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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니 Jun 26. 2020

보통의 무용수

나를 받아들이니 편하구나.



다니 중학교에 특. 활이 처음 개설되었다. 신나게 들어갔던 재즈댄스 수업을 인연으로 무용 학원에 등록했고, 3개월 준비 끝에 예고를 수석으로 진학했다. 아마 그때 무용 선생님도 내가 그 정도까지 할 줄은 모르셨던 것 같다. 취미로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진로를 바꾸기 어려운 예고에 진학했으니, 주변에선 모두 놀랄 수밖에.


나는 이거다 싶으면 별로 생각 안 하는 타입이라, 이 선택에 아직도 전혀 후회가 없다.

모두의 놀람과 축하 속에서 뭐가 된 것 마냥 무용을 했지만, 사실 나는 무용 돼지로 고민이 많았던 청소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때까지 말라있던 내가, 왜 인지 중학교 1학년이 되니 살이 찌기 시작했다. 무용을 하면 빠져 줄줄 알았던 살이 도무지 소식이 없었다. 무용을 시작할 때 반대에 부딪힌 설움을 이겨내고 어렵게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살이 오히려 더 찌니 당황했다. 땀복 안에 몸을 구겨 넣어 레슨을 뛰고, 몸을 움직이는 게 밤 9시, 10시가 되어야 끝이 나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는 상황.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원래 잘 먹었다. 엄마 아빠 말씀으로는 못 먹는 거 없이 '무슨 어린애가 저런 거까지' 할 정도로 잘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는 잘 먹는 게 창피했는지, 안 먹고 다이어트를 하는 친구들이 못마땅했다. 그러면서 살이 빠지는 걸 보면 더더욱 못마땅했다. 무슨 심보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가 너무 웃기다. 딱 꿀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무용하면 돈 엄청 든다던데.



맞다. 나는 돈 잡아먹는 귀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못 빼는 나를 위해 또 귀한 자본이 투입됐다.


우리 집에는 아주 거대한 러닝머신 하나가 있었다. 그러니까 딱 고등학교 때 들여온 것으로, 검은색에 크기는 헬스장에 가야 볼 수 있는 크기, 소음도 적고 자리도 많이 차지했다. 레슨이 끝나고 집에 와서 땀복 차려입고 에쵸티를 보며 러닝머신을 했다. 저녁은 감자. 와 서럽다 지금 생각해도.


서러움을 뒤로하고 살을 빼야 하니 열심히 러닝머신을 탔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때 나를 운동하게 했던 힘은, 결국 먹는 거였다. 먹기 위해 운동했고, 먹기 위해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현재의 생각을 가지고 저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나는 먹는 것을 조절했을 거다. 이 무슨 비굴모드인가 싶지만, 그렇게 먹고 싶은 거 다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키가 많이 안 컸다. 그럴 줄 알았으면 몸매라도 가꿀걸.


무용 돼지로 살아온 내 시간들 속에 분명 놓친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학창 시절 좀 더 멋진 사진들이 남아주지 않았고, 먹는 것과 맞바꾼 몸에 대한 나의 자존감이 그랬다. 그렇게 하락된 자존감은 고스란히 몸에 자국으남았다.

그렇다고 아직도 몸매 관리를 잘하냐 하면 또 그렇지도 못하다. 후회는 있지만 이 반전 없는 인생. 가끔 나의 요가 사진들에 몸매가 좋다고 칭찬해 주는 분들, 워너비 몸매라고 관리 잘하는 거 부럽다고 해주시는 분들께 정말로 죄송하다. 그냥 가끔 사진이 잘 나오는 겁니다 하고.



아오! 속이 씁쓸하게 시원하구나. 



여전히 공연 때가 되면 바짝 힘주어 다이어트를 한다. 나는 몸매 좋은 무용수가 아니니까. 휴 인정하니 편하다.

대신 매일 운동을 한다. 습관이 들어 살이 찌나 안 찌나 조금이라도 운동은 한다. 이제는 무겁고 거대하지만 소음 적은 그 녀석이 없어도, 작고 소음 있는 녀석이 대신 15분에 150 칼로리를 소모하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마음 편하게 잘 먹기도 한다. 그래도 살은 나를 배신하지 않고 함께 간다. 당분간은 또 다이어트 모드로 들어가야겠지만, 먹는 행복과 땀 흘리며 운동하고 춤추는 행복 모두를 가지려면,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세상에 내가 신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이렇게 살도 찌고 더 클 줄 알았던 키도 안 큰 거지. 원래 꿨던 꿈이라면 세계적인 무용수, 안무가가 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다이어트와 씨름하고 땀 흘리며 하루를 보통으로 보내는 평범한 무용수로 살고 있다. 더 욕심내고 더 잘하고 싶고 더 갖고 싶지만, 나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잘 먹는 것을 창피해하던 나도, 살이 쪄서 창피하던 나도, 유명한 예술가가 아닌 나도. 이제는 그런 것들과 싸우지 않고 적절히 살아가진다.


, 거짓말이다. 주변에서 먹는 걸로, 살로 스트레스를 주면 아직도 울컥 발끈한다. 이제 무대 그만 서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어도 아직 발끈한다. 아무래도 내려놓지 못하는 건 있는 듯하다. 그래도 그것까지 받아들이서.


오늘도 열심히 땀 흘리고, 내일 아침 맛있는 한 끼 무얼 먹을지 고민하며 얌전히 잠들어야.
보통의 내가 더 욕심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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