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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게 좋아 Jun 30. 2024

한 잔은 너무 많지만 천 잔은 너무 적습니다

젊은 알콜중독자의 고백


나는 현재 서른 살이고, 7년 차 알콜중독자다. 요즘은 알콜중독보다 알콜의존증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듯하다. 한 번쯤 내 알콜 문제에 대해 기록을 남겨보고 싶었다. 젊은 알콜중독자의 테마로 글을 몇 개 써보려 한다. 


나는 알콜중독 중에서도 고도적응형 알콜중독증에 속한다. 고도적응형 알콜중독자는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피폐한 알콜중독자들의 이미지와 다르게 겉으로 볼 땐 멀쩡해 보이는 중독자들을 가리킨다. 


사회생활에 문제가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알콜중독자라고 생각하지도 못 하며 오히려 성실하고 직장이나 학업 등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도 많다. 


나도 겉보기에는 매우 멀쩡하다. 

나는 인서울대학교에서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자취를 하며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없이 스스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돈을 벌어 학교 생활을 했다. 아르바이트와 공부와 장학생 생활을 병행하면서 학업에서 좋은 성과를 이뤘고, 대학을 다니며 모은 돈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현재는 평일에 회사에 출근하고 주말에는 아르바이를 하며 주 7일 일하는 삶을 사는 중이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독서를 하고 주 3~4회는 퇴근 후 운동을 간다. 직장과 아르바이트에 한 번도 지각이나 결근을 한 적 없다. 주변에서 주로 듣는 이야기는 성실하다, 생활력이 강하다, 열심히 산다 등이다. 


사람들은 알콜중독자들을 직장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밤낮으로 집에 처박혀 술만 마셔대는 깡마른 폐인으로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도 많지만 알콜중독자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만이 알콜중독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알콜중독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알콜중독을 7년을 겪었는데, 내가 술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알콜중독자임을 인정한 것은 작년부터이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지금 겉으로 멀쩡해 보이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술 때문에 직장을 잃고 밤낮으로 술만 마시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다. 

나에게는 분명 술 때문에 폐인이 될 자질이 있다. 한 번만 삐끗해도, 한 번의 삶에 대한 포기만으로도 나는 정말 입원이 필요한 중증 알콜 장애자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술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알콜중독자와 애주가의 차이는 조절 능력의 유무에 있다. 아무리 평소에 술을 많이 마시고 다녀도 다음날 중요한 약속이 있다면 컨디션 관리를 위해 전날에는 술을 안 마시는 것, 몸이 좋지 않다면 술을 며칠 동안 끊을 수 있는 것이 애주가들이다. 술 자체를 탐닉한다기보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 


알콜중독자는 술이 조절되지 않는다. 마시는 술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시는 행위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알콜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 질병으로 분류된다.


'한 잔은 너무 많지만 천 잔은 너무 적다' 이 문구는 알콜중독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 잔만 마시느니 차라리 마사지 않는 것이 더 쉽다. 술을 한 잔 마시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잔으로 시작해 백 잔 천 잔 끝도 없이 마시게 된다. 알콜중독자들은 술 한 잔에도 벌벌 떨지만 천 잔으로는 그들을 만족시키기에 택도 없는 것이다.


많은 알콜중독자들이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단주보다 절주가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알콜중독을 벗어나고자 하는 자들에게 절주라는 타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알콜중독자들에게는 오로지 단주만이 권장된다. 


나는 작년부터 알콜중독에 관한 책들과 영상을 찾아보면서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간헐적으로 노력했다. 작년 여름에는 최대 2주까지 술을 끊어보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평생 술을 마시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가 어느 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나는 계속 술에 얽매여 있었다. 두 달여간 실패와 포기를 반복하다가 때려치고는 지금까지 다시 술과 함께 살고 있다. 

현재는 술을 줄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절주를 결심하지 못했지만 술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계속해서 실패하는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올해 서른 살을 맞이하면서 나는 정말 대책없이, 미친듯이 술을 마시던 생활과 작별하고 조금 더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다. 담배는 훨씬 늘었기에 건강한 생활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어쨌든 예전보다 술 마시는 횟수와 양이 줄었다. 나는 주로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데(혼술도 알콜중독의 특징이다.) 20대 때는 일주일에 네 다섯번을 마셨다면 현재는 두 번 정도 마시는 듯하다. 


며칠 전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끝냈다. 원래라면 한 번에 맥주 7~8캔을 마시고 만취한 채로 잠들었어야 했다. 


작년보다 양이나 횟수에서 양호해진 건 확실하지만 나의 알콜중독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불안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는데, 마치 지금 내 상황이 구멍난 물탱크에 테이프를 붙여놓은 꼴과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고작 테이프 따위로 구멍을 메울 순 없다. 테이프가 찢겨나가는 순간 구멍으로 엄청난 양의 물이 터져나오듯 전보다 훨씬 심각하게 술을 마셔댈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지금 3일 4일씩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날들이 많더라도 이것은 전혀 호전의 징조가 아니다. 앞서 썼듯 알콜중독의 가장 큰 문제는 통제력의 상실이다. 나는 술을 마시고 싶다는 강력한 생각이 들면 자제할 수가 없다. 다음날 중요한 약속이 있든 시험을 봐야 하든 일을 가야 하든 술이 다음날 컨디션을 망칠 것이란 걸 알면서도 술을 마신다. 

무엇보다 두어 달 전 낮술을 하며 이 불안감을 강하게 느꼈다. 원래 나는 낮술을 하지 않았다. 반주도 하지 않았고 소주는 아예 못 마셨다. 이런 점들이 내가 알콜중독자가 아니라고 자위하는 요소들 중 하나였다. 


나는 오로지 저녁에만 술을 마셨고 미친듯이 폭음했지만 어쨌든 낮에는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에 어울리는 술이 생각난다는데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술 생각이 난 적도 없었다. 내게 술은 오로지 취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날도 집에서 혼자 마셨다. 한 캔이 두 캔 세 캔이 되고 결국 폭음한 후 쓰러져 잠들었다. 그리고 오후 3~4시쯤 일어나 밤에 또다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잠을 잘 수 있으니까, 생활패턴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 마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날 대략 15캔의 맥주를 마셨다. 

다음날 생각했다. 두렵다고. 낮에도 폭음하는 경험을 한 번 했으니 이제 얼마든지 낮에 술을 마실 수도 있었다. 밤뿐만 아니라 낮에 술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두 달 전은 지금보다 술을 덜 마시던 때였다. 어느 때보다 건전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 한 번, 낮에 맥주 한 캔을 입에 대자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술 때문에 벼랑 끝에 갈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왔다. 이미 벼랑 끝에 서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술이 두렵다. 7년간 다양한 술 문제를 겪으며 그 문제를 절감했고, 혼술을 선호하게 된 이유에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기거나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실수들이 무서웠던 것도 있다. 혼자 마시든 사람들과 마시든 자제가 안 되니까 아예 혼자 마시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흔히들 그렇듯 나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힘든 세상살이에서 도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부, 일, 자기개발, 사회생활 등 한국 사회가 성인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수행하며,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남들처럼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온 것은 술을 마시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나도 이를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직시하고 나니 내 생각보다 나는 훨씬 더 술에 의해 좌우되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하는 정말 많은 행위들이 술과 연관되어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한 노력조차 당연히 술과 연관된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 나는 몸을 부러 혹사하곤 했다. 어떻게 하면 오늘밤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을까, 하루종일 술 생각을 했다.


마시든 마시지 않든 나는 술에게 얽매여 있었다. 어떤 것에 중독되고 집착한다는 것은 내 자유를 저당잡힌 것이다. 이제는 조금 자유로워져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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