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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이우주 Nov 17. 2024

또 한계에 부딪히게 될까 겁이 난다

기초가 다져지지 않은 학문의 끝이 어딘지 이미 한번 맛보았기에...

한국에서 작곡과를 나왔지만 좀 특이한 케이스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했던 것도 아니고 고2 때부터 피아노부터 시작해 작곡을 배웠다. 나는 공부를 못했다. 근데 대학은 가야겠고, 공부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 같아 찾은 돌파구가 예체능을 하는 거였다.  당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이 생겼고 악기를 하는 사람들과는 당연히 겨룰 수가 없기에 한 선택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음악 공부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피아노 레슨과 작곡 레슨을 받는 곳이 지하철 편도로 한 시간 반씩 떨어져 있었는데 늘 지하철 안에서 곡을 썼다. 지하철에 자리가 없으면 맨 앞이나 맨 끝뒷자리로 가 최대한 남들에게 피해 안 주는 구석에 앉아 썼다. 처음 작곡공부를 시작한 순간부터 정말 한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항상 피아노연습을 하거나, 남의 악보를 분석하거나, 화성학 공부를 하고, 곡을 쓰거나, 수능공부를 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인 공부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냥 거기서 요구하는 시험에만 합격하면 되는 것이다. 피아노도 한곡만 2년 내내 연습했다. 작곡과 실기시험은 피아노 연주 한곡, 화성학 시험, 작곡 시험이었으니까. 기초를 제대로 다지거나 작곡에 대해 심오하게 생각해 볼 기회는 없었다. 그냥 대학에 가는 것이 제일 큰 목적이 이니까.


꽤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공부로 덤볐다면 절대로 못 갔을 대학이다. 내 합격 소식에 기뻐하던 작곡 선생님은 바로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우주야, 너 이제부터 시작이야. 음악 공부 정말 계속 열심히 해야 해."라고 하셨다. 나는 사실 이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니? 대학에 들어왔으면 이제 끝 아닌가? 목표를 이루었잖아?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다.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내 한계를 알게 되었다. 나는 기초가 없었다. 기초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땅에 탑을 쌓아 올렸으니 불안 불안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제대로 기초를 쌓으며 음악을 해오던 친구들이었다. 바로 실력의 차이가 느껴졌다. 걔네들이 음악을 가지고 노는 동안 나는 겨우겨우 여기저기 땜질을 하며 버텼지만 그 탑은 곧 무너졌다. 음악에 대한 내 열정도 한순간의 치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렇게 재능이 있던 것도 아닌 것 같다. 


요즘 컴퓨터 공부를 하면서 음악을 공부했을 때와 같은 기시감이 느껴 겁이 난다. 컴퓨터 공부도 단순히 취직을 하기 위해 시작한 거니까. 잘 모르겠다. 이번 학기가 한 달 정도 남았다. 일단은 학기를 잘 마무리하는 것에 집중하고 방학기간 동안 잘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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