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짙은 아침이었다. 하얀 지우개가 세상의 사물들을 하나 둘 지우고 있었다. 앞산이 지워지더니 어느새 근처 은행나무도 사라졌다. 곧 내 몸도 안갯속으로 스며들어서 그렇게 사라질 터였다.
주남저수지가 가까운 이곳에는 겨울에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봄가을 짙은 안개가 세상을 삼킬 때면 온통 하얀 나라가 된다. 싸늘한 아침 공기 속에 우두커니 서서 희고 몽환적인 도화지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겨울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계절 틈틈이 나무들을 가지치기해서 모아둔 곳으로 갔다. 벽난로에 들어갈 적당한 크기로 톱질을 했다. 기계톱을 사용해도 되지만 엔진소음으로 조용한 아침을 깨뜨리기 싫어서 그냥 몸을 쓰기로 했다. 어느새 말라버린 나무들은 톱날을 쉬 받아들이지 않았고 제법 굵은 나무들을 자를 땐 힘이 꽤 들었다. 반복되는 톱질, 묵직하게 파고드는 근육의 통증, 거칠어지는 숨, 터질듯한 심장의 박동. 싸늘한 날씨에도 땀이 흘렀다. 그때 손가락에 톱날이 살짝 스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작을 멈추고 손을 살피니 엄지에 난 상처가 보였다. 금세 맺히는 붉은 핏방울. 숨을 헐떡이며 나는 손가락을 꼭 쥐고 지혈을 했다.
시퍼렇고 날카로운 쇠 톱날의 뒤에 서서 나무를 자르면 마치 내가 강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톱날과 내가 한 몸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톱날에 내 손이 베이자 나는 무력하게 잘려나가는 나뭇가지보다 훨씬 더 연약하고 무른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무르고 약한 인간의 육체가 나무와 돌과 쇠를 부수고 다듬어서 문명을 이루고 마천루를 세우는 것인데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내가 톱날이라는 착각과 나무를 베어야 한다는 집착, 내가 굴삭기이고 저 산을 깎아내려야 한다는 고착, 더 빨리 달리려는 자동차, 대기권을 벗어나려는 우주선, 세상이 돈으로만 보이는 돈, 관계와 직위, 명예 속에 매몰된 탐욕. 무르고 연약한 육체를 지닌 인간이 나무를 자르고 돌을 부수고 마천루를 올리는 힘은 집착과 욕망, 의지와 인내 사이를 질주하는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리라.
하지만 집착과 욕망은 또한 고통이라는 그림자를 수반한다. 집착하면 할수록 그 그림자는 짙어지고 커진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욕망이 필요한데 그것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이 아이러니는 또한 인간이 지닌 숙명인가 보다.
술, 섹스, 도박에 탐닉하면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우편집배원 찰스 부코스키는 쉰 살에 작가로 데뷔했다.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냉소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에게 술과 도박, 그리고 글쓰기는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고픈 또 하나의 집착이었을까. 아니면 남들처럼 얽매여 살지 않겠다는 욕망이었을까. 미국 현대문학의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더로 평가받는 그의 묘비에는 짧게 두 단어가 씌어 있다고 한다. ‘Don't try'(애쓰지 마라)’
서서히 안개가 걷혔다. 한 발 두 발 정원을 걸었다. 신발을 벗어버리고 맨발로 돌과 흙을 느끼며 톱과 자동차와 지위와 돈... 모든 욕망도 잠시 내려놓았다. 딱새의 지저귐이 들리고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결에 산국의 알싸한 향이 실려 전해왔다. 햇볕은 따스했고 쾌적한 공기가 폐에 청량감을 불어넣었다. 미움도 사랑도 설움도 기쁨도 없는 평온한 세계. 감정의 폭풍이 잦아든 내면의 호수에는 어느새 잔잔한 행복감과 평화가 깃들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살면서 얼마나 자주 여기 이 세계에 머물 수 있을까? 얼마나 후회하고 탄식한 뒤에라야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