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디 원서 넣었어?"
엄마는 매일 전화를 걸어 오늘은 어느 회사에 원서를 넣었는지,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덕분에 졸업하기 전부터 나는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아니, 엄마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성인이 되면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처음엔 나도 희망하던 대기업에 원서를 넣었다.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일이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합격 통지를 받지 못했다. '광탈'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거지.
한편으론 나를 뽑지 않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7년 동안 영어로 글을 쓰는 법만 배운 사람이 한국말로 글 쓰는 기자가 되겠다니... 나의 한국 언어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최소한 한국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를 나왔거나 문예창작과를 나온 정도는 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불합격 메일이 쌓여갈수록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 괜찮은 스펙이 되어줄 줄 알았던 대학교 졸업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나는 그저 외국 대학을 나온 영어를 쫌 할 줄 아는 사람에 불과했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간섭은 더욱 심해졌다. 지금이라도 대학원을 가라. 언제 00 기업에서 채용한다더라. 아는 분이 00 회사 다니는데 거기 한번 물어봐라. blah...blah...
고막에서 피가 날 것 같았다. 알아서 할 테니 제발 나 좀 내버려 두라며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어 그냥 자리를 피했다. 빨리 어디든 취직해서 이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다.
취업의 벽은 높았고 열심히 벽을 두드리던 나도 지쳐버렸다. 기약 없는 합격을 기다리며 부모님과 계속 씨름하며 보낼 순 없었다. 가고 싶던 회사를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일 대신 스펙이 인정될만한 곳을 찾았다. 대기업의 영문 공식 블로그를 운영하는 대행사였다. 그렇게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무책임한 선택이었다.
24살의 나는 제대로 된 꿈도 신념도 갖고 있지 않았다. 꿈이 있었다 해도 당장 눈앞에 마주한 현실에서 지켜낼 용기도 자신도 없었던 나약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긴장감과 설렘이 찾아왔다. 이제 정말 나도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첫 월급을 탔고, 부모님에게 처음 내가 번 돈으로 선물을 사드렸다.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월급을 번다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우습게도 그 기분이 계속 이어질 줄만 알았다.
적응을 너무 잘한 게 이유였을까? 아니면 적응을 빨리하기 위해 노력한 게 잘못이었을까? 입사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나는 금방 일에 실증을 느꼈다.
그동안 성격이 잘 맞는 몇 명의 언니들과 친해졌고, 우리 팀을 담당하던 직속 선배가 퇴사하는 바람에 그 자리는 내가 맡게 되었다. 일도 익숙해진 상태라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감시자도 없고 내 일만 해내면 되는 그곳은 나의 comfort zone(안전지대)이 됐다.
그런데 그 안정감이 독이 될 줄은 몰랐다.
회사생활은 더 편해졌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이 일은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실현을 한다거나 성취감이 드는 것도 아니고, 딱히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만 같았고 내 자신이 그런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어느 순간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처음엔 누구나 겪는 '회사 권태기'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 생각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친구를 만나 술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이 답답한 심정을 누구에게든 털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컷 수다를 떨며 한풀이를 하다 보면 다시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대화의 결말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필 그 타이밍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친구가 내게 동업을 제안한 것이다.
"우리끼리 창업을 해 보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