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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명 Feb 16. 2021

올 한해 연주활동을 쉬기로 결정했다.

때로는 서로를 위해 포기하기도 하고, 자신을 위해 멈춰서기도 하는 것.


올 한해 연주활동을 쉬기로 결정했다. 첫째가 다섯 살이 되었으니, 아내가 제대로 활동을 못한지 5년이 되었다. 올해부터는 아내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 어렵지 않게 결정했다. 외벌이긴 하나,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육아를 함께 하다보니, 아내의 현실에 더 공감하게 됐다.  


연주를 쉬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어쩔 수 없이 악기를 놓아야만 했던, 그 날 이후 한 20년 만이다. 이번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가능성을 위한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해두자. 상황이 잘 풀려 '아내도' 연주활동을 하게 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늘 그렇듯 현실 가운데 최선을 다한 선택이라면 크게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연주 활동을 쉬는 것을 부러 밝히는 이유는, 올해를 계획하며 작년 연말에 미리 거절한 일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작은 기회라 해도 그저 감사하다고 넙죽 받아도 모자를 판에 배부른 거절이나 하고 있다니-.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연주를 하는데 드는 한달 이상의 기회비용을 모두 아내가 감당해온 건 엄연한 사실이다.


올해는 설탕한스푼의 성장을 최우선으로 두며, 예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계획이다. 작년보다 조금 더 열심히 글을 쓰고, 힘이 되는 작은 일들을 기획해 나가고 싶다. 무엇보다 용기를 내어 다양한 이들과 유의미한 연대에 동참할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라 할지라도)경쟁의 목적이 아닌, 온전한 즐거움으로 혼자 악기를 잡아볼 생각이다.


나의 롤 모델 중 한 분은 어머니이다. 40여년 경력 단절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온 것도 대단한데, 누가 봐도 늦었다고 할 나이에 동화작가를 향해 한걸음씩 내딛는 모습은 그 누구보다 위대하다. 불혹의 아들이 무책임 할 수도 있는 삶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며 담담히 여겨주는 것 또한-. 어찌 보면 나의 시간이 어머니의 단절을 만들기도 했지만, 지금의 내가 어머니를 예술가로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덕분에 조금 더 빨리 아내를 예술가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린 서로에게, 서로를 똑바로 보는 법을 알려준 것 같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인생의 성과나 삶의 훈장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의 생애 주기에 따라, 서로를 위해  끊임 없이 기회를 포기하거나 미루기도 하고, 자발적으로 또는 어쩔 수 없이 희생을 선택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며 동시에 서로의 행복을 치열하게 만들어가는 연단의 과정이다.


연주 활동을 쉰다는 것이 혹시 영영 쉬게 되는 시작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몇달을 고심하면서도 지금 내가 쉬지 않으면 아내에게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대단한 선택일 수 있지만 되려 별게 아닌 이유는, 아내는 이미 그렇게 5년을 살아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직 맨정신으로 치열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더 가도 좋을 것 같다. 바라기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뒤를 돌아봤을 때, 누군가 나를 위해 무모한 희생만 해온 것이 아니기를, 그리고 나 또한 아쉬움이 남는 헌신의 시간에 미안함만 남아 있지 않기를.


우린 서로를 위해- 아니,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을 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앙금이 많이 남지 않아서 가볍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마음의 짐이 가벼워지면, 더 오래 함께 이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같이 걷자고 맘편히 손 내밀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길은 무모한 자기 희생의 길이 아니라, 두 손 가벼운 여행길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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