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뱅갈군을 소개합니다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장편소설 -
얼마 전 제목만 보고 나도 모르게 구입한 책이다. 이 책을 산 날과 같은 날 선물 받은 책의 제목은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로만 무라도프 지음)>이다. 아직 둘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고양이에 대한 책은 아닌 듯싶다. 선물 준 이의 말로는 제목에 고양이가 들어갔고, 지금 나에게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돼서 집었다고 한다. 내가 선택한 책도 고민 대상 중에 하나였다는 말과 함께 :)
37살 6월, 다시 꿈을 찾고 싶은 마음에 백수의 길로 접어든 나의 곁엔 모셔야 하는 냥이님, 뱅갈군이 존재한다. 그러니 마냥 맘껏 백수로 놀 수도 없는 노릇이다. 뱅갈군을 옆에서 잘 보필해야 하는 집사의 임무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뱅갈군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올해 7살인 남아로, 처음의 집사님이 사정이 생겨 뱅갈군 4살 무렵인 2017년 12월 나와 묘연을 맺었다. 뱅갈군을 만나고 묘연이란 정말 존재한다고 느꼈다. 고양이 입양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던 중에 책임분양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어떠한 사정(알레르기, 이사, 결혼 등등 수도 많은 이유)으로 인해 더 이상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없는 분들이 카페를 통해 새로운 집사님을 찾는 것이다. 원래부터 샵에서 분양받을 생각은 없었고 성묘를 입양하고 싶은 마음에 책임분양을 통해 입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연락을 취했던 냥이들과 이런저런 사정으로 묘연의 끈이 닫지 않던 중 우연히 뱅갈군을 알게 됐고, 바로 연락을 취해 연결이 됐다. 뱅갈군을 데리러 갔을 때 들은 얘기로는 포스트를 올리고 1분도 안돼서 나한테 연락이 왔다고 한다. 나는 정말 내가 뱅갈고양이의 집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렇게 나와 뱅갈군은 새로운 여정을 함께 시작했다.
뱅갈군은 집사의 이동으로 인해 2018년 6월부터 제주에서 살고 있다. 제주냥이 뱅갈군은 바람이 많이 부는 섬의 냥이답게 거센 바람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천둥번개에 집사보다 의연하게 대처한다. 천둥번개에 깨는 집사와 달리 뱅갈군은 쿨쿨 잘잔다.
천둥번개에도 동요하지 않는 우리 뱅갈군은 알고 보면 호기심 많은 쫄보라 평소에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모든 움직임이 조심스럽다. 집사는 집에서 뱅갈군의 그런 모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찰하고 사진 찍고 영상으로 남긴다. 어느덧 집사의 핸드폰 안 뱅갈군 앨범에는 대략 3,800장의 사진과 동영상이 쌓였다.
무료하고 지루하고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주고 의지를 준다. 그래서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 반려동물이라고 하나보다. 근 2년은 수도 없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혼자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산책을 하는 등 혼자의 시간을 즐기는 편이었던 나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혼자 카페도 갈 수 없게 돼버렸다(지금은 다시 잘 회복해서 혼자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고 산책도 한다). 회사 이외에는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어떠한 의미 있는 생활도 하지 않았다. 그때 만약 뱅갈군이 옆에 없었다면 난 어떤 모습이었을까... 웃을 일도 즐거울 일도 일어나 움직일 일도 없지 않았을까? 퇴근 후와 주말, 뱅갈군 밥을 주기 위해, 놀아주기 위해, 화장실 청소를 하기 위해 일어나 움직였다. 아플 때도 내 밥은 못 먹어도 뱅갈군 밥을 위해 몸을 일으켰다. 나만 바라보는 냥이 덕분에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순간들을 지나 지금은 나도 냥이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4살, 이미 다 큰 성묘인 상태에서 만났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의지하는데 아기 고양이보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지만 이제는 나에게도 뱅갈군에게도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현관까지 마중을 나오고
집에서는 어디든 내가 가는 곳을 졸졸 따라다니는
도도한 개냥이 뱅갈군
그런 뱅갈군이 내 곁에서 건강히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집사와 환경이 바뀐다는 아주 큰 변화를 한번 겪었으니 이제는 그런 걱정 없이 편안하게 오래오래 나와 함께 해주길 바란다(아직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얼마 전 많이 아팠던 관계로 걱정이 많아지고 더 애틋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