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도전 #우리주위에서살고있는또다른신들
신은 존재할까
실제로 ‘신’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정확히 입증된 것는 아니지만 신이 전해준 이야기라는 것들이 다른 이들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그가 전해준 이야기에 대한 간절한 믿음이 지속된다.
간절한 믿음은 어쩌면 대답 없는 일방통행식의 대화일 수 있다.
나는 말하는데 상대방의 대답이 없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웬만한 마음이 아니면 지쳐버릴 수도 있다.
생각해보라.
나의 간절함이 담긴 메시지에 답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한가.
카톡 읽씹, 안읽씹도 답답하고 짜증 나는데 보이지 않는 대상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믿고 의지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어떠한 사람일 수 도 있고 단체(무리, 그룹) 일 수 도 있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의 집단생활의 흔적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집단 속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역할에 따라 누군가는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기도 하고 2인자, 3인자, 제사장 등이 된다.
역할의 수가 소수일수록 권력과 정보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역할의 다수는 소수를 믿고 의지하고 충성을 다한다.
어쩌면 다수에게 그들은 ‘신’이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신’이 아닌 보이는 ‘신’들이 존재한다.
의사, 판사, 변호사 등 흔히 ‘사’ 자 직업을 가진 전문가들이 그들이다.
물론 갓물주라는 또 다른 신이 있지만 의사, 판사, 변호사 등의 신이 겸직 가능한 신 계열이라 따로 말하진 않겠다.
오늘날 사회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정보의 비대칭이 줄어든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현대 사회의 우리 주변에 사는 ‘신’들은 자리가 위태롭다.
그중 아직까지 신의 자리가 굳건한 그들이 있다.
‘의사’이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일을 한다
인간 집단 속에서 뛰어난 학습능력을 가진 소수만이 선택된다.
우리는 그들의 지도에 따라 아픈 몸을 치료한다
그들의 지도를 따르면 병이 나을 수 있기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믿고 따른다.
그들은 현대사회에서 또 다른 신이다.
그들은 자신의 입으로 신이라 한 적이 없다.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맹목적인 믿음이 그들을 신으로 만들었다
그들도 실수를 하는 인간이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디스(비난)하려고 하니 망설여진다.
내 가족 중에도 대학병원 의사가 있고 그가 어떤 고생과 과정을 거쳤는지 잘 알고 있다.
나의 경험과 전해 들은 이야기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하고자 한다.
먼저 우린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하기보다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학창 시절부터 죽어라 공부하고 대학에서도, 대학을 마치고도 죽어라 공부한다.
공부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노동은 살인적인 스케줄로 짜여 있다.
어느 정도 직급이 올라가기 전까진 많은 월급을 받아도 쓸 시간이 없다.
그렇게 버티고 버틴다.
의사는 늘 바쁘다.
할 일이 늘 많다.
평생을 공부해야 된다.
그들이라고 조금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그들의 쉽고 편한 길에 우리 건강이 걸려있다는 것이다.
2년 전 나는 내분비대사장애를 진단받았다.
이 진단을 받기 위해 4곳의 병원을 갔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기간마다 증상이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인 증상이 있었다.
-다이어트를 엄격하게 하던 중이 아니었는데 체중이 빠졌다.
-소변이 자주 마려웠다.
-평소랑 다르게 소변을 참기가 조금 힘들어졌다.
-갈증 때문에 물을 자주 마셨다.
병원에서는 소변을 억제하는 약을 처방해줬다.
갈증 때문에 물을 많이 마셔서 소변이 자주 마려웠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나 다이어트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머 이런 식이 었다.
상담시간은 3분을 넘겨본 적이 없다.
증상을 말하면 어떤 어떤 처방에 대한 약을 할당해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의학정보를 찾아가서 물었지만 자신의 진단이 맞다는 식으로 말을 섞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거 인터넷에서 찾아본 당뇨나 대사장애 같은 증상 같은데 아닌가요?”
“젊은 나이이신데 당뇨나 그런 대사장애 쉽게 안 나와요, 딱 봐도 건강해 보이십니다”
하긴 신에게 그런 질문은 실례인 거지.
약을 먹어도, 다른 병원을 가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병원 리스트를 공개하고 싶다)
결국 대학병원에 갔고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혈당을 쟀다.
의사의 표정이 안 좋아지고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결국 심한 내분비대사장애.
조금 더 방치했으면 당뇨나 각종 성인병이 곧 걸렸을 것이고, 앞으로도 관리한다고 한들 걸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무서운 말을 해줬다.
몇 년을 알고 지낸 40대 형님이 계셨다.
그는 건강염려증이라고 말할 정도로 건강에 집착했다.
집 근처 병원의 의사를 자신의 주치의라고 생각하고 일주일에 몇 번이나 찾았다.
몸이 불편해서 찾은 병원에서 몇 번이고 이런저런 약을 받아서 복용했다.
1년 넘게 약을 계속 바꿔도 증상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종합병원에서 췌장암 3기 진단받았다.
세상이 좋아져 고칠 수 있는 병이 많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초기에 고치는 것과 진행된 후에 고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병을 이겨내면 예전의 몸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전혀 아니다.
이전의 몸상태로는 되돌아 갈 수 없다.
질병을 치료하고 회복된 그때의 몸 상태가 새로운 기준이 된다.
다시 말해 그 보다 좋아질 가능성은 희박하고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모든 질병은 초기에 발견하고 안전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제대로 질병을 발견 못한 그들을 비판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은 신이 아닌 인간이라서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신도 아니고 의료서비스는 봉사가 아닌 비즈니스이다.
이런 과정을 이해하고 그들과 의료서비스를 맹신하지 말고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한다.
‘우리 주위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신들’ PART-2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