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경 Dec 28. 2021

집순이들, 해돋이 안 보러 가?

 집순이인 내게 집순이 친구들이 있다. 다 똑같은 집순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양상이 다르다. 활발한 집순이, 집안에서도 움직임이 많은 집순이, 움직임이 적은 집순이. 하늘 아래 같은 색상 없듯 카테고리를 세분화하면 수도 없이 많은 집순이 집돌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인 다섯 명의 친구들은 10년이 넘도록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다. 그중 둘은 같은 게임을 5년 가까이하고 있다. 게임 안에서 해돋이를 보며 새해를 맞이하는 횟수도 올해로 5번째이다. 


 날씨가 추우면 나가기 싫다. 이미 집에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집에 있고 싶다. 찬 바람이 쌩쌩부는 밖에서 몇 시간 동안 오들오들 떨 생각을 하면 집에 있는 내 발이 다 시려온다.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해 작정하고 나가는 밖순이 밖돌이를 보고 있으면 경외심부터 든다.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아 TV에 나오는 이들과 함께, 그리고 게임 상에 많은 집순이 집돌이와 함께 해돋이를 맞이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4번이나 해봤지만 역시 나는 이쪽이 더 즐겁다. 


 요즘엔 현실처럼 풍경 구현이 잘 된 3D 게임이 많다. 특히 게임 안에서 하루 시간이 흘러갈 때마다 현실처럼 아침엔 동쪽에서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뜨고 별이 움직이는 모양새까지 세세하게 설정한 게임도 적지 않다. 


 우리가 하는 게임도 그렇다. 게임 상 시간으로 아침 6시면 해가 뜨고 저녁 6시면 해가 진다. 이 패턴을 적절히 잘 맞추면 새해로 넘어가는 타이밍에 해돋이를 바로 볼 수 있다. 물론 게임 상 날씨 구현까지 너무 잘해둔 탓에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씨라면 바로 보지 못하고 맑은 날씨의 해돋이를 계속 기다려야 되는 단점도 있지만 말이다.


 올해는 친구들과 함께 게임 상에서 해돋이가 잘 보이는 자리도 미리 점찍어뒀다. 이미 우리 같은 집순이들이 선정해놓은 명당자리도 SNS에 올라왔지만 몇 년째 같은 곳에서 해돋이를 보다 보니 색다른 장소를 찾고 싶었다. 게임 상의 동쪽 방향으로 시야가 탁 트이고 캐릭터가 옹기종기 모여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게임 상의 지역을 한참이나 헤맸다. 생각지도 못한 높은 게임 상 건물 위로 올라가 앉아있을 자리를 찾았고, 그 자리가 바로 올해의 친구들과 해돋이를 볼 장소로 정해졌다. 늦지 않도록 시간을 정하고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해 책상 앞에 모이기로 약속했다.


 소풍처럼 마냥 들뜬 마음이다. 작년 새해처럼 올해도 보이스톡으로 즐겁게 얘기하며 새해를 맞이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말일이 기다려지곤 한다. 다 같이 한 집으로 모여 지내는 것도 좋지만 집순이들답게 마음 편히 각자 집에서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너무 좋다.


 나의 귀여운 고양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게임 캐릭터의 시야로 해돋이를 바라보는 건 집순이인 나에게 아주 특별하고 행복한 연례행사다. 집이 너무나 좋은 집순이에게 이보다 더 행복한 새해가 있을까 싶을 만큼. 이전에 억지로 추운 날 밖으로 나가 해돋이를 보러 갔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즐거워 연말마다 빼놓지 않고 일정을 잡아 즐기곤 한다.   


 명당자리를 꿰차 해가 바뀌길 기다리고, 그 잠깐 동안 게임 상의 해돋이를 보며 새해의 기분을 느끼고, 언제 그랬냐는 듯 보이스톡으로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꼬박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된다. 특별했던 순간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어 어떻게든 잠을 쫓아내고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같이 있는 친구들과 먼 온기를 나누곤 한다. 하나 둘 지쳐 자러 돌아가면 집순이들의 연례행사는 끝이 난다.


 다음 연도는 우리의 나이 앞자리가 바뀌기에 연도가 넘어가기 3시간 전부터 모여 마음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잠시 동안의 특별한 순간 후 빠르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겠지만, 새해의 첫날만큼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하루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순이 주말 사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