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지방공무원을 명예퇴직한 지 오늘로 276일째다. 명예퇴직은 내가 나를 구렁텅이에서 스스로 구출해 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끔씩 밀려오는 패배감에 힘든 날도 있다. 그리고 그런 패배감은 파도처럼 한 번씩 나에게 밀려와 나를 휘젓고 간다..
정말 견딜 수 없던 걸까?.. 버티면 되지 않았을까?.. 도망친 거 같아서...
그래도 안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하리라는 것을..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음을..
그 좋은 직장을 때려치운(엄마의 표현...) 나를 아쉬워하는 엄마에게 불효한 거 같아 그게 제일 맘에 걸릴 뿐이다..
이전 같은 팀에 근무했던 분이 사무관 승진 인사발령이 나면 계속 나에게 알려주신다.. 그런데.. 그걸 받아보는 것이 여간 곤혹이 아니다. 이제 다 맘을 비웠다고 생각했지만.. 그 인사발령을 받을 때마다.. 내 맘은 파도가 일렁인다.. 온전히 축하해 주지 못하는 나를 느끼며, 속 좁은 나를 깨달으며, 나에게 또 한 번 실망하게 되니 말이다. 또한 사무관 승진 인사발령이 있을 때마다 느꼈던 그 마음과 상황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 알고 싶지도 않고 받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만 보내달라고 하지도 못한다.. 그분이 왜 나에게 인사발령을 보내주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나를 위해서... 나를 생각해서 보내는 일이라는 것만은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받고 싶지는 않다...
조금만 기다리고 견뎠다면 사무관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사무관 승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처 난 내 마음과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가끔은 흔들리지만.. 그래도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위로 언니와 밑으로는 남동생이 있다. 다 두 살 터울로 어렸을 때는 참으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이제는 우리 삼 남매는 우애가 아주 돈독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남동생은 나를 따라 공무원이 되었다. 대학 졸업반일 때 공무원 입시학원에 등록했고 그 학원비를 내가 대신 내주었다. 그리고 남동생은 정신 차리고 공부를 해서인지 바로 합격을 하였다. 그렇게 소방공무원으로 첫 발을 내디뎠던 남동생이 올해 7월 1일 자로 "소방령"으로 승진을 하였다. 나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누나 아니었으면 공무원 못했을 텐데.. 누나 덕분이야"라고 톡을 보냈다.
톡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동생이 일반 공무원으로 치면 사무관인 소방령으로 승진한 것도 너무 기쁘기도 하면서.. 동생이 승진한 것을 못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엄마는 동생이 승진하면서.. 부쩍 더 그 좋은 직장을 때려치운 내가 못내 아쉬우신 거 같다.. 생각해 보니 엄마의 자식 둘이 사무관이라고 하면.. 엄마에게 더 기쁨과 자부심을 드렸을 거 같은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아서..
명예퇴직한 이후.. 가장 맘이 아팠다..
그리고 드디어 이사를 간다. 명예퇴직 후 내놓았던 집이 한동안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서 보러 오는 사람도 없더니.. 올해 3월 말부터 갑자기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아지더니 5월에 계약을 하였고 8월에 이사를 간다.
새로 이사하는 곳은 지금 살고 있는 곳과 약 15분 정도 거리에 있고 자연에 둘러싸인 곳으로 시골 출신인 나와 잘 맞고 대출 없이 수평이동할 수 있어서 부담이 없었다. 귀향하려고도 하였으나 아직 학생인 아이들을 생각하니 내 욕심만 채울 수가 없어... 일단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5~6년 정도 흘러 아이들이 직장을 잡으면 귀향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지금 살고 있는 여기 이 집에서 14년을 살았다. 여기에서 14년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은 26살, 20살이 되었다.
8월에 이사를 가게 되면 과거의 일은 잊고.. 이제 정말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편안함에 이르는 길은 참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온전히 편안함에 이르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공무원에 있을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행복하고 편안하다..
그것이면 되었다....
근래 감명 깊게 본 "미지의 서울"처럼..
어제는 지나갔고 미래는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는 대사처럼..
오늘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