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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Oct 27. 2024

'미안해' , 그 한마디의 어루만짐

자녀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봐 후회되는 당신에게

선생님,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어요. 아이는 무표정하게 '어 알았어' 이렇게 말하더군요. 조금 민망했어요.


영순씨의 아이는 고등학교 연령의 소위 히끼꼬모리, 은둔청소년이다. 그녀의 남편은 3년 전 집을 나갔다. 어떤 날은 남편에 대한 분노가, 어떤 날은 자신에 대한 자책이, 어떤 날은 어찌 살아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어떤 날은 이 끝이 있을까 하는 무기력이, 찾아왔다. 그렇게 하루의 날들이 지나갔다. 감정의 깊이도 차츰 옅어졌다. 그리고 문득, 더 이상 아이의 열리지 않는 방문이 보였다. 그 어느 곳도 나간 흔적이 없는 아이의 신발이 보였다.


영순씨의 아이가 방문을 열고,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나가고, 온라인 강의로 검정고시 준비를 할 때쯤, 그녀는 고마움과 안도감만큼 자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영순씨는 그 시절 남편의 상실로 자신도 고통스러웠지만, 돌이켜보면 아이에게는 아버지의 상실과 함께 무기력한 엄마의 모습에서 엄마의 부재도 느꼈음을 이해하였다. 최근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을 경험한 영순씨에게 아들이 경험했을 아버지의 상실이 어느 정도의 공허감을 주는지, 그리고 기대고 싶은 어머니의 무너짐 앞에 아들이 갖가지 질문과 불안을 얼마나 꾹꾹 눌러 담았을지, 영순씨는 알게 되었다. 그 시절로 돌아가 아이의 마음이 보일수록 영순씨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힘든 모습을 보이면 '혹시, 그때 감정이 남아있나'라는 생각과, 좀 편안 얼굴이 보이면 '아하, 괜찮구나, 이젠 모두 잊었구나'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영순씨는 아이의 안색과 눈치를 매 순간 살피고, 아이의 요구에 때로는 과히 민첩하게 때로는 심히 둔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내게 가장 궁금한 것이 '갈팡질팡하는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반응이 아이에게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지'라며 질문했다. 그러나 그녀의 질문은 틀렸다.


부모들은 자주 묻는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해요?' 좋은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내가 자녀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면 아이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가정을 내포한다. 아이의 부정적인 행동이나 반응을 변화시키기 위해 내 행동이나 반응을 먼저 성찰한다는 점에서 질문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질문 앞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부모 자신의 욕구를 아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모가 자신의 욕구를 마주하는 것은 때로 거부하고 싶고, 두렵기도 하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기 원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나의 성취감 때문이라는 것은 거부하고 싶다. 부모님이 바쁘셨어도 멋지게 일하시는 것이 좋았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야속하고 떼 쓰고 싶었을 텐데라는 의문을 외면하고 싶다.  여러이유로, 그래서, 우리의 욕구를 알아채는 것은 낯설다. 영순씨의 진짜 욕구, 그녀가 가장 궁금한 것, 그것은 아이의 마음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물었어야 했다.


'그때 아이의 마음을 볼 여유가 없었어요.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아이의 마음이.. 엄마가 많이 밉지 않은지 궁금해요'


몇년 전 딸이 형편에 조금 무리가 되는 대학에 들어갔다. 잘하겠다고 들어갔는데 대학교 1학년을 찐 대학생답게 노느라 학점이 엉망이었고, 장학금도 날아갔다. 힘들게 일하며 학비를 지원한 남편은 딸이 자신의 노력을 기만했다며 학비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상처로 남을 모진 말들과 함께. 딸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남은 3년을 보내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 부녀관계는 다시 회복됐다. 우리 가족은 그때 일을 하나의 해프닝처럼 생각하듯이 가끔 장난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날, 우리는 혼잡한 스타벅스에 앉아 있었다. 남편이 무심코 말했다. '00야, 아빠가 그때 미안했어. 그때 아빠가 여유가 없었어. 미안하고, 잘해주어서 고마워' 아이가 시크하게 말했다. '어. 알았어.' 며칠 후 딸이 내게 말했다. '나 그때, 눈물이 나는 거 겨우 참았어.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때 들었던 모진 말들이 가슴속에 남아있었나 봐.'


소중한 사람에게 받는 미움은 그 사람과의 연결이 끊어질 것에 대한 깊은 불안을 자극시킨다. 그것이 두려운 만큼, 미움받을 행위를 한 나 자신이 미워지고, 소중한 존재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나 자신의 가치는 낮아진다. 설혹 소중한 존재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라치면, 그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를 미워하는 것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행위를 이해해야만 한다. 문득 소중한 존재로부터의 상처가 떠오를 때면, 현재 다시 회복된 이 관계에, 나를 용서해 준 소중한 존재와의 관계에, 감사하지 못하는 나는 참으로 옹졸한 존재가 된다. 미안하다는 말은, 네가 그때 힘들었음을 알고, 그 힘듦이 내 부족함으로 생긴 것이라는 고백이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은 소중한 존재를 괴롭힌 나 자신에 대한 번뇌를 멈추게 하고, 상처투성이 나를 안아 주게 한다.


영순씨는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그때 엄마는 자신의 고통만 보여서 네가 힘들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돌아보니, 네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미안하다.' 아들은 무심코 말했다. '알았어' 며칠 후 아들은 말했다. '엄마, 그때 전 세상이 깜깜했어요. 학교를 가면 나만 불행한 것 같고, 집에 오면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나고, 엄마를 보면 아무 말도 못 하겠고. 내 방에 있으니 너무 편하더라고요.'


아이의 행동은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영순씨는 아이의 마음을 더 이상 추측하지 않는다. 그녀는 묻고, 아이는 대답한다. 아이는 묻고 그녀는 대답한다. 그래서 대화는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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