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의 마음 한 켠에 있는 라라랜드,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
* <라라랜드>를 모두 감상한 독자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아닐까요. 이 영화의 제목인 '라라랜드' 역시 로스앤젤레스의 별명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인 세계'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인 미아와 세바스찬은 지루한 현실보다는 낭만적인 꿈을 좇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느날 미아는 세바스찬과의 연극 약속을 어기고 어쩔 수 없이 남자친구를 따라간 모임에서 세바스찬과 있을 때와는 달리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알에서 깨어나듯,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이 이상과 맞지 않게 지루하고 답답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죠. 그래서 미아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세바스찬에게로 뛰어가는 장면은, 그녀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이상으로 성큼 다가서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더욱 낭만적입니다. 둘이 함께라면 우주도 날 수 있고, 길거리도 무대가 돼요. 미아에게 세바스찬은 '라라랜드' 그 자체입니다.
자신의 연인이 불확실한 꿈을 향해 달려갈 때 순수하게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성공한 예술인들은 하나같이 '가족과 연인의 무한한 신뢰와 지지가 있었다'고 말하곤 하죠. 미아와 세바스찬 역시 현실의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서로를 허물 없이 응원해줬고, 결국은 서로를 완성시켰습니다. 세바스찬의 고집이 없었다면 미아는 자신을 바꿔놓을 오디션의 기회를 놓쳤을 것이고, 재즈클럽의 이름까지 지어주며 끝까지 적극적인 원동력이 되었던 미아가 없었더라면 '진짜 재즈'에 대한 세바스찬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과 지지만으로 모두가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조건 없는 믿음과 지지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는 이들이 힘에 부쳐 줄을 놓지 않도록 해주는 마지막 1%의 완성이 아닐까요.
미아와 세바스찬은 모두 꿈을 이루지만, 반대로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미아는 우연히 들어간 '셉스' 클럽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꿈을 이룬 세바스찬의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의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어땠을지 그의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한 편의 시나리오를 쓰죠. 이루어졌더라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필연적으로 서로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사랑 역시 예술과 마찬가지로 현실과 이상 사이의 줄다리기이기 때문입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계속 사랑을 이어갔더라면, 누군가는 결국 꿈의 일부를 포기해야 했을테니 말입니다. 미아가 파리로 떠나지 않든지, 세바스찬이 생계를 위해 좋아하지 않는 밴드를 계속하든지요.
결국 미아가 그린 세바스찬과의 시나리오는 '이루어질 수도 있었던 미래'라기 보다는 '존재할 수 없는 이상'에 가깝습니다. 시간을 돌려 그 때 그 시절, 세바스찬과의 사랑을 택했더라면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행복한 미래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의 꿈을 마음껏 응원해주고, 때가 됐을 때 결국 보내줬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영화의 대사 중에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것을 상기시켜주니까.'
우리는 모두 현실과 이상의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어떤 면에서 포기하기도 하고, 스스로와 타협하기도 하며 말이죠. 하지만 누구나 마음 한 켠엔 돌아가고 싶은, 혹은 아직 이루지 못한 '라라랜드'가 있지 않은가요? 포기도 좋고 타협도 좋지만 한 번쯤 '열정'에 몸을 맡기고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신의 열정에 끌린 누군가가 당신을 완성시켜주는 사랑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그럼에도 때로는 담담하게 이별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서로를 완성시킨 이별의 뒷모습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