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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Mar 05. 2022

길냥이 메루 일기 (1)

첫 만남 그리고 소세지봉

나는 자유로운 영혼의 고양이다. 집사? 그런 건 따로 정해두지 않는다. 내 영역 안에서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닌다. 내가 사는 마을은 산도 있고 강도 보이고 집들도 꽤나 많다. 어릴 때는 친하게 몰려다니던 동네 애들이 이제는 다 자신의 영역을 잡고 적당히 거리를 두며 살아가고 있다. 친목? 그런 것은 굳이 하지 않는다. 어차피 혼자 사는 묘생. 나는 마을의 오른쪽 중간 정도에 다섯 채 가량의 집들을 터 삼아 하루의 루틴을 만들어가며 지내고 있다.


나의 귀여운 외모와 금빛 털 색 때문인지 집사를 자처한 집이 생겼다. 맛있는 생선이 들어 있는 통을 내어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잠자리 쿠션도 놓아주어 이 집 마당을 내 주 터전으로 삼기로 했다. 가끔 다른 애들이 와서 알짱 댈 때가 있는데 나는 내가 싸움에선 안 된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터라 낮에 졸려서 내 쿠션에서 자고 있는 애들은 자고 가라고 내버려둔다. 사실 밖에서 간간히 쥐 나 새 잡아먹다가 매일 생선 먹기 시작했더니 몸이 좀 무거워졌다.


작년쯤인가 선선한 가을 저녁, 마을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문 앞을 지나 만 다니던 집에서 웃음소리가 나고 말소리가 나길래 궁금해져서 문 밑에 뚫려있는 공간으로 들어가서 계단을 슬금슬금 올라가 봤다.

"엇! 고양이다! 어? 쟤 메루인데?"


올라오다 정면으로 마주친 세 명. 당황해서 돌아갈까도 고민했지만 메인 터전에서 나를 불러대는 메루라는 이름을 아는 걸 보니 잠시 고민되어 일단 당황하지 않은 척 계단에 앉아보았다. 두 명이 내 눈높이 근처로 앉더니 "이루와~" 한다. 그러더니 한 명 손에 길고 노란 게 쥐어지더니 그 걸 잘라서 내 앞으로 던진다. 크으 고소하면서도 짭짤한 냄새가 올라오는 걸 보니 고기다. 이 사람들 내 스타일이다.


그다음 날도 어제의 그 환상적인 맛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하여 같은 시간대에 이 집 계단에 앉아 있어 보았다. 잠시 후 어제 만난 사람들 중 배 나오고 덩치 있고 머리털이 짧은 사람이 집에서 나왔다. 이 집 두목인가 보다. 두목과 눈이 마주쳤다. 긴장 상태로 쳐다보고 있는데 "왔어~?"라며 반겨주더니 다시 들어가 어제의 그 길고 노란 고기를 가지고 나온다. 그 후로 나는 매일 같은 시간, 가끔은 아침에도 이 집에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속 계단 근처에만 앉아있었는데 사람들이 자꾸 자기들 쪽으로 와서 먹으래서 못 이기는 척 다가가서 먹었다. 가끔은 더 없냐고 문 앞에 앉아 시위도 해봤다. 너어무우 맛있다.

 

이 집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오면 일단 나보다 큰 사람들이 내 눈높이에 맞춰 나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넨다. 등장했을 뿐인데 나만 오면 먹을 것을 주섬주섬 내온다. 메인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수한 간식들이 나온다. 가끔 귀찮게 계속 부르고 내가 안 보고 있을 때 은근슬쩍 나를 만져보려는 손 길을 뻗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그냥 자는 척 눈 감아버리거나 다가오는 손길에는 냥 펀치로 대응 중이다. 저 사람들이 은근히 나를 쫄보라고 놀리는데... 거참 난 싸우기 싫어서 피하는 평화주의 냥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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