜸 브런치에 글 쓰세요? 물으면 더 씩씩하게 네, 라고 답해야겠다. 게으름은 잠시 내려두고 매주 하나 혹은 둘 씩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뭔가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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