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경 Oct 23. 2021

집순이 주말 사용법

 주말은 아침부터 기분이 다르다. 부드러운 침대 시트에 발을 비비적대며 서서히 주변 소음이 선명해져 잠이 깨는 순간마저도 행복하다. 고르고 골라 산 분홍색 이불에 얼굴을 마음껏 비비고 한참을 뒹굴거린다. 나의 귀여운 고양이가 왜 안 일어나냐고 야옹 대기 시작하면 뭉그적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벙커침대이기에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면 아직 덜 깬 정신으로 집중을 잘해야 한다. 한 발 한 발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내려와 그제야 양 팔을 목 뒤로 올리고 기지개를 켠다. 나의 고양이도 집사가 일어난 걸 알고 가까이 다가와 몸을 쭉 늘리며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고, 그랬어요~ 하는 콧소리와 인사가 자연스럽게 목을 스친다.


 밤에 닫아놓은 커튼을 열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눈이 부셔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 해를 보려고 애쓰며 미소 짓는다.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낼 수 있는 주말의 시작은 오전이어도 오후여도 마냥 기분이 좋다. (오후면 그래도 아쉽다.)


 물 한 잔 마시고 주말인데 뭘 할까? 하는 생각은 답안지를 보고 있는데 답을 묻는 것과 같다. 밀린 빨래가 있고 욕실 청소도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사니 빨래가 많지 않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넘치기 마련이다. 특히 양말이 그렇다. 하루에 한 켤레씩 신고 있으니 일주일에 5일 출근하고 나면 빨래할 양말이 10개나 된다. 몸에 비해 조막만 한 발이기에 역시나 조막만 한 양말을 찾아 세탁기에 넣기란 아침에 침대에서 내려올 때와 같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빨래통을 뒤지고 뒤져 다 챙겼다고 생각해도 꼭 하나씩 빠져나가 나중에 찾게 되니 말이다.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꼭 그렇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


 빨래를 돌리고 욕실 청소를 하기 위해 청소용 세제를 만든다. 유튜브에서 찾아본 욕실 청소용 세제를 따라 베이킹 소다, 주방세제, 뜨거운 물을 1:1:1 비율로 섞어 사용하고 있다. 욕실 전체에 세제를 묻히고 변기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물을 뿌려 세제를 닦아내는데, 이 시간이 아주 즐겁다. 수전이나 거울이 반짝반짝해지는 걸 실시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척이나 좋아 몇 번이고 물을 뿌려 깨끗해진 수전을 만져보곤 한다. 마무리로 스퀴지를 이용해 물기를 한 번 쓸어주고 환풍기를 틀어주면 끝이다.


 이 작은 화장실을 청소하는데만 한 시간을 온전히 쏟는다. 청소를 하는 내내 나의 고양이는 화장실 문턱에 앉아 인간이 움직이는 모양새를 지켜본다. 청소 중간중간 눈이 마주치면 야옹하며 부르는 게 아주아주 귀엽다.


 욕실 청소를 마치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바로 밑이 큰 도로이기에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주말인데 다들 어디로 그렇게 가는 걸까. 집이 너무나 좋은 집순이는 마냥 궁금하기만 하다.


 환기를 시작으로 이제 방청소를 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털고, 나의 귀여운 고양이가 뿜어댄 털을 돌돌이로 모은다. 지금까지 돌돌이로 버린 털을 모으면 나도 고양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인간인걸 보면 덜 뿜어 댄 걸지도 모른다. 좀 더 열심히 모으겠다고 다짐하며 돌돌돌, 먼지가 안 나올 때까지 돌린다. 청소기 먼지주머니를 비우고 있으면 빨래가 다 된다. 건조기로 돌릴 수 있는 세탁물을 제외하고 간이 빨래걸이에 건다.


 주로 수건을 건조기에 돌리는데, 끝나고 나면 쌀밥을 한 것처럼 부풀어 아주 뽀송뽀송하게 잘 말라있다. 보송보송도 아니고 뽀송뽀송이다. 탈탈 털어 슬 얼굴을 대보면 정말 밥이 다된 듯 따뜻하고 깨끗한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밥그릇에 담아놔도 아무도 모를 것만 같다. 실없는 생각에 혼자 흐흐 소리 내어 웃으면 멀리서 나의 고양이가 대답해준다. 그게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또 흐흐 웃고 만다. 집에 있는 주말은 시험기간에 딴짓을 하듯 무얼 해도 즐겁다.


 사랑하는 거주지를 깨끗이 정돈하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청소 역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이니 말이다. 이전까지 무기력에 귀찮아하며 미루고 미루기만 했다면 지금은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되었다. 깨끗해진 집과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깨끗해진 공간에서 행복해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소 외에 다른 일 역시, 하고 싶은 일은 절대 미루지 않기로 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날씨가 아주 좋다. 해가 방 안으로 길게 기울일 시간이다. 주말이라 아직 쓸 시간이 많다. 책이 읽고 싶어 졌기에, 독서를 하러 가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