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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ug 11. 2020

어떨 때 가장 행복하세요?

언제 가장 행복하냐는 말에 대답할 수 없었던 이유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행복의 의미를 창안해낸다. 작은 것이 행복이다 혹은 큰 것이 행복이다. 고독이 행복이다 아니다 행복은 있다 없다. 왜 늘 행복에 대해 자의식이나 예민함을 동원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행복이 자기의 부모나 내무반장이나 애인도 아닌데 왜 그렇게 떠받들고 쩔쩔매는지 알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러는 동안 행복에 관계없이 행복에 관한 의미 규정만 많아진다. 그것이 <가치>라는 규칙을 만드는 사이클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꿈이었을까>은희경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은희경 작가의 소설 <그것은 꿈이었을까>속 대사가 떠오른다. 행복은 특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행복하지 못해 우울해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많지만 무엇이 행복인지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그 감정은 결코 지속되지 않는다.


우연히 행복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생겼다. "어떨 때 가장 행복하세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조금 난감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를 철저히 계획하는 사람은 못된다. 대부분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즉흥적이다 보니 아니면 말고다. 오늘은 저기나 한번 가볼까 하다가도 귀찮으면 다음에 가야지. 하거나 열심히 목적지를 찾아가다가 재미가 없으면 금세 돌아오거나, 목적지 하나만 정하고 무작정 찾아가서 발길 닿는 대로 몇 시간씩 걷기도 한다. 거울을 보다가 혼자 웃기도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분이 업 되기도 하고, 오래간만에 지인에게 온 연락에 기쁨을 느낀다. 만일 "당신은 어떨 때 가장 즐거운가?"라고 물었다면 쉽사리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떨 때 가장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상하게도 내가 언제 행복하지? 하고 멍해졌다.


행복과 즐거움은 동의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어쩐지 다른 느낌이 든다. 즐거움은 늘 순간적이란 것을 인식하기 쉽지만, 행복은 그 상태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어떨 때 가장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무척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별로 대답할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아 재미있네', '아 기분 좋네', '아 좋은 날이네', '날씨 좋네'라고 느끼는 날은 많아도 '아 행복하네'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운동을 할 때, 우연히 걷다가 멋진 노을을 봤을 때, 글쓰기를 좋아하므로 글을 쓸 때 행복하다고 대답했지만, 엄밀히 따져 그것은 즐거움이지 행복감이 아니다. 조금 이상한 말 같지만, 나는 행복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 산다. 최근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뭘 해야 더 재미있게 살수 있을까다. 그것과 행복이 다른게 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거창한 것들이 필요할 것만 같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값비싼 음식을 음미하며,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아야만 할 것 같다. 또 소소해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만 같다. 남들은 행복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라는 생각 역시 거창한 것이 행복이라는 관념이 무의식적으로 박혀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요즘 나는 클라이밍도 해보고 싶고, 악기를 배워 직장인 밴드로 활동해보고 싶다. 복싱도 배워보고 싶다. 독서모임도 해보고 싶다. 지금도 독서모임에 나가고 있지만, 좀 더 깊이 있는 책을 읽고 진지한 토론을 해보고 싶다. 사랑도 연애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는 늘 생각에 머물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싶은 것들은 많지만, 생각에 머물기 때문에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마음먹은 것들을 하나씩 실행해야만 삶은 변할 수 있다.


또 한편, 행복에 대한 정의는 무척 많지만 즐거움에 대한 정의는 거의 없다. 무엇이 즐거움이고 기쁨인지보다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한 이야기들만 넘쳐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억지로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다. 어떤 이는 스스로 통제 할수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직장에서 어떤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으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작고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얻는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은 늘 행복한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행복에 대한 정의와 기준은 너무나 다르다. 그런데 행복은 어떤 욕구가 반드시 충족되어야만 한다.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결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행복은 기쁨과도 비슷하다. 행복은 행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즐거움은 마음의 거슬림 없이 흐뭇한 상태를 말하며 정신적 충족을 말한다. 즐거움은 매 순간순간 다가오는 감정이지만, 행복은 행위의 결과가 모여야만 한다. 결국 이러한 차이 때문에 당신은 어떨 때 가장 행복한가요?라고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 할 수 없다. 그러나 즐거움은 다르다. 즐거움은 사소한 순간에도 다가오므로 가볍고 거리낄 것이 없다. 어쩌면 행복이란 단어 자체가 잘못된 말인지도 모른다. 행복은 정신적 만족과 물질적 만족 둘 모두가 충족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둘 모두를 충족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행복에는 수많은 정의가 존재하지만, 무엇이 행복이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


나는 즐겁게 살고 싶다. TV 프로를 보다가 쿡쿡 웃기도 하고, 무작정 낯선 곳을 찾아가서 다가오는 우연을 즐기고 싶다. 괜히 와서 개고생이네라고 헛웃음 지을 때도 많지만, 그 또한 즐거움 아닌가. 운전을 하다가 들어오는 풍경에 넋을 잃기도 하고 당장 카메라를 꺼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즐거움이 쌓이면 슬퍼할 틈이 없다. 그러나 즐거움 또한 매일 얻을 수는 없다.


산다는 것은 참 어렵다. 무언가를 정의 내리기도 어렵고, 내 뜻대로 되는 것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행복이란 말은 늘 족쇄가 된다.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 상태가 되기에 끊임없이 행복의 방법을 고민한다. 억지로 무언가를 했지만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저 다가오는 대로 비바람의 풍파를 견뎌내며 다가오는 즐거움을 만끽한다면 오히려 삶은 더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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