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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산에서 헤메다

태백산, 첫번째 국립공원

봄이 어느새 지척에 왔다. 봄은 보고 있는데 지나간다는 말처럼, 그렇게 또 지나가겠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봄의 길목에서 지난 겨울, 산에서 헤멘 시간을 떠올린다. 마치 내 다리에 난 상처처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그 시간 그 사건이 있듯이 봄의 향연은 겨울의 인고를 잊지 않는다.


지난해 마지막 날, 태백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시간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몰라도 태백산이야말로 겨울산으로는 최고이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두번째 산티아고를 위한 첫걸음으로 태백산 국립공원은 더없이 훌륭해 보였다. 30년전 성당 주일학교 학생으로 올랐던 그 산이 초입부터 눈으로 맞아주었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 그것이 크면 클수록 무거움과 두려움은 커지겠지만 결국 모든 일은 한걸음부터라는 생각으로 국립공원 순례의 첫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거칠고 날카로웠지만 부드러운 눈은 발밑에서 뽀드득 뽀드득하며 나를 격려해 주었다. 


유일사에서 시작해 해발 1,567미터 장군봉에 오르니 천지가 모두 발아래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호흡을 고르며 삼국시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는 천제단을 보니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의 정기가 느껴졌다.



아름답고 신비한 산 정상에서 선조들과 잠시 만나 보낸 시간은 과거의 흔적으로 가슴에 남았고, 그렇게 조용히 당골광장으로 내려오면서 첫번째 국립공원 태백산 산행을 마쳤다.


2023년 12월 31일 태백산 최고봉 장군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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