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적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Aug 12. 2020

노올자~ 마법 같은 주문의 그리움

관계에 대하여


"ㅇㅇ야 놀자~"


어린 시절 이 말은 마법 같은 주문이었다. 옆집에 누군가 이사를 오고, 이름을 알게 되면 곧바로 ㅇㅇ야 놀자~며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곤 곧바로 친구가 되었다. 물론 이 주문 같은 말은 아주 어린 시절, 그러니까 10대 초반까지만 유효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엔 누군가와 친해지고 친구가 된다는데 별다른 장벽이 없었다. 학교에 들어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고 특별한 계기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된 뒤였다. 나는 20대 초반 무렵부터 객지 생활을 했다. 객지인 만큼 아는 지인 하나 없었고, 아무런 연고도 갖지 못했다. 또래의 친구도 없었기에 주말마다 혼자가 되는 기분을 맛봐야만 했다. 그 기분을 떨치기 위해 몇몇 동호회에 나간 적이 있다. 그러나 동호회에 나가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느끼곤 했다.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장벽 말이다. 


동호회는 말 그대로 동호회일 뿐이었다. 동호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더 이상 관계는 진전될 수 없고, 참석하더라도 그 관계는 발전할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해봤지만,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같은 의문을 가졌다. 왜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 같은 유대감은 가질 수 없고, 친구가 된다는 것은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을까.


직장생활을 하다 이직을 하게 되면 잃어버리는 지인들은 수없이 많다. 각종 경조사에 참석하지만, 직장동료는 직장동료 이상이 되지 못한다. 경조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덧 '기브 앤 테이크'가 되어버린다. 가끔 연락이 된다고 해도 "언제 술 한잔하자"라는 기약 없는 약속만 가득해진다. 그것은 친구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친구와 연락하면 "언제 술 한잔하자"라는 기약 없는 약속들만 가득해진다. 그러다 보면 점차 만날 수 있는 친구는 줄어들고, 연락이 끊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누구나 인간관계를 중시 여긴다고 하지만, 그 관계들도 지나치게 계산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간관계는 오직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 하나를 얻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지도 말이다.


물론 내 말에는 모순이 있다. 내가 아는 모든 이를 신경 쓰고 챙기는 일은 불가능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 자주 만날 수 없는 이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 어색함을 떨치기란 쉽지 않고 그러다 보면 연락이 끊어지는 경우도 많다. 어린 시절 내 행동반경은 같은 지역, 같은 동네, 같은 학교라는 공통 그룹 속에 속해있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면 이 그룹은 다양하고 넓어진다. 또 그 시절엔 함께 즐길 거리가 많았지만, 이제 그런 것을 찾기란 무척 어렵다. 성인이 될수록 관계가 다양하고 넓어지지만, 지나치게 넓은 탓에 그것을 감당하기 벅찬지도 말이다. 그러다 보면 서로에게 무심해지는 일 따위는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다만, 나는 인간관계의 그 '장벽'이 싫다. 이 그룹을 벗어나면 결코 가까워질 수 없다는 '비즈니스적 관계'라는 장벽 말이다.


그러고 보면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어린 시절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이제는 만나는 이들마다 나이, 학력, 지역, 직업 따위를 묻는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만큼 이런 말들밖에 건넬 수 없다지만, 이 물음 앞에서 어쩐지 나의 모습을 포장하고 드러내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벗어날 수 없고 성인이 될수록 사회적 관계에 얽매이게 된다. 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나의 '지위'는 나를 드러내는 무기가 되고 존경과 시기를 받는다. 이 그룹들은 나와 비슷한 이들,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로만 이루어진다. 


독서 모임에 나갈 때면 자신의 직업을 위해 책을 읽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직업을 드러내며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강조한다. 그럴 때마다 모순을 느낀다. 나를 드러내는 수단은 어째서 나의 사회적 위치가 되어버렸을까 하고 말이다. 어린 시절 같은 순수함은 이제 존재할 수 없다. 누구나 바쁘게 살아가고, 바쁘지 않은 현대인은 외면당하고 소외감을 느낀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포장하기 위해 애쓴다. 나는 그런 관계들이 싫다. 그래서 가장 오랫동안 내 곁에 남는 친구는 어린 시절 알던 고향 친구이며,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다. 갈수록 새로운 친구를 만날 일은 줄어들고, 그 관계도 가벼운 관계에서 더 나아갈 수 없다. 그냥 아는 사람만 늘어간다.


나는 그립다. 어린 시절 단지 이름만 알아도 금세 친해지고 친구가 되었던 그 순수함이 그립다. 나의 세계가 넓어진 만큼, 나를 둘러싼 세계도 넓어졌지만, 그 마법 같던 말이 그립다. 놀자 한마디면 금세 친해지고 친구가 되었던 그 시절이 말이다. 아무것도 필요 없었던 주문의 말.


ㅇㅇ야 놀자~

매거진의 이전글 MBTI를 신뢰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