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실, 또 하나의 문화 동인
넷플릭스에서 몇주간 광고가 되었던 <은중과 상연> 시리즈 드라마를 공개되자마자 보았다. 다소 긴 느낌이 들었지만, 재밌게 보았다.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상연과 상연 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가부장적이고 계급적인 가족제도와 이성애 제도 속에서의 여성들 간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여진으로 마음에 남았다.
드라마는 상연의 입을 통해 그녀가 느끼는 불안과 열패감의 기원이 어머니이면서 선생님인 윤현숙과의 관계에서 기원되었다고 말한다. 가족 내에서 어머니가 상연보다 오빠를 더 좋아한다는 것은 상연에게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상연도 오빠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오빠에게 거는 가족 내의 기대라는 것이 상식적이고, 또 허용가능하기 때문에, 엄마가 오빠를 더 좋아하는 것이 불안과 열패감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엄마가 사랑하는 착하고 똑똑한 오빠를 여자동생들도 사랑한다.
<은중과 상연>에서 문제는 상연의 엄마가 자기 반 친구인 은중과 자신을 공평하게 대하거나, 혹은 자기에게 하는 것보다 더 친절하고, 은중에게 더 관심을 갖는다고 느끼는 것에서 발생한다. ‘나의 엄마’인데... “어떻게 남인 은중과 자기를 공평하게 대하는가?” 이것이 어린 상연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고, 자기가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의식을 갖게 만들고, 열패감을 갖게 만든다. 엄마의 인정을 갈망하는 상연에게 엄마/선생님의 인정을 받는 은중에 대하여 처음에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지만, 점점 엄마의 인정, 혹은 오빠나 다른 남성들의 인정이나 사랑을 받는 은중을 의식하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되면서 모방하고, 그 은중이 좋아하는 상대들을 자신도 좋아한다.
오랫동안 여성과 여성의 관계, 여성들 사이의 경쟁과 열등감, 자기 비하의 문제를 다루는 이성애 사회에 대한 페미니즘 논의에서 욕망이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면서 형성되기 때문에 여성들이 자신이 인정하는 여성이 좋아하는 대상들을 같이 사랑하고 욕망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상연도 어머니, 오빠, 남성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은중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고, 질투하고, 사랑한다. 드라마는 은중의 욕망을 따라가며 좌절하는 상연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결국 이 드라마는 긴 세월을 통해 사랑한 관계는 상연과 은중이라는, 그들의 우정과 사랑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여성들 간의 우정과 사랑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이 무엇인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마지막에 죽음 조력자로 요청되는 과정에서 여성들 간의 관계에 대한 책임과 응답, 돌봄에 대한 대화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은중과 상연 드라마의 내용과 관계 없이 나의 생각은 여성, 모성성 그리고 공평성, 정의에 관해 생각으로 흘러가곤 했다. 공적사회에서 역할과 지위를 수행하고 있는 엄마가 사회에서 작동하는 공평성이나 공적 가치의 기준을 가지고 딸이나 아들의 행위를 비난하거나 혹은 평가할 때, 그리고 자신이 행한 행위의 결과로 피해자가 된 타자를 더 옹호하고 자신의 행위를 비판할 때,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엄마를 자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면 남의 집 아이와 자기를 공평하게 대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 그것을 아이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갖는 배타적 사랑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할까? (기술적으로 잘 다루는 문제를 차치하고,) 아니면 엄마를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사랑이나 모성이 없는, 모성적 보호를 해주지 않는 신뢰할 수 없는 보호자/어머니가 되어 버리는 것일까? 그래서 아이들이 심리적 상실감, 애착 상실, 불안이나 패배감 등을 갖는데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일까?
드라마에서 상연은 자신의 어머니의 공평성이라는 잣대에 의해 상처를 입는다. 반면에 은중의 어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는 가끔은 규칙을 어기면서도 은중의 편이 된다.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에서 여성성, 모성과 ‘정의’ ‘돌봄’에 대한 토론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단 성폭력에 가담한 손자를 고발하는 <시>의 할머니(윤정희 분)의 도덕성과 나이듦, 혼란을 같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머니가 아니고 아버지일 경우는 어떨까? 물론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상연이 아버지는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만약 아버지가 공평하고 합리적인 태도를 취할 때에도 상연이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감정적인 상실이나 배신감 혹은 불안을 느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드라마의 끝에서 엄마/선생님인 윤현숙의 삶과 죽음은 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이고자 한 윤현숙은 실패한 어머니가 되어 혼자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마침내 상연은 오랜 세월을 거쳐 자신이 사랑한 사람은 자신이 쫓아다닌 은중을 사랑한 대상들이 아니라, 바로 은중임을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은중에게 죽음을 맞기 위해 가는 스위스에 동행해주기를 요청한다. 왜? 내가 너 은중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너가 나를 가장 잘 아니까! (202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