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캐롤을 듣기 시작한다. 캐롤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 구석이 있다. 서른 살이지만 아직도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연말의 추위와 분위기, 크리스마스가 주는 그 느낌이 좋다.
무더위와 습도에 지치는 여름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겨울이 떠오르고, 겨울을 기다리게 된다. 한여름에 듣는 캐롤은 무더위와 짜증을 조금은 식혀준다.
어떤 계절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날씨에 대한 기호보다도 그 계절에 겪은 추억으로 형성된 선호에 가깝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의 몇 안 되는 유년 시절의 행복한 기억들이 겨울과 크리스마스 시즌에 몰려있다.
크리스마스를 사랑한다.
그 시절을 사랑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던 단 한 번의 크리스마스 선물, 여의도에서 단 한 번 보았던 엄청난 양의 불꽂들, 놀란 내 표정을 보고 웃는 얼굴. 단 한 번,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크리스마스 전구를 벽에 장식하던 날. 따뜻하다며 추운 날 내 손을 꼭 잡아온 다른 손. 평생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미소 짓고 있는 젊은 어른의 얼굴.
모두 단 한 번의 추억으로 끝났다. 이후 다시는 그와 같은 행복을 겪은 적 없다. 그 순간에는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다. 나를 사랑한 어른이 내게도 있었다, 생각이 들 만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왜 추억은 이토록 힘이 셀까. 왜 추억은 사람을 살게 하고, 사람을 죽게 할까. 어리석은 선택을 하도록 만들까. 낮이 무더워질 수록 햇빛이 강렬해질 수록 나는 겨울에 있다. 새하얀 눈밭에서 눈뭉치를 굴리고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두근거리는 손길로 펼쳐본다.
그러면 나는 웃고 있는 것이다. 산타에게 몰래 쓴 편지처럼, 답장을 열어보기 전 편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들이마시는 아이처럼, 나는 어쩌면 매일 술에 취해 사는 어른이 되지 않고, 엉망인 어른이 되지 않고, 당신처럼 나쁜 어른이 되지 않고 진짜 어른이 되어서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가 되지 않고 아이에서 자라나 어른이 되는 그런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가끔은 사람들에게 산타를 여전히 믿는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서.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니 누군가 먼저 말해주길 바라는 기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