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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먹는 꿈별 Mar 25. 2024

[서평]『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예술향유의 본질을 감동적으로 포착하다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김희정·조현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3, 360쪽 분량)』는 한 사람을 그리는 개인적인 기록으로 시작하여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닿는 자전적 예술 에세이다. 미술에 관한 모든 건 부모님에게서 배웠다고 고백했듯이 저자는 어린시절부터 아름다움을 접하고 반응하는 일에 민감했다. 성장하면서 학문적 도구와 최신 용어로 “예술을 제대로 분석하는 법”32을 익히기 원했다. 그러나 자랑스럽던 형의 투병과 이른 죽음에 그는 추구하던 삶의 방향을 바꾼다. <뉴요커>의 책상으로 돌아가는 대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어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p.33)으로 한정한다. 책은 시간을 벗어난 형을 기억하는 애도의 장과 시간을 초월하여 영속하는 예술의 찬란을 교차 서술한다. 독자는 이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게 된다.      

책을 펼치면 ‘세계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순간 이동하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관람객의 시선과 경비원 즉 내부 직원의 두 가지 입장을 활자를 읽어나가는 만큼씩 간접 체험한다. 아메리카 전시관의 고급 마호가니 가구 목재는 노예무역 초창기의 착취를, “특정 버전의 미국 이야기”(p.177)를 간직한다. 자물쇠 달린 금고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p.132) 미술관이기에 일어났던 예술품 도난사도 등장한다.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의 세 가지 유형을 보면서 나는 어디에 가까운가 헤아려본다. 점차 지정된 자리를 지키기 바랬던 저자는 동료들과 애정을 담아 눈을 맞추는 관계가 되고, 경비원이라면 누구라도 어두운 푸른색 근무복 아래 숨겨둔 “비밀스러운 자아 하나쯤”은 있음을 알아차린다. 소통이 간직한 “격려의 리듬”(p.191)은 그를 비탄의 자리에서 끌어내기 시작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한 지점이 아니라 연거푸 등장하기에 “가장”이라고 꼽을 수 없다. 예술 작품과 저자가 긴밀하게, 비밀리에, 충만하게 때론 고독하게,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결코 방해 받을 수 없는 차원에서 나누는 감정이 백미다. 예술작품에 닿기를 원했던 저자가 작품 앞에 서서 응시하고 귀 기울이고 단 둘만의 서사를 쌓아올리는 순간들은 무척 아름답다. 제대로 분석하고자 전략을 세웠던 저자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 된 변화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일, 사조와 지식적 배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판단하지 않고 시간을 허용하는 일은 내가 지난 2년간 배운 예술 향유와도 맞닿아있다. 저자는 티치아노의 <남자의 초상>에서 “그 자체로 완전하고, 밝고,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고, 퇴색하지 않는 그 무엇”, “인간의 영혼이 그랬으면 하는 바로 그 상태”(p.46)를 발견하고 미술관을 떠날 때도 형의 초상화 삼아 마음에 품는다.      


12장은 저자가 쌓아온 예술관을 정리하고 13장은 다시 세상 속으로 출발하는 희망으로 맺는다. 12장의 화두는 “조르나타”이다.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수들이 매일 아침 새로 바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날 완성해야 할 부분에 대한 밑작업”을 하였고 이를 이탈리아어로 “하루의 일”이라는 뜻의 “조르나타”(p.280)라고 한다. <지스 밴드 퀼트 작품전>에 전시된 퀼트 작품들도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자는 이를 루시 T. 버전의 조르나타라고 본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의 의미를 조르나타에서 찾을 때 독자는 나의 조르나타는 무엇인가, 결국은 유일한 작품으로 완성할 오늘치의 조르나타는, 하고 묻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전체를 견인할 한 작품을 결정한다. “확실히 메트 바깥으로 품고 나갈 수 있는”(p.320) 한 점이다. 역시 질문은 독자에게 돌아온다. 당신에게 그 한 작품은 무엇인가요.      


서평은 위에서 마무리되었다. 지금부터는 안 쓰느니 못한 사족이 분명하다. 이 책은 읽기에 너무 황홀했고, 이 서평은 쓰기에 너무 괴로웠다. 어떤 면에서 유용한 서평은 거리두기에서 시작된다는 입장인데 거리두기에 실패한 서평이었고, 이입이 너무 많이 되어 속절없는 내적 수다에, 슬프고 신나는 환호에 우왕좌왕했다. 세계의 유명 미술관을 많이 방문해 봤다면 책을 읽기에 더 두근거릴 수도 있겠지만 심장 떨려서 방해될 수도 있을 테다. 그런 의미에서 워싱턴 D.C.에 있는 몇몇 미술관을 잠시, 스텐포드 대학 칸토 미술관은 여러 번 방문했던 나는 얼음 땡 하고 멈추었던 순간, 빨리 더 많이 봐야해 라며 속보로 내달리던 순간, 지금 이 행동을 하면 과연 저 경비원은 내게 다가올 것인가를 가늠하던 순간들을 소환했다.      


특히 지난 2월 산호세 이집트 박물관에 방문했을 때의 예상 밖 광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중하고 침묵 가득한 고대의 시간으로 들어가리라 기대했으나 웬걸, 박물관 앞부터 노란 스쿨버스의 장사진이었다. 여행기를 정리하다가 게으름 때문에 멈춘 상태였는데 덕분에 이집트 박물관 관람기는 남길 수 있었다. 이 책은 독자의 여러 갈래 욕구를 채워줄 만 하다. 다양한 정보를 주는 실용서의 역할도 하지만 무엇보다 예술 향유의 본질을 감동적으로 포착한다. 포착한 지점을 전달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인데 그 또한 탁월하다. 관습적이고 식상한 문장, 불필요하거나 과장된 비유 없이 처음 보는 듯 신선해서 저자의 감정에 상당히 근접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의 치열한 글쓰기가 책을, 책보다 삶을, 다가올 미래를 빛나게 하고 독자도 함께 기뻐하게 만든다. 줄이고 줄여서 여섯 개의 논제를 만들었는데 시립도서관 성인 독서토론에서 다시 한 번 잊지 못할 장면들을 소환하게 될 것이다. 


          


발췌>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p.67)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할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p.87)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 됐다. 우선 작품에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이 솔깃해할 만한 대단한 특이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낸다. 뚜렷한 특징들을 찾는 데 정신을 팔면 작품의 나머지 대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중략)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이건 좋다’, ‘이건 나쁘다’ 또는 ‘이건 가, 나, 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p.114~115)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p.256)     


미켈란젤로를 미켈란젤로로 만드는 건 그다음에 그가 한 일이다. 습작을 해본 다음 그는 일어나서 그 스케치를 현실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는 죽기 며칠 전까지도 말을 잘 듣지 않는 대리석을 망치와 끌로 두드리고 있었다.(p.292)     


이제 더 이상 전성기 르네상스와 같은 개념을 빌어 생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로 만든 회반죽을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회반죽을 조금 더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조금 더 그리는 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p.302)     



20240325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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