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새로운 곳으로 이사..

낯섦과 설렘의 그 어디쯤..

by 낭만고양이

명예퇴직 후에는 꼭 이사를 가고 싶었다. 리모델링을 하고 들어가기는 했어도 아파트가 구축이기도 하여서 새로운 맘으로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물론 진작에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거주지를 옮기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작년에 둘째의 대학이 확정되고 이사를 결정했다. 명퇴를 신청했을 당시에는 엄마가 계신 고향으로 귀향하려 하였으나 우리 아이들이 직장을 잡기 전까지는 여기에 더 머무르기로 결정하였다.

작년 11월에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는데.. 여러 원인으로 부동산 한파가 불어서 겨울 내내 거의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만 맘이 조급하지는 않았다. 만약 집이 계속 나가지 않는다면 전체 리모델링해서 살면 되지라는 맘이었다.

우리 집은 단지 내에서 로열동이기도 하고 15층이어서 호기롭게 단지 내 최고가로 집을 내놓았지만 5개월이 지나도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2천을 다운해서 집을 내놓았더니 바로 집이 나갔다. 떠나고 싶던 집이었지만 막상 집이 나갔다고 알았을 때는 왠지 맘속에서 서운함과 아쉬움이 몰려왔다.

여기서 14년 9개월을 살고 아이들을 키워내고 직장 열심히 다니면서 거의 15년을 보낸 집을 떠나보내려니... 무엇인가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들을 떠나보내는 거 같았다.


올해 5월에 부동산 사무소에 가서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괜스레 맘이 두근거렸다. 14여 년 만에 내 인생 중 가장 큰 금액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하자니 괜스레 두렵기도 하고 그랬다. 우리 집에 들어오시는 분들은 우리보다 15년 정도 젊으신 분들이었는데 계약도 부동산 전자계약이라는 걸로 체결을 하였다. 부동산 대출을 받아서 우리 집에 들어오는데 요즘은 대출을 받으려면 전자계약을 권한다고 하였다.

계약금과 중도금 날짜와 금액을 정하고 잔금일은 8월 14일로 정하였다. 매매계약을 체결하니 이제 정든 곳을 떠나야 하는 것이 조금씩 실감이 났다.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바로 우리가 이사 갈 집을 구하러 나섰다. 이미 지역은 정해져 있었고 아파트도 맘의 결정을 둔 상태라서 계약을 체결하고 바로 집을 구하러 갔다. 임장의 중요성을 실감한 것은 현지에 가서였다. 1순위로 찍어둔 집은 생각보다 주위 환경이 좋지 않았다. 방이 제각각 떨어져 있어 성인들이 살기에는 구조가 너무 좋았으나 바로 옆에 지하차도가 있어서 차들이 오가는 소음이 상당했고 아파트 공용 부분도 관리가 조금은 허술해 보였다. 네 집 정도를 봤는데 맘에 들어오는 집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래서 가는 길에 2순위로 점찍어둔 아파트를 갔는데 아파트 공용 부분도 너무 관리가 잘되어 있었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구조도 맘에 들었다. 또 측면으로 소하천을 끼고 있어 자연친화적인 것을 찾던 나의 생각과 딱 맞아떨어졌다. 또한 그날이 토요일이었음에도 부동산 실장님이 꼼꼼히 볼 물건을 정리해서 프린트까지 해서 준비해 주신 정성에 맘이 고맙기도 하여 고민하지 않고 2순위로 점찍어 둔 집을 매수하게 되었다.

가격도 매도금액과 6백만 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수평으로 이동하게 되어 부담도 없었다.


다소 여유 있게 잡은 3개월간의 시간은 초반엔 시간이 안 가더니 입주 한 달을 남긴 시점에서는 쏜살같이 흘러가 버렸다.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하는데 14년을 한집에서 머물다 보니 버릴 짐들이 상당했다. 명예퇴직 휴가기간 중에도 짐을 상당 부분 정리했음에도 버릴 짐들이 많아 앞으로는 물건을 사는데 신중함을 기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필요 없는 물건들은 과감히 버리리라 맘을 먹었다.


이사 준비기간 동안 이사업체 계약, 에어컨, 정수기 이전 설치(한 달 전부터 가능했다), 가스 중단, 통신 이전 설치를 신청했다. 에어컨과 정수기는 신청이 한 달 전부터 가능해서 한 달 전에 신청하였고 나머지는 여유 있게 이전을 신청하였다.

그런데 한 달 보름 전에 계약한 이사업체가 이사 전일 낮 12시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연락이 없어서 견적을 봐주신 부장에게 전화해 보니 휴가 중이라고 하고 1시 이후에 연락을 준다고 하였다.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나 같으면 적어도 이틀 전에 연락 한 번 하고 이사 전일 오전에 또 한 번 연락을 할거 같은데 이사 전일 12시가 되어도 연락이 없으니 걱정이 되었는데 이런 나를 보고 신랑은 느긋하게 기다리면 올 거라고 하였지만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다행히 2시경에 연락이 왔고 8월 14일 오전 8시에서 오전 8시 30분 사이에 방문을 한다고 연락이 와서 맘이 조금 놓였다.


한참이나 남았을 거 같은 이삿날이 드디어 다가왔다. 이사 전날 정들었던 아파트를 떠나니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도 정을 나누었던 옆집과 아래층, 직장 동료 어머니가 우리 동에 거주하셨는데 그 어머님, 가끔 친절하게 안부를 물어주시던 13층 분, 이렇게 네 분에게 작은 선물을 주며 이사 가노라고 인사 말씀을 전하였다. 좋은 덕담을 해주셔서 맘이 따스해졌다.


그런데 이삿날이 낀 그 주에는 수도권에 폭우가 내리며 호우경보까지 발령되는 등 상황이 심각했었다. 이러다 이사 당일 비가 쏟아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내온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항상 힘든 가운데에서도 운이 좋았기에 비가 그칠 거라고 내심 믿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무렵.. 그치고 내리기를 반복했던 비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가 오다가는 내일 이사를 못 갈 것도 같았다. 빗소리가 커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그렇게 이삿날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빗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었다.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짐을 쌀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애들은 각자 놀고 오후 5시까지 새로 이사 간 집으로 오라고 하고 오전 8시에 내보냈다.

8시 30분에 이사업체에서 짐을 싸러 왔다. 요즘 이사업체는 한국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계약한 업체는 전원이 다 몽골분 들이었다. 팀장도 몽골분인데 오래 한국에 거주한 사람으로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짐을 싸는 동안에도 내리던 비가 거짓말 같이 사다리차에 짐을 실으려고 할 때 완전히 그친 건 아니고 비가 상당량이 줄어서 짐을 내보내도 좋을 만큼으로 비가 줄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 이후로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아주 소량이었고 또한 오후에는 비가 완전히 그쳐서 날씨로 인한 이사문제는 없었다.

생각보다 짐을 싸는 데 오래 걸렸다. 12시 30분에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거의 12시가 되어서야 짐 싸는 게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매도 물건도, 매수 물건도 공동 명의로 하였는데 매수하는 쪽 부동산에서 12시 30분에 와달라고 하여 부득 신랑은 매도하는 곳으로 나는 매수하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매수하는 곳의 부동산으로 가니 매도자와 매도자 아버님이 와 계셨는데 거기도 매도하는 곳에서 돈을 빨리 달라고 아침부터 전화가 와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나도 매수자에게 빨리 송금해 달라고 부탁하였고 다행히 12시 50분경에 잔금을 완납하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원래 절차대로라면 잔금 주기 전에 짐을 뺀 집의 상태를 확인하라고 하던데 그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 같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잔금을 전해줘야 하므로 어느 한 곳에서 삐끗하면 나머지 다른 집들은 다 어긋나 버리는 일이기에 마지막 잔금을 치르기까지 정말 가슴이 떨렸다.

법무사님께 등기이전 관련 서류를 넘기고 1시쯤에 새로 이사 가는 곳으로 짐을 나를 수 있었다. 비가 그치고 나니 정말로 가만히 있어도 등에 땀이 흘렀다. 이 더위에 계속 짐을 날라야 하는 분들의 수고에 감사했다.

사소하게 생각되는 것들도 정말 많은 사람들의 노고로 이루어지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어 감사한 맘이 크게 드는 것 같다.

날이 너무 더워지다 보니 짐이 들어오는 속도도 더뎠다. 또한 새로 이사 오는 집은 엘리베이터로 짐을 날라야 하기에 시간이 더 걸리는 거 같았다. 짐을 나를 때 장소를 지정해 주고 에어컨 이전 설치 기사분, 정수기, 통신회사 등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짐을 나르는 것은 오후 6시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짐이 다 들어온 것은 맞지만 다시 다 뒤집어서 정리해야 하므로 아직도 이삿짐을 정리하려면 한참이나 남은 일이었다. 그래도 무사히 이사를 완료하고 나니 안도감이 밀려들었고 저번 집보다는 쾌적한 집 상태로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이사 첫날 우리들은 짜장면을 먹고 아직 짐정리가 끝나지 않은 상태로 잠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짐정리는 사흘을 더해서 어느 정도 완료할 수 있었다. 새벽 6시경부터 식사시간만 빼고 쉬지 않고 짐정리를 했다. 짐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땀에 흠뻑 젖어도 무언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니 힘들어도 기운이 났다.


새로운 터전에서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도 전혀 새로운 환경이었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이사 두 번째 날은 가스 차단기에 오류가 생겨서 사이렌이 울리는 소동이 벌어져 관리사무소에서 와주셔서 손을 봐주고 가셨다. 근 10분 동안 화재경보 사이렌이 울리는데 정말 식겁했다.

우리보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이 주거지를 새로운 곳으로 옮긴다면 정말 힘들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생활권을 바꾸지 않고 이사를 가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애들이 어느 정도 독립할 수 있는 5~6년 정도 후에 귀향할 생각이었는데 이번 이사를 하면서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겪어보면서 다시 또 이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사실 쏙 들어갔다. 큰 금액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순간들이 너무 가슴 떨렸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젊을 때만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아파트도 맘에 들고 자연 친화적인 환경도 맘에 드니 말이다.

이전에 조금은 슬펐던 기억들은 과거로 묻어두고

새로운 터전에서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보리라 결심했다.


생활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낯섦과 설렘의 그 어디쯤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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