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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잇 선 Sep 26. 2021

롯데 한복판에 스타벅스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수요일, 요즘 핫하다는 롯데 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에 다녀왔습니다. 주차장 들어가는 길목부터 꽤 오랜 시간 차가 막히더니 내부 역시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글바글한 인파 속을 헤집고 들어가자 곧바로 눈에 띄는 매장이 있었죠. 바로 스타벅스였습니다. 스타벅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1층 중앙 홀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스타벅스는 롯데쇼핑의 오랜 라이벌, 신세계 이마트의 자회사죠. 몇 년 전 롯데쇼핑 홍보팀 직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적진에 가서는 식사도 안 해요. 왜 남의 회사 매출 올려줍니까?"


지난달 초 오픈한 경기 의왕 소재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 롯데의 변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콧대 높고 폐쇄적 기업 문화로 기자들에게도 빈축을 샀던 롯데였습니다. 그런 롯데가 라이벌 회사 커피 브랜드를 가장 공들여 만든 아웃렛에 입점시키다니? 그것도 가장 좋은 자리에,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길목에! 심지어 롯데의 커피 브랜드 엔제리너스는 같은 쇼핑몰 2층 구석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제가 그곳을 방문했던 그 시각, 스타벅스는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엔제리너스는 테이블 절반 가량이 비어 있었죠.


집에 와 기사를 찾아보니 롯데쇼핑 역사상 스타벅스를 입점시킨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또 비슷한 시기 오픈한 롯데백화점 동탄점에도 스타벅스가 입점했다고 합니다. 이곳 역시 롯데가 작심하고 만든 매장으로 알려져 있죠.


롯데는 한국의 오랜 유통업 강자였음에도 이커머스 대응에 늦었습니다. 최근 수년 간 큰 매출 하락세를 겪고 있죠. 2016년 24조원이 넘었던 롯데쇼핑 매출은 2020년 약 16조원으로 30% 가량 줄었습니다. 2017년부터 이어진 적자도 4년 째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순손실은 무려 7000억원에 육박했죠.


그룹 본체인 유통업에서 위기가 심화하자 신동빈 회장은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요즘 신 회장은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자주 질책을 쏟아낸다고 합니다. 부진한 계열사에는 강한 구조조정의 칼을 들이대기도 하죠. 롯데는 분명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실제 롯데는 최근 수년 간 부동산을 조 단위 매각했습니다. 또 지난해에만 마트와 아웃렛을 포함해 운영 중인 매장 100개 이상을 폐점시켰죠. 롯데백화점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합니다. 올 상반기엔 그룹 2인자였던 황각규 부회장이 퇴임한 것을 비롯해 핵심 임원들 여럿이 옷을 벗었습니다. 지난달엔 국내 최대 가구회사 한샘 경영권 인수를 위해 전략적 투자를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롯데그룹 CF를 보면 젊은 느낌이 물씬 묻어납니다.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는 '롯데답지 않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죠. 저도 그 말에 공감합니다. 기존 롯데몰들은 좁은 공간에 매장 수십 개를 몰아넣는 극강의 효율성을 자랑했죠. 하지만 타임빌라스를 방문해 본 저의 첫 느낌은 '여기가 진짜 롯데몰 맞아? 현대백화점 같은데?' 였습니다.


롯데의 변신은 과연 성공할까요? 그룹 창업주였던 고 신격호 회장이 별세한 뒤 변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창업주는 아흔이 될때까지 권력에서 손을 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2세 경영권 다툼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도 했죠. 신 회장이 경영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한 근 1~2년 사이, 적체됐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정리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최근 론칭한 롯데그룹의 TV광고. 창립 이래 처음으로 그룹 CM송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튜브 조회수가 급증하는 등 젊은층에서도 호응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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