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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ug 11. 2020

인터넷에서 진짜 소통이 가능할까

소통의 허상에 관하여


"소통"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소통'이란 말은 인터넷을 대변하는 대표적 키워드다. 소통이 없다면 인터넷은 의미를 잃는다. 카페나 홈페이지, sns 등은 모두 소통을 매개로 한다. 때문에 "나는 소통을 원해요. 소통하고 싶어요."라는 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인터넷 속 소통은 매우 모순적이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라기보다는 단일 방향의 폐쇄적 커뮤니케이션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sns는 나의 일상, 또는 생각을 공유하는 대표적 수단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언제나 최신의, 새로운 피드로 업데이트되어야만 한다는 한계가 있다. 최신의 정보로 업데이트되지 않으면 소통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알고리즘은 최신의 정보만을 자동으로 걸러 제공해주므로, 지나간 정보는 금세 구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구식 정보를 찾아볼 사람은 없다. 알고리즘은 자신과 가까운, 자주 찾는, 관심 있는 이의 정보를 우선 제공하므로 소통 자체를 선별적으로 만든다. 또한 이러한 알고리즘의 성격 덕에 새로운 소식으로 업데이트하지 않는다면 관심조차 받을 수 없다. 업데이트되지 않는 SNS를 굳이 찾아가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정보들 역시 나의 취향 따위를 전시할 뿐이기에 아무런 소통의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과거에는 댓글이라는 수단만이 소통의 기능을 담당했지만, 현재는 '좋아요' 나 '공감'이 그 기능을 대신한다. 그러나 이제 소통이란, 의사소통의 개념보다는 '내가 당신의 일상을 지켜보고 있다'의 의미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이라기보다 마치 찾아왔다는 도장을 찍는 의례적인 관습으로 전락했다. 더욱이 새로운 정보로 업데이트하지 않는다면 소외되고 버려지므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피드로 업데이트하도록 부추김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관심을 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란다. 때문에 SNS를 통해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타인의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면, 흔적을 남길 이유도 없다. 보통 글 쓰는 이들 스스로 자신을 '관심종자'라고 부르지만, 이 세상에 관심종자가 아닌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것은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욕구다. 그럴수록 더더욱 소통을 원하지만, 소통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싶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을 거의 만능으로 생각한다. 인터넷에 모든 정보가 들어있으므로 직접 무언가를 찾아보고 생각하기보다 위키 또는 백과사전에 의존한다. 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집단에 속함으로써 집단의 생각을 공유한다. 집단의 생각은 곧 자신의 생각으로 변질되고, 정보의 맹신은 아무런 비판적 사고 없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가짜 뉴스의 파급력이 더욱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이 지닌 신념이나 가치관 따위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부합하지 않는 정보를 걸러내는 것을 '확증편향'이라 부른다.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확증편향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소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특히 정치적 사안에서 확증편향은 배가 되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견은 신성시되며 반대 의견은 배척되므로 소통이 아닌 단 방향의 정보만이 우위를 갖는다. 이 때문에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이들끼리의 토론은 불가능하다. 이미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SNS가 바라는 소통은 어떤 것일까? 소위 '좋아요' 품앗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단지 좋아요를 받기 위해 나를 팔아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면, 내 삶은 실체 없는 빈 껍데기일 뿐이다. 그러나 갈수록 SNS는 쌍방향의 의사소통이 아닌, 나에 대한 관심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 알고리즘 자체가 이미 선택권을 앗아간다. 긴 글 읽지 않는 시대는 더더욱 소통을 저 구석으로 밀어내고 사진으로 간단하게 표현되는 글들은 어떤 것을 바라는지 모호하기만 하다. 우리가 소통이라 믿는 것은 사실 알고리즘에 의해 강요되는 취향을 따르고, 소외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하도록 강요받는다. 콘텐츠의 주인은 나이지만, 타임라인의 노출과 정렬은 순전히 알고리즘에 의해 이루어진다. 소통은 의사소통의 개념보다 수많은 방관자를 만들어낸다. 인터넷이 지닌 자유로운 교류는 과연 가능할까? 순전히 나와 아무런 접점도 없는 타인과 교류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의 관심을 바라고 타인과의 소통을 바라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무엇일까 싶다. 나의 생각을 개제하고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했을 때 거기서 그친다면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결국은 활발한 대화의 과정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너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이렇게도 생각해.' 진정한 소통이란 이러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때라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늘 소통을 강조하고 갈망하지만, 어째서 소통은 단방향의 폐쇄적 커뮤니케이션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인터넷 속 소통이란 사실상 "나는 이렇게 생각해. 토 달지 마."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하루에도 SNS를 들락날락하며 수많은 소식들을 접하지만, 정말로 소통은 이루어지는 걸까? 인터넷 속 소통은 무엇일까? 우리는 진정한 소통 속에 살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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