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시간과 다시 잡은 기회
나는 사실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꾸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나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감정적이고, 걱정이 많다. 매사에 고민거리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곱씹으며 노트에 끄적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사색에 잠기는 걸 좋아한다.
나는 조금 느리다.
남들은 일주일이면 익숙해지는 일도 나는 한 달이 걸린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끙끙거리며 해답을 찾으려는 성향도 있다. 그 탓에 더 외로웠고,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다른 한국 아이들처럼 열심히 살아왔다.
엄청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늘 어딘가 불행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엄격하셨고,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안심하셨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의 사무실 뒤편, 1평 남짓한 공간에 앉아 녹색 커튼을 친 채 벽을 바라보며 공부했다.
졸거나 휴대폰을 하다 걸리면 옷걸이로 맞았고, 휴대폰을 빼앗긴 뒤에는 대화 내용, 갤러리, 인터넷 기록까지 모두 검열당했다.
멋을 부리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겨울에 패딩 하나 갖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세일 코너에서 고른 필라 패딩을 받았지만,
3주 만에 유튜브를 봤다는 이유로 다시 빼앗겼다.
중학교 시절엔 늘 삭발을 했고, 시장에서 산 은색 네모 안경을 썼다.
거울을 보면 ‘왜 나는 이렇게 생겼을까’ 슬펐다.
자존감은 점점 낮아졌고, 친구들에게 따돌림도 당했다.
형과 누나는 한 번에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
나는 인천의 평범한 대학에 들어갔지만, 부모님은 그 학교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다시 공부하라며 압박했고, 나는 반항심에 ‘유학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명문대에 합격하면 보내주겠다는 조건 아래, 나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준비해 뉴욕의 한 대학에 합격했다.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어떻게 해외 대학에 갔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들었는지 모른다.
드디어 부모님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매달 등록금과 생활비를 제외하면 한화로 50만 원 정도만 남았다.
나는 검소하게 살았고, 진짜로 ‘버텼다.’
룸메이트는 대기업 회장님의 아들이었고, 그는 나에게 멋있게 사는 법을 알려주려 했다.
고맙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그래서 용돈을 아껴 클럽에 갔고, 거기서 가진 현금을 써버렸다.
하지만 친구들이 도와줬고, 나는 늘 부족한 돈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연락했다.
모든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말.
한국에 돌아간 나는 이미 ‘가족의 죄인’이 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나를 ‘가족의 돈을 축내는 문제아’로 취급했고, 말조차 섞지 않으셨다.
등록금도, 비행기 티켓도 지원받지 못했고, 결국 복학하지 못한 채 학교에서 자퇴 처리됐다.
정말 모든 것을 놓고 싶었다.
친구들에게도 미안했고, SNS도 다 지웠다.
집 앞 벽을 치며 울다 손가락뼈가 부러졌고, 병원비로 남은 돈을 모두 썼다.
그 뒤로 갈빗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편의점 투잡을 뛰며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벨기에에 있는 한 학교에서 장학금 제안을 받았다.
망설이지 않고 도전했다.
부모님과도 대화를 다시 시작했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6개월마다 1000만 원을 지원받으며, 다시 유학을 떠났다.
미안했지만, 그 길밖에 없었다.
벨기에에서의 1년은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 앞으로 나는 뭘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이 깊어졌다.
나는 자립하고 싶었다. 부모님 지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2년남짓의 기간 동안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고, 군대를 선택했다.
공군에 입대해 21개월 동안 영어공부를 병행했고, 전역 후 높은 점수로 IELTS, TOEFL, PTE 성적을 얻었다.
군 생활의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쓰고 싶다.
어쨌든 나는 다시 해외로 나가고 싶었고,
군대에서 내린 결론은 호주였다.
워킹홀리데이와 유학의 성지.
실패도 많지만, 성공도 많은 곳.
나도 죽도록 노력하면 여기서 뭔가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나는 호주에 왔다.
호주에 오고 나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삶의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
남들이 좋다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배웠다.
“더 열심히, 더 빨리, 최선을 다해야 행복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지적을 줄곧 받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삶에 책임지고, 크고 작은 역경이 닥쳐도 스스로 이겨내고 싶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남들보다 우월한 지위, 돈, 명예가 아닌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이 목표다.
아직 나는 많이 약하다. 한두 번의 실패에도 주저앉아 울고 싶어진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 큰 추억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바로,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