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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04. 2024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기 너무 힘들다 진짜.

이 모래폭풍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나요

매년마다 경제면이든 사회면이든 '올해가 가장 힘든 해', '갈수록 침체 국면'이라는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2024년만큼 살기가 팍팍한 해가 또 있었을까 싶다. 글로벌 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국내 전반 산업에서 감축, 감원, 위기, 도산, 재정 악화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 불렸던 기업들 모두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다는 이야기도 근 10년간 꾸준히 들어왔지만 성의껏 올린 이력서가 무색할 만큼 연락이 드문 경우는 올해가 처음이다. 일손이 부족하기로 유명한 대행사에서도 연락이 없다는 건 정말 비상이라는 얘기다.


돈이 나올 구멍은 죄다 막혔지만 쓸 구멍은 블랙홀 마냥 크다. 모든 원자재값, 운송비, 서비스 비용 등이 오르니 식재료 값은 더 오르고 식재료로 만든 음식 값은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이번엔 내가 살게"라는 말을 장난으로라도 꺼낼 수 없게 만든다. 다른 곳에는 일절 지출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먹을 것에서만큼은 나름 후하게 돈을 쓰는 나였지만 요즘은 카페에서 디저트 코너를 잘 보지 않는다. 자원 고갈로 케이크가 한 조각에 8천 원, 9천 원 하는 시대가 언젠가 오겠지 막연히 생각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빨리 오리란 생각은 못했다. 예전에는 친구들과의 만남 한 번에 3~4만 원이면 적당히 팬시하고 세련된 음식점에서 식사도 즐기고 차도 마실 수 있었지만 이제는 7만 원 정도는 생각해야 그럴듯한 만남을 할 수 있다. 기분 내려다가 인생이 내리막길 걷게 생겼네 젠장.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어제 일어난 범국가적인 최악의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공교롭게 대국민 담화(이걸 대국민 담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방적 통보 혹은 경고 아니었을까)가 나오던 시점에 우리 집은 티비를 보고 있었고, 그때부터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생중계되었다. 고등학생 때 근현대사 시간에나 들어봤던 '비상계엄령'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보았고, 뉴스 특보만으로는 충분히 상황 전달이 되지 않는 듯해 유튜브 생중계로 국회 상황을 지켜보았다. 경찰들이 국민들의 국회 출입을 막는 장면부터 군헬기가 국회 정원에 착륙하여 특전사들이 국회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막는 과정, 그 안에서 벌어진 물리적 충돌과 대의는 없고 명령만 있을 뿐인 자들의 무자비한 행태, 비상계엄령 안건이 통과될 때까지 숨 죽여야 했던 시간들을 모두 두 눈으로 보았다. 비상계엄령은 해제되었지만 혹시나 다른 일이 벌어질까 걱정되어 한참을 뒤척이다 의식이 끊어지듯 쏟아지는 수마에 정신을 잃었다 겨우 깨어났다. 차라리 실감 나는 악몽이었으면 했지만 깨어보니 그게 아니라니.


기존 정치적 견해와 관계없이 한 국가의 수장이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인질 삼아 비상계엄령이라는 선택을 했다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하물며 한 가정의 가장도 본인 가정을 지키려 할 텐데 이런 무거운 결정을 절차도 지키지 않고 관련 정부 부처들의 의견과 상관없이 거의 독단적으로 내려버리다니, 어쩜 이렇게까지 책임감을 갖지 못할까. 안 그래도 자영업자들은 살기 힘들다 곡소리 나는 형편인데 주가는 반토막, 환율은 급등, 한국은 여행 주의보가 발동되어 관광 수입도 끊기게 생겼다. 정말 민생을 고려했다면 이 정도 영향을 미칠 거라 정말 생각을 못했을까. 대통령은 국가를 소유하는 사람이 아닌 국민을 대신해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경제적 측면 외에도 영향을 준 부분은 정말 많다. 일단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군인이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이 중계되며 군인의 존재 의의에 대해 의구심이 생겼다. 국가 수장이 언제든 비상계엄령으로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헌법 정의를 파괴할 수 있다는 공포가 생겼다. 실존적 공포가 존재하는 가운데에서도 계엄령이 불가피했다며 본인의 이익, 권리만을 찾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구성원들과 한 사회에 공존해야 한단 사실에 욕지기를 느꼈다. 하지만 계엄령 선포가 끝나자마자 본인의 위치와 상관없이 국회로 달려가 군용차를 맨몸으로 막아낸 시민분들, 본인에게 겨눠진 총구를 손으로 잡으며 이게 맞냐고 소리친 위원장님, 소화기와 의자 등으로 군인의 국회 본회의장 정문 진입을 막아낸 보좌진 분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끝까지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중계하러 나선 기자분들 등을 보며 이 분들에게 민주주의를 빚지고 있단 생각도 했다. 며칠 전과 같은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자각하지 못했지만 침해받지 않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물론 자유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다. 침해받지 않았다고 해서 감사할 일은 아니다만..)


가뜩이나 퍽퍽한 삶에 단비가 아닌 버석한 모래 폭풍만 불어오니 이 사막의 끝이 어딜지 아득해진다. 누군가는 위기가 기회니 다시 반등할 모멘텀을 만들어보자 하지만 대한국민 중 딱 보통 지점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너무 피로하다. 일어설 힘이 남아있어야 벌떡 일어나 보기라도 하지, 사방에서 눕힐 듯 몽둥이를 휘둘러대는데 안 넘어지고 배겨.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 이게 정말 국민을 위한 나라가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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