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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 Nov 16. 2020

19살에 300만 원 들고 캐나다로 왔다 #20

그리고 이민에 성공했다.



#20 태국의 몰라서 하는 인종차별



우리는 미디어 혹은 직접 경험을 통해 인종차별을 종종 접할 수 있다. 뉴스는 종종 인종차별을 당한 재미교포 등의 이야기를 담고, 인터넷에서는 유럽여행 중 인종차별을 당한 썰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동남아권 국가나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사람이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비교적 현저히 접하기 힘들다.


나는 태국과 캐나다 두 곳에서 모두 인종차별을 당해봤으며 지극히 내 경험만을 바탕으로 그 인종차별의 차이점을 말해보려 한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가족은 태국의 우본 라차타니라는 곳으로 이민을 갔다. 우본에는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이 있었고 흔히 이민 가는 방콕이나 파타야에 비해선 상당히 시골이었다. 따라서 우본에 사는 한인은 10명 남짓뿐이었고 우본 사람들은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나와 형은 국제학교가 아닌 태국 학교를 들어갔고 어린 태국 학생들에게는 외국인 학생이 그저 신기했다. 더군다나 K-Pop이 한창 시작하고 있을 무렵,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가 몇 달째 1위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으니, 더욱 신기했을 것이다. 



2007년 태국 거리엔 온통 슈퍼주니어 노래와 사진이었다.




당연하게도 태국 학생들은 외국인을 대하는 데에 상당히 미숙했다. 처음 입학했을 땐, 쉬는 시간마다 각 반에서 나를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항상 한국에 대해 얘기해야 됐으며 쉴 틈 없이 한국말을 시키거나, 나의 어리숙한 발음을 이용해 특정 태국어를 말하게 했다. 역시 대부분은 욕이었다. 운 좋게 친구들을 잘 만나 반 친구들과는 원활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다른 학생들은 아니었다. 내 이름을 모르는 (설령 이름을 알 지라도) 다른 학생들에겐 까오리 (한국)이라고 불렸다. 그 정도면 다행이었다. 대부분은 나를 까오라오 (태국의 소고기 국)이라고 불렀으며 그저 까오리 (한국)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지나가는데 손가락으로 쿡 찔러보는 학생도 많았다. 심지어 나를 따띠 (찢어진 눈)이라고 부르던 선생도 있었다. 평소에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던 선생님이었다.


특별한 시선과 관심을 질투했던 것일까, 쉬는 시간 복도나 운동장을 지나갈 때면 들리게 욕을 하거나 도발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선배 중엔 나와 태권도 겨루기를 하자는 핑계로 나를 방과 후 운동장으로 불러 싸움을 건 적도 있었다. 


그 당시엔 힘들고 원망스러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학생들은 악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몰라서, 신기해서, 특별해 보여서, 재밌어서,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었던 것 같다. 실제로 위의 상처되는 장난을 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나에게 친절했고 우호적이었다. 우리나라도 정작 10년 20년 전에는 이랬다고 하니, 정말로 그저 "몰라서" 그랬을 수 도 있다. 그런 식으로 나를 부르면 안 되는 거 몰라서, 손가락으로 찔러보면 안 되는 걸 몰라서, 태국말로 욕을 시켜보면 안 되는 걸 몰라서.


나중에 방콕에서 살아보니 더 납득이 갔다. 방콕은 세계 최고 관광도시 중 하나이고 자연스럽게 전 세계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위의 인종차별적인 모습들은 방콕 사람들에게서 비교적 보기 드물었던 이유는 바 그들은 인종차별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구글에서 발췌해온 내가 다녔던 학교, 롱리안 아쌈찬 우본 라차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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