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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여행자 Jan 06. 2021

인생 여행_2. 굿 타이밍

병을 일찍 알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런 상상해본 적이 있다.

'만약 병을 일찍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마냥 좋기만 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에

말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내가 속 쓰림을 겪은 건 몇 년 전이었고,

그때부터 지속적인 속 쓰림과 식 후 복통은 나를 괴롭혔다.

그 고통을 일찌감치 이상하게 여기고 병원을 찾았더라면

나는 위암 초기나 늦어도 2기쯤 되었겠지.

그랬더라면 나는 위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았을 테고,

간절히 살기를 바라면서 이중적으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항암의 시기를 겪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좀 더 일찍 병을 알아차려서

힘든 치료가 줄어들고 죽음의 그림자와 멀어진데도

굳이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


여행은 좋은 기분과 즐거운 시간을 위해서 떠난다.

하지만 그 여행에서 반드시 행복하고 좋은 일만 

생기라는 법은 없다.

요즘은 코로나로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지만

다들 여행 중에 계획과 다르게 차질이 생겼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우리 가족은 3년 전에

제주도로 보름 동안 보름 살기를 했었는데

하필이면 장마가 겹쳐버려서 여행기간의 1/3을

비와 함께 했었다.  태어나서 가장 길게 가는 여행이라

반년을 준비했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보름 동안 제주도를 이곳저곳 느껴보기 위해

야심 차게 세웠던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렇지만 나는 비가 와서 속상하기는 했어도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제주도는 기후예측과 달리 갑자기 비가 오기도 하고,

오기로 했던 비가 안 오기도 하기에

일기예보를 고려해서 계획을 한다한들

어떤 우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고,

우발상황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며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만족감이, 여행의 재미를 더해주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정 후반부에 비가 와서

여행 시작과 함께 예쁘게 피어있던 수국과

아름다운 추억도 남기고, 햇살 가득한 해변에서

일광욕을 여유롭게 즐기기도 했다.

만약에 비 오는 날이 줄어드는 대신에,

여행 시작이나 중반에 비가 왔더라면 아마도 나는

비로 인해 저버린 수국에 아쉬워 했을 것이고,

비 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찾아오는 무더위에

해변에서 마냥 거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비가  여행으로 피로감이 쌓일 시기인 

후반부에 와서  숙소를 즐기며

재충전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고,

근거리의 볼거리를 찾아서

흥적인 여행 기분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어도 나는 그 안에서

행복할 거리를 찾아 나름의 합리화를 했을 거다^^


위기가 찾아올 때 '어째서?',

'왜 하필 지금일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이 아녔더라면,

그랬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까?

그것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미 벌어진 일은 지금이 최선이고

굿 타이밍인 것이다.


나 또한 좀 더 일찍 병을 알았더라면,

내 소중한 딸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딸을 낳고 6개월 만에 병을 알게 되었는데

임신 전에 알았다면 그 아이가 생기기 조차 못했을 것이고,

그런 상황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내가 아플 때 딸아이를 생각하며 더 힘을 낼 수 있었고,

딸아이의 미소로 견딜 수 있었기에

딸이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위암 3기로 병기가 높은 건 대수롭지 않다.


또한, 워킹맘으로 세 아이의 엄마로

쉬지 않고 달려온 삶 속에서 많이 지치고 힘들었다.

위암 투병을 통해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인생여행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생겼다.

앞으로 더욱 건강하게 살기 위해 재충전하고

새로운 인생여행 계획을 세우는 기회가 되었기에,


2017년 11월에 암이 발견된 것은

내 인생여행에서 '굿 타이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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