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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ne Unsterbliche Jul 09. 2021

베를린에서 만난 정성어린 음식

파리와 베를린의 겨울

  습도가 높은 파리의 겨울은 유난히 으스스하고 스산하다. 노란 조끼 시위대로 교통이 온통 마비되었던 어느 겨울은 더 그랬다. 잔뜩 화가 난 시위대들은 온 몸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끓어 오르는 분노가 넘쳐 흘러 샹젤리제 대로 변 상점과 은행 지점의 유리창이 부서졌고 요란한 보안 업체의 경보음이 울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빈 상점을 부수고 들어가 강도가 되기를 서슴지 않았다. 가르니에 오페라 부근에서는 자동차에 불이 붙기도 했다. 치안이 나빠지면서 좀도둑과 강도들이 기승을 부렸다. 대낮에 사람을 주먹으로 때리고 스마트폰을 훔쳐 달아나는 걸 눈앞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흉기로 위협하는 세 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여 들고 있던 모든 물건을 빼앗겼다. 성년의 날 기념 선물이었던 핸드백, 취업 선물로 받은 만년필은 물론 스마트폰과 아끼던 지갑까지 모든 것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충격도 컸지만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을 때 겪은 경험은 불쾌함 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요즘 같이 어수선한 시기에 이런 건 신고해 봤자 보험 처리나 되면 다행이라는 담당 조사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절대 그들을 못 잡는다, 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마음이 자꾸 무너져 내렸다. 간신히 집에 돌아와 며칠 동안 침대에 누가 내 몸을 침대에 꿰매 붙여놓은 것처럼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로 끙끙대며 앓았다. 며칠 병가를 내야 할 만큼 아픈 와중에 수면 유도제 없이는 잠에 들지 못했고, 어찌어찌 간신히 잠이 들기까지 천장에서 흉기가 목에 겨눠졌던 순간이 영화처럼 반복되었다. 간신히 업무에 복귀해 일상을 살아갔지만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칼날처럼 치밀어 올랐다. 수면 유도제와 처방 받은 신경 안정제,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알러지 반응을 눌러줄 항히스타민제까지… 약에 의존해 일주일을 버티고 나면 주말이 왔다. 주말에는 커튼을 내린 어두운 방에서 과일 주스와 탄산수만 마시면서 내리 잠만 잤다. 곧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될 시점이었다. 출장으로 떠났던 보르도에서도 다시 한번 시위대에 둘러싸여 고속도로가 마비된 상태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다음날, 베를린에 사는 친구가 연일 보도되는 프랑스 소식을 접하고 근황을 물어왔다. 음식 솜씨가 남다른 친구가 나에게 통화 중에 괜찮느냐며 뭐 따뜻하고 든든한 거 먹었어? 물어왔다. 그 목소리에 잠깐 울컥해진 나는 거의 충동적으로 베를린 출장 건을 떠올리고 항공편을 예매했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 시위대로 또 한번 교통이 마비된 파리에서 대중교통 말고는 공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입고 있던 패딩의 가슴 주머니 단추가 떨어지고 가죽 가방이 크게 긁힐 만큼 아비규환인 메트로와 외곽전철에서 사람들에 치이고 부대끼며 공항에 도착했다. 끔찍하게 추위를 타는 내가 12월에 베를린이라니, 어딘가로 떠나든 이곳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이 나를 베를린으로 이끌었다. 베를린 공항에서 친구가 알려준 주소로 향하는 택시를 탄 이후에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도시가 마비되지 않고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기능하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서베를린의 조용한 스튜디오를 빌려준 친구는 이거 그리웠지? 라면서 노르스름한 빛깔이 섞인 한국 부사를 몇 알 내밀었다. 한입 베어먹자 달큰한 향과 사각거리는 과육이 입안을 채웠다. 친구는 독일에서 이렇게 한국 농작물이 재배가 된다면서 몇몇 채소들의 이름을 읊었다. 뛰어난 작곡가인 친구는 아마 요리사를 했더라도 대성했을 것이다.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은 그 빼어난 음식 솜씨에 감탄하기 바빴고,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몇 해전 추석 즈음에 내가 베를린에 왔을 때, 친구는 손이 많이 가는 명절 음식이 한 상 차려주었다. 갈비찜, 잡채, 불고기, 해물파전, 물김치를 포함한 몇 종류의 김치, 나물들까지… 20대를 다 보내버린 유학 생활 내내 나는 한국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왕복 항공료와 한국에 다녀오는 비용이 주는 부담감 탓이 아니라, 이미 학업과 생활만으로도 너무 버거웠고,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일상의 리듬을 깨고 싶지 않았다. 베를린에서 친구가 차려준 음식들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나는 도이체 오퍼와 도이체 슈타츠 오퍼, 베를린 필하모니를 오가느라 바빠서 그날이 추석연휴인지도 몰랐을 것이었다. 그 날 나는 그 명절 음식들을 천천히 코스요리처럼 종류별로 하나씩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친구는 나에게 너 왜 음식을 골고루 안 먹고 하나씩 먹어? 물어왔고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조미료 없이 산뜻하면서도 원 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그 맛을 최대한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음식이 사라지는게 아까워서 그랬다는 걸 나는 쑥스러워서 차마 말하지 못했다.

난방이 후끈한 신축 스튜디오에서 푹 쉬면서 며칠이 지나갔다.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고 잠들 수 있고 근처의 크리스마스 마켓도 구경갈 수 있을 만큼 몸이 회복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친구는 나를 한번 더 초대했다. 간단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테니 걱정 말라던 친구는 오늘 아침 너무 싱싱하고 좋은 시금치를 봤다면서 웃어 보였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내가 음식 준비를 돕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손을 내젓던 친구는 모든 재료를 척척 순서대로 쓰면서 음식을 완성해 나갔다. 일상에도 격이 있구나, 싶을 만큼 놀랍도록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성된 음악을 듣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친구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척척 나물과 샐러드, 잡채와 사천식 양념고기, 일식 집에서나 나올 법한 생선찜, 직접 우린 육수로 만든 국과 직접 담근 김치를 내놓았다. 와인과 샴페인만 챙겨간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정성이 깃든 밥상이었다.

곧 다른 손님들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렇게 음식을 앞에 두고 둘러 앉아 먹고 마시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한국사람들이라 한국어로 이야기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였다. 내 모국어가 이렇게 편안한 무엇이라는 걸 깨닫기도 전에 음식과 와인에 적당히 취하자 몇 주 전에 나에게 닥친 불행에 대해서도 적당히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오페라 근처 골목이었다고 말할 때부터, 그래도 흉기에 찔리지 않고 몇몇 물건만 잃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까지 이야기가 술술 이어졌다. 따뜻한 음식을 앞에 둔 채로 온기 어린 대화를 나눈 탓인지, 신경 안정제나 항히스타민제가 없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살다보면 더 나쁜 일이 기습처럼 닥쳤을 수도 있는데, 이런 불운은 견딜 만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든 돈을 주면 살 수 있는 물건은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런 음식을 내어줄 수 있는 친구와 이렇게 훈훈한 저녁식사를 그 누가 와도 앗아갈 수 없다는 것도 실감이 났다. 

 그 날 먹었던 따뜻한 음식과 대화 덕분에 어떤 약도 먹지 않고 푹 잠들 수 있었다. 연말을 앞두고 파리로 돌아오던 길 위에서, 돌아가는 대로 수면유도제와 신경 안정제를 끊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도착하는 시간에 딱 맞춰 당면 삶는 시간까지 조절해 내어주던 잡채의 맛이 지금도 떠오른다. 정성이 깃든 음식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채워준다. 

 다시 친구를 만나러 베를린에 갈 수 있는 날이 올해 안에 다시 올까? 다가오는 친구의 생일에 어떤 말을 써보내야 할지 고민하다 그날의 밥상을 떠올리고, 멍하니 손을 놓은 채 그 겨울로 돌아가고야 만다. 

온기어린 음식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고, 덕분에 여름의 한복판에서 기척도 없이 다가온 겨울의 기억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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