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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Jan 09. 2024

조금 더 어릴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난 이후

지난달, 연말을 맞이해서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를 다녀왔다. 연말은 업무적으로 바쁜 달이라 해야 하는 일들이 참 많았다. 그런 바쁜 삶에 치여 연애도 친구와의 만남도 뒷전으로 미루고 살던 나에게 영화관은 무려 방문한 지 반년?이나 된 낯선 공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방문하는 영화관은 설레기까지 했다.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다가, 부모님이 국내영화를 선호하기 때문에 국내영화 중에서 가장 핫한 영화를 골라 '서울의 봄'을 예약하였다. 여태껏 천만관객을 동원할 정도의 영화는 관람을 하고 매번 실패가 없었기 때문에 고민 없이 결정한 측면도 있었다.


'서울의 봄'은 뉴스를 통해 대충 들었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어떤 내용인지는 몰랐고, 굳이 찾아보지 않고 방문하였다. 사실 이때 당시의 나는 영화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그저 오랜만에 방문하는 영화관에 더 설렜다. 큰 브라운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오랜만에' 본다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고 있었다. 큰 화면에서 빵빵한 사운드로 상영되는 영화를 보면 올 한 해 힘들었던 마음, 답답한 마음이 개운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서울의 봄'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마음을 무겁게 바꾸었다. 영화는 나의 역사에 대한 무지함을 깨우치게 만드는 시간이었고, 새로운 정보에 눈을 뜨게 만드는 시간이었으며, 이제야 알게 된 진실들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 살고 있는 이 땅, 그리고 주위 사람들, 나의 삶 자체를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영화를 관람한 우리 가족들의 평가는 '재미있었다'였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단순히 재미만 있지 않았다. 자꾸 생각을 곱씹게 되는 영화였다.


지나간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어떤 영화를 어느 영화관에서 언제, 누구랑, 어떤 옷을 입고 볼지 모든 것이 나의 자유의지대로 선택가능한 이 현실이,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여태껏 살면서 조금만 삶이 힘들면 쉽게 입에 올리던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감히 내가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부모님의 이해가 안 가는 고리타분한 성격과 수동적인 자세들 역시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먹먹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유튜브의 순기능을 이용하여 서울의 봄과 관련된 다큐와 영상들을 하나둘 섭렵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은 '서울의 봄'에서 연출된 각 배역들에 해당하는 실존인물이었는데 이미 유명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극 중 정우성 배우가 연기한 '이태신'의 역할이 가장 궁금했다. 해당 역할의 실제 이름은 '장태완'이라는 분이셨다. 영화에서 이 인물에 대해 일부 각색된 부분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인터뷰를 하셨던 여러 영상들을 보면 정의로우면서도 투철한 군인정신이 느껴지는 분이셨다.


처음에는 왜 나는 이분의 존재를 몰랐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들을 우리가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분을 접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었던 그 당시의 근현대사, 한국사능력시험의 책을 떠올려보자 거기에 짤막짤막하게 요약되어 있는 단편적인 내용만으로는 당연히 알 수가 없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책으로 배우는 수많은 정보들이 깊이 파고 들어가지 않으면 모두 단편적인 사실들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번 영화로 많이 느끼게 되었다. 역사의 큰 틀을 보면 그 시대에 기록될 만큼의 굵직한 사건들만 나타난다. 잘잘못을 떠나 나치에 대해서 떠올리면 '히틀러'가 바로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이런 단편적인 지식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나는 여태껏 내가 알지 못했던 책너머의 이야기를 찾아 유튜브 속을 헤엄치고 다녔다. 관련 다큐를 통하여 생존자들 혹은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보려고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날들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파헤쳐보았다. 그렇게 '서울의 봄'이라는 홍수를 헤엄치던 나는 연관 영상으로 뜬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으로 자연스럽게 영역을 확장시켰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

6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


두 개의 영화를 상영시기에 각각 보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두 영화는 내 뇌에서 이어지지 않았었다. 그때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기에 이렇게 깊이 있게 사고를 확장시키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퍼즐조각처럼 떠다니던 여러 영화들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문장이 각인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구성원들이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의 중요성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쉬운 것 같은 '진실함'이라는 단어가 현실에서는 정말 찾기 힘든 진귀한 것이며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숨겨진 진실'은 세상밖으로 나오려면 단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여러 영화들을 통해 사고의 확장을 느낀 나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더 빨리 알았다라면, 이왕이면 어린 시절부터 국내여행을 다닐 때에도 현존하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들에 가보고 그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일을 배웠더라면 30대의 나는 다른 시선과 사상을 갖고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해보게 되었다.


라는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만약 내가 아이를 가진다면 내가 못 느낀 것을 내 아이에게는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교육을 시켜줄 수 있는 부모가 되자라는 나만의 기준을 갖게 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또다시 그런 과거의 일이 발생하지 않으라는 법도 없다. 그래서 더욱 진실을 알아야 하고,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단순히 우리나라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정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뉴스를 보니 1월 13일 예정되어 있는 대만 총통 선거에 대해서도 다른 시선을 갖고 바라보게 되었다. 향후 동북아 정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러려면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도 단순히 우리나라만을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문제라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하나의 사건도 다방면적인 측면으로 보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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