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김혜남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때가 있다.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지만
그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달려있다.
실패하더라도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면
그것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니다.
남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 봐야
그 기쁨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슬픈 일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인생이고,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게 인생이다.
나쁜 일이 꼭 나쁜 일이라는 법도 없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시간이 가는 것 같지만
어떤 마음가짐이냐에 따라
10년 뒤 인생이 크게 달라진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커다란 축복은
나의 울음을 지켜봐 줄 누군가가 내 옆에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현실의 짐을
등에 짊어지는 것이다.
후회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고치려고
현재와 미래를 담보로 내놓고 있는 것과 같다.
과거가 고통스러웠다면
그것을 잘 지나온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인간관계가 피곤한 노동처럼 느껴진다면
당신을 아는 모든 사람이
모두 당신을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이별을 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떠날 사람은 떠날 테고,
남을 사람은 남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다.
나이 듦으로 인한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그러나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에 매달리다 보면
내가 의미 있게 써야 할 시간,
내가 더 사랑해야 할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잃게 될 뿐이다.
보톡스 주사로 주름을 펴서
젊어 보이는 얼굴을 얻는 대신
표정을 잃어버린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오히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아무리 사랑해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절대 상대방을 다 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나 자신도 모르는데
상대방을 어찌 다 알겠는가.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나를 알려주고
상대방을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혼 생활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비결이다.
좋은 부모란 아이의 필요를
항상 충족시켜 주는 부모가 아니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결핍과 좌절을 경험해야 하고
결핍과 상실을 스스로 찾아 메우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좌절을 주면
아이는 서서히 좌절을 견디는 법을 배워나가고
그러면서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작은 도전에 성공을 거두면
다음 도전이 더욱 쉬워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성공이 쌓일수록
우리는 실패 가능성보다 성공 가능성을 더욱 크게 보고,
실패하더라도 그 역시 성공을 향한 과정이라고 여기며
재도전하게 된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더 많은 실수와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싶다.
그렇게 쌓인 경험들이
얼마나 값진지를 알기 때문이다.
아이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결국
아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권리가 있음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부모인 내가 바라는 아이가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이 되도록 놔두는 것이다.
부모에게는 부모의 길이 있고,
아이에게는 아이의 길이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부모가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가는 것뿐이다.
무엇엔가 열중했던 경험은
당신이 훗날 무엇에든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당신은 그것을 이겨냈고
흉터가 바로 그 증거이다.
누군가에게 충고하고 싶다면
그냥 가만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난 후
조심스레 당신의 의견을 말해 주어라.
그리고 결정은 그에게 맡겨라.
설령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할지언정
그것은 그의 몫일뿐이다.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그 어떤 말을 해주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