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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아작가 Nov 08. 2022

수능 실패,  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예비수능생 자녀를 둔 불안한 엄마아빠를 위하여

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오전 8:40

시험을 치를 수능생들, 엄마 아빠 가족 모두 긴장의 나날을 보내겠지요. 고슴도치처럼 잔뜩 웅크린 이들을 위해 저의 눈물, 실패이자 성공이야기를 나누고자 해요. 이 글을 통해 가족과 함께 멀리 세상을 바라보며 희망의 변화, 바람을 맞이하길 바라요.


수능 실패, 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설마 했더니”

2015년 11월 중순, 고3 아들의 대입수능 날이었다. 마음도 어수선하여 우리 부부는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당 내 TV에서 들려오는 수능 시험 관련 뉴스 소리에 온통 신경이 쓰였다.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애꿎은 휴대폰만 쳐다보았다. ‘왜 아들에게서 연락이 없는 걸까?’ 아들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아니, 전화를 걸지 못했다. 아들에게 심적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은 두려움이 더 큰 이유였다. 아들의 솔직한 대답, 시험 예상 결과를 듣기가 몹시 두려웠다. 남편은 어색하게 웃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시험은 벌써 끝났을 텐데 왜 전화가 없지? 혹시 수능 대박쳤다고 우릴 깜짝 놀라게 해 주려는가?”

“옛날 나도 시험 끝나니까 허탈감이 더 크던데. 아마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을걸요. 이따 집에 가서도 시험 어땠냐고 먼저 묻지 말아요.”

나는 남편에게 당졌다.

우리 부부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별말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살짝 방문을 열어보니 아들은 불도 켜지 않고 컴컴한 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 시험을 망쳤구나.’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가. 누워있는 아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스윽 아들이 힘없이 일어나 앉았다.

“엄마, 시험 개망했어요!”

아들은 시험결과에 대해 간결하게 한 마디로 말했다.

“국어시험, 시간이 부족해서 10문제 정도 아예 정답 마킹을 못했어요. 시험지를 거의 던지다시피 답지를 겨우 제출 했어요.”

“에구, 어쩌다?”

안타까운 마음도 컸지만 본능적으로 화도 났다. 문제를 풀고도 답을 못 쓰다니. 그것도 하필 첫 시험 국어시간에⋯ 다른 시험은 물어 볼 필요조차 없었다. 아들은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괴로운 듯 말했다.

“시험 감독관이 규정된 시간을 어기면 시험자격 박탈 조치를 한다고 했거든요. 손이 너무 떨렸어요.”

한참동안 아들은 시험에 대한 처절한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 그토록 아낌없이 지원을 많이 해주셨는데 실망시켜 죄송해요.”

“아무튼 시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하느라 수고했다. 푹 자거라.”

나는 후회로 가득한 맘 아픈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어릴 때부터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차갑고 따끔하게 야단친 후엔 아들을 버릇처럼 포근히 감싸 안아주곤 했다. 훈계를 통해 마음 다치지 않게 하려는 위로의 스킨십이었다.

조용히 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더니 거실 분위기는 더 암울했다.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던 남편의 등은 활처럼 둥그렇게 휘어있었다. 아들보다 더 처절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남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설마 했더니⋯”

참 이상했다. 닮은 듯 다른 모습이었다. 아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고 남편을 보면 괜스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 무의식 속에 두 감정을 보는 듯했다.

다음 날까지 남편은 밤새도록 자지도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마치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며칠 동안 집안 분위기는 시베리아 벌판이었다. 시험을 개망한 아들 또한 시베리안 허스키 신세였다.

과연 누가 개썰매를 끌기 시작할까?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3일이 지났다. 먼저 남편이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며 내게 말을 걸었다. 남편은 내게 할 말 있으면 하라고 했다. 남편에게 조심스레 내 의견을 말했다.

“절대 먼저 하일이에게 재수하라고 강요하지 않기로 해요.”

나는 아들이 수능시험을 망친 후, 답답한 마음에 주변에 비슷한 경험을 가진 언니를 만났다. 그 언니는 절대 부모가 먼저 나서서 재수를 결정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다. 특히 간섭을 싫어하는 우리 아들의 성향엔 스스로 결정권을 줘야 나중에 부모 원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속마음은 아들이 스스로 재수 결정하길 바라고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나 바람개비, 변화 시작


일주일 후, 남편은 가족들과 오랜만에 외식을 제안했다. 장소는 남편이 정했다. 고급 참치횟집으로 아들이 특히 좋아하는 횟집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 남편이 아들에게 물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번 시험을 보고나니 무슨 생각이 들었니?”

아들은 대답했다.

“처음엔 시간이 부족했던 게 제일 억울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알겠어요. 결국 내 책임이구나! 실력이 부족해서 불안감이 더해졌고 그래서 시간 조절에 실패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구나. 운도 실력과 노력이 따라줘야 온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일부터 바로 독서실에 갈 거예요. 당장 가서 부족한 공부를 시작하고 싶어요. 본격적으로 재수 준비할 게요.”

남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재수하는 건 좋은데 1월 체대입시 실기시험은 어떻게 할 거니?”

아들은 불편한 듯 말했다.

“필기시험 망쳐서 실기시험 보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떨어질 건데요. 뭐”

남편은 말했다.

“아빠는 생각이 다르다. 실패를 했으면 그 끝까지 가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바닥을 쳐 봐야 올라갈 수 있다.”

(⋯)

불안한 행복, 인생 비바람, 새로운 꿈들 그리고 소중한 가족

2017년 새내기 대학생이 된 아들은 그때의 힘든 상황을 웃으며 이야기했다.

‘개망한(실수한) 시험은 있어도 개망한(실패한)인생은 없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아들에게 수능실패는 인생 비바람이었다. 이젠 새로운 바람이 눈부신 하늘, 좋은 사람,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가수 제이레빗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처럼!

- 인생에세이《조미료 엄마》, 부크크출판사, 2019,  p202~206 -


불안한 지금,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감정그림책<왜 우니?> 글그림 소복이, 사계절출판사, 2021

그림책에 소개된 소복이 작가의 이야기로 마무리 할게요.

혼자 울 수 있는 작은 방이 있었어요. 방문을 꼭 닫고 눈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을 때까지 울었어요.

어느 날은 미처 그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길에서 운 적이 있는데, 창피하기보다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어요. 그런 눈물에 대한 이야기가 늘 하고 싶었던 만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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