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O Cebreiro - Sarria
순례길 DAY 27. O Cebreiro - Triacastela
순례길 막바지에 누구나 이런 일상적 피로를 경험할까? 낮잠을 자도 몸이 무겁고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는다. 이즈음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부지런함은 고사하고 6시에 겨우 일어나서 아침 채비를 했다. 갑자기 컨디션이 떨어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의 걸음으로 인한 혹사(?)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메세타 지역에서 한동안 기침을 달고 살았던 것 때문인 것도 같다. 게다가 외이염을 앓았던 왼쪽귀에 생긴 염증이 계속 안 좋아졌고 샤워하다가 고막으로 번진 탓에 귀가 먹먹하고 잘 안 들리게 되었다. 그나마 좀 큰 도시인 Sarria에 도착하면 병원에 들를 계획이다. 외이염 때문에 매년 정기적인 고생을 하는 지라 조심하고 조심했는데도 결국 이어폰의 이어 플러그 때문에 염증이 심해져 버렸다.
갈리시아에서는 주로 숲길을 걷는 구간이 대부분이었다. 고도가 점점 내려가면서 마을을 마주치는 횟수도 잦아졌다. 내천이나 계곡을 끼고 있는 마을 대부분은 축산을 주업으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나 소나 양을 볼 수 있었고 마을에 진입하면 시큼한 소똥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떤 곳은 소똥냄새가 너무 심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여름에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좀 더 진한 냄새를 맡으며 이 길을 지날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소규모 축산마을이 점점이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니 정성스럽게 돌을 다듬어 만든 소박하고 정겨운 성당(?)을 자주 지나치게 된다. 10여 가구 정도 사는 정말 작은 마을에도 성당은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래전 순례길을 걷던 사람들은 이런 성당에 들러 쉬기도 하고 기도도 하며 마음채비를 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글은 순례길 기간 동안 매일매일 업데이트 했던 나의 SNS 포스팅을 기반으로 한다. 매일 순례길 일정을 올리고 공유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잠잘 시간을 줄여가면서 사진을 정리하고 하루 일정을 간략하게 정리한 포스팅을 하루도 빠트리지 않았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네덜란드의 내 친구와 했던 약속(?) 때문이다. 네덜란드 추억보정 여행 중에 유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집에 며칠 묵었다. 나는 네덜란드 여행 동안 그전에 가보지 못했던 미술관을 몇 군데 들렀는데, 몇 시간 동안 계속 서있었더니 다리가 좀 아팠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이런 약해빠진 놈이 절대 순례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을 리가 없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날 우리는 이 이야기로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그 친구는 나에게 순례길 걷는다고 거짓말하지 말고 매일매일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포스팅으로 정확하게 밝히라고 했던 농담에 발끈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것이 이 기록의 시작이 되었다. 그 덕분에 어느새 내 포스팅은 함께 순례길을 걷는 친구들에게도 그간 걸었던 날짜나 동선, 사진을 체크하는 가이드 역할을 했다. 기록이 주는 힘은 이런 것인가 보다. 처음엔 그 기록의 무게나 소중함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이 쌓이다 보면 그동안의 고생보다 몇 배의 보람으로, 혹은 새로운 가치가 되어 돌아온다.
순례길 DAY 28. Triacastela - Sarria
2월 마지막날에 떠난 여행이 벌써 한 달 하고도 12일 정도 지속되고 있다. 갈라시아의 봄은 완연해 길 여기저기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봄에 걷는 순례길의 장점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변하면서 생명이 약동하는 순간을 한 달 내내 가까이 만끽할 수 있었다. 순례길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다 보니 해외에 나와있다는 감각도 무뎌졌다. 알베르게 생활도 꽤 적응해서 말년병장처럼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을 거의 자동으로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모든 여행이 마찬가지겠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이나 순례길에서 얻게 되는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순례길 기간동안 내가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 내 몸이 힘들 때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반복되는 일정에 있어서 나의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등등, 그전에는 잘 몰랐던 나의 새로운 면을 좀 더 알게 되었다. 이런 여행을 20대에 더 많이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보다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려나. 물론 아직도 늦지 않았다. 나는 히말라야도 걸어보고 싶고, 알프스 트레킹도 가고 싶다. 죽기 전에 아메리카 PCT(Percific Crest Trail)에 도전하는 것도 꿈꾸고 있다. 죽기 전까지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고 실패하면서 '나'라는 사람과 더 친해지고 싶다.
작은 카페나 식료품점이 있을 리가 없을 것 같은 작은 마을에서 가끔 도네이션으로 먹을 것을 제공하는 장소를 만나게 된다. 수익을 위한 영업소가 아니라서 정확한 위치를 소개하기는 어렵다. 큰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런 곳들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개 30,40대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도네이션만으로 먹고살만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순수한 마음들이 남아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순례길의 전통은 위대한 건축물이나 장엄한 풍경이 아닌, 이런 순수한 마음들로 지켜지는 것 같다. 한국에, 그것도 부산과 서울을 잇는 중요한 장소에 순례길 같은 역사적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싶어 하는 길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 길에 무슨 짓을 했을까? 아마 길이 지나는 지역마다 축제들이 하나씩 생기고, 상업지구가 번창하고, 마을과 마을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골머리를 썩다가 결국 대기업 상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한심한 풍경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경제적 수익을 위한 한국사람들의 빠르고 가차 없는 집념은 시간과 물리적 공백을 허용하지 않으니 말이다. 한국의 그런 다이내믹함이 지금 세계가 놀라워하고 있는 K-컬처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실상 그 K-컬처는 다이내믹한 성장의 그림자에서 발버둥 치던 마이너들이 흘린 눈물과 땀으로 이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Sarria부터는 순례길 막바지 100km에 근접한 구간이라서 새로운 순례자를 정말 많이 만나게 된다. 관광차 순례길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제부터는 고요함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어야 한다. 알베르게 예약도 지금부터는 필수다. 비수기라서 한동안 예약을 하지 않고도 몇몇 도시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사리아에서는 단체 관광객들이 이미 주요 알베르게를 점령해 버려서 어쩔 수 없이 사설 알베르게에 묵어야 했다. 나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곧장 사리아의 시립병원을 들렀다. 염증이 생긴 귀에 투여할 항생제를 처방받아야 했다. 여행자 보험 외에는 딱히 준비된 것이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시립병원은 기대했던 것보다 친절했고 시설도 깔끔했다. 여권을 확인하더니 진료나 처방도 무료로 처리해 줬다. 꽤나 값을 치러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했고 감사했다. 물론 한국이었다면 훨씬 더 섬세하고 빠른 속도로 고막 위에 쌓인 염증을 치료했을 테지만 이 정도가 어딘가.
나는 이날 순례길을 마치고 떠날 다른 여행 일정과 관련된 교통편과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이 여행을 계획할 때 생각해 두었던 일정과는 모든 것이 많이 달라졌다. 또 다른 여행이 또 다른 만남으로, 발견으로, 삶으로 나를 이끌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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