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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Jun 02. 2024

타임머신

 “늘은 학교 안 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도 넘었건만 아직도 만날 때마다 학교 안 가는 날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만큼은 장난기 많은 고등학생이 된다. “응, 오늘 쉬는 날이야.“


 10년 전이 아쉽다가도, 또 다가올 10년을 기대하는 맘으로 살아보겠다 다짐한다. 타임캡슐에 하나씩 담아놓을 것 없나 또 친구들 사이를, 골목들 사이를 기웃거린다.



 가 오는 날은 나의 날, 비가 자주 와서 좋다. 비 오는 날 맡을 수 있는 땅 젖은 냄새, 그게 사실은 균에서 오는 향이란다. 과학 얘기를 참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상식이 깨지는 게 신기해서 그랬던 것 같다. 깨진 상식을 다시 맞춰 보며 자랑할 수 있었던 친구와 요즘 뜸하다. 그래서 과학 얘기도 이젠 시시하다. 맘 놓고 재롱잔치를 벌일 수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귀한지.


 아침마다 나를 웃겨 주는 김창완 라디오의 예전 오프닝을 듣는다. ‘오늘은 비가 온다. 젖은 낙엽들이 부둥켜안고 있다. 헤어지지 말자. 애처로운 듯 빗물이 낙엽더미를 피해 옆으로 흐른다. 주저 없이 지나가는 빗물과 죽어도 떨어지지 못하는 나뭇잎은 가을의 두 얼굴이다. 어차피 떠날 것을~ 미련은 바보들의 되새김질이다. 빗물은 말한다.’. 써 놓고 보면 슬픈데, 들을 땐 왜 씨익 미소 짓게 되는지.



 근 재밌게 본 드라마가 있다. 만화 잡지를 출판하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 얘기, 잘 가다가 8화에서 멈칫한다. 만화가를 꿈꿀 때만큼은 특별한 사람일 수 있었다고. 나도 만화를 꿈꿀 땐 참 희망으로 살았다. 니가 무슨 만화냐는 핀잔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인터뷰하는 상상까지. 지금은 조금 방향이 달라졌지만, 그것 나름대로 소소하니 좋다.


 머리 자르고 집 가는 길, 왼쪽 어깨에 가방을 걸치고 무게중심을 맞추려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걷는다. 다시 오른쪽엔 선글라스 낀 자전거 탄 아주머니, 왼쪽엔 넥타이 부대. 일상을 지키는 사람들은 꿈꾸는 사람들이다.



 랜만에 토요일 아침 카페로 나가 친구들과 책을 읽었다. 또 혼자 몰래 웃는다. 한 달에 한 번씩 타임캡슐 담을 게 아니라 매일을 담아야 하는데, 말해 놓고 그것도 욕심이라며 슬쩍 무른다. 그래 사람 안 바뀌지. 게으른 게 아니라 천천한 거라고 우긴다.


 앉은 카페 장식인 줄 알았던 거북이 등껍질이 움찔하더니 느린 발로 엉금엉금 긴다. 기어서 잘도 간다. 참, 올해 말부턴 학교도 다시 갈 것 같다. 느린 걸음이지만 당당하게 말해야지. 오늘은 학교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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