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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미의 정원 Jun 26. 2020

가드닝으로 매일 한 뼘씩 자연의 리듬에 다가가기

언컨택트 시대의 정서발달과 가드닝



풀향기


 커뮤니티가든에 도착했습니다. 자전거에서 내리니 향긋한 풀 향기가 나를 반깁니다.


 ‘그래, 이거야!’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목에서 터져 나옵니다. 옆에 있던 아이에게도 물었습니다.


“너도 풀향기 맡았니?”

“응, 좋더라.”


아이도 나처럼 느꼈나 봅니다. 이 알싸한 풀향기 하나로 코 끝의 감각이 살아나고, 처진 어깨가 다시 일으켜 세워집니다.



포스터 컬렉티브 커뮤니티가든 전경

 

 가드닝 루틴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바뀐 일상에 적응해가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처음엔 불안과 싸워야 했고, 그다음엔 대책을 세우기에 바빴고, 이젠 너무 많은 불확실성 앞에서 무력감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감정의 폭풍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내가 하는 방법 중 하나는 매일 가든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아들과 나는 커뮤니티가든에 물을 주러 집에서 꽤 먼 곳에 있는 그곳으로 매일 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회적 활동이 멈춘 요즘 이것은 우리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차 기름값도 아끼고 대기오염도 줄이고 또 운동도 할 겸 거의 자전거로 다니고 있습니다. 왕복 12km이니 짧은 거리는 아니지요.



자전거로 커뮤니티가든에 다니고 있어요


 11년 차 초보 도시농부


 그런데 날은 점점 더워지고, 더위 속에서 자전거 타는 일이 힘들어져가자 이 루틴에 대한 아이의 볼멘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아이도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어야 이 루틴을 지속해나갈 수 있겠지요! 아이에게 설명해줄 그 이유들을 찾다 보니 새삼 나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왜 가드닝을 하는가, 가드닝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고 말입니다.


 내가 가드닝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이가 생기면서부터입니다. 가드닝을 하면 비록 도시에서 아이를 기르더라도 그걸 통해 아이에게 자연의 감성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방울토마토와 고추를 함께 심은 화분 하나였습니다. 올 해로 벌써 11년째네요.


 그동안 장소는 여러 번 바뀌었고, 가꾼 식물의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혼자 하다가 공동체 농장에도 참여하고, 한국에서부터 캐나다의 커뮤니티가든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수확물을 이웃들과 나누기도 했고, 팔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드닝을 통해 다양한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단체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일에 시큰둥하던 내가 오이꽃 진 자리에 난 어린 오이를 보며 시노래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장소가 어디든, 규모가 크든 작든, 씨앗과 땅과 하늘이 이끄는 길을 따라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가드닝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육적 의미와 경험에 중심을 둔 가드닝이어서 농사 기술면에서는 별반 내세울 게 없는, 그래서 가드닝 11년 차에도 여전히 초보 같은 도시농부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늦게 시작한 해와달과여름이 텃밭의 6월


아기 로빈새


“엄마, 좀 쉬었다 하자!”

“그래.”


 밭에 물을 주고 잠시 쉴 겸 농막에 들어섰을 때 바닥에 죽어있는 아기 로빈새를 보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머리 위 농막 대들보에 아기새 세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로빈새 둥지가 있었습니다. 죽은 새는 아마 여기서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가까이에 있는 작은 나무 아래에 그 새를 묻어주었습니다. 잠시 후 부모 로빈새가 입에 벌레를 물고 둥지로 날아왔습니다. 부모 새는 먹이를 달라고 요란스레 지저귀는 아기새들을 앞에 두고 먹이를 입에 문 채 얼어붙은 듯 한동안 멈춰 있었습니다. 아마 아기새 중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부모 새가 확인한 후에 죽은 아기새를 묻어도 되는 거였는데‥‥.’


아기새를 찾아다닐 부모 새 생각을 하니 나의 짧았던 생각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미안해, 로빈새야!”

“아니야 엄마, 남은 아기새들이 부모 새한테 얘기해 줄 거야.”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아들이 옆에서 이렇게 나를 위로해줍니다. 이제 막 새로운 생의 바퀴가 시작되었는데 꽃도 못 피우고 떠난 가여운 어린 생명이 자연으로 잘 돌아가길 바라며 잠시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나무 곁에 아기로빈새를 땅에 묻고 평화를 기도합니다


가드닝과 아이 기르기


  올 해는 우리 모두에게 도전의 해입니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물으며 우리의 일상을 본질적인 것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나에게는 가드닝입니다.


 가드닝은 다음 세대를 기른다는 점에서 아이 기르기와 닮아 있습니다. 아이를 기르고 돌보는 부모의 역할을 수행해내는 데 있어 자연은 나에게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씨앗이 싹트고 자라고 열매 맺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성장과 쇠퇴의 과정은 양육의 방향을 정하는 데 있어 영감과 자극의 원천이 되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의 리듬을 따라가야 하는 가드닝을 통해 몸과 마음의 생기를 유지하는데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펑크 난 타이어 같던 나의 발걸음은 땅을 꽉 움켜쥔 풀들을 보며 조금씩 힘이 붙었고, 새싹이 뻗어 나오는 모습에 아이는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땀 흘린 노동 후에는 마음의 먹구름이 희망의 샘물로 씻겨져 있곤 했습니다. 자연의 관점으로 관계를 바라보면서 자잘한 감정의 기복에도 보다 덜 매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가드닝은 그동안 자연의 리듬과 우리 가족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루틴이었고, 판데믹 속에서 그 가치와 의미를 더 되새겨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를 거라고. 아이들의 교육 방식도 달라질 거라고. 그 변화의 중심은 디지털화이겠지요. 하지만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우리의 소통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이지 우리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 앞에서 쫄지 않으려면 본질에 대한 통찰이 필요합니다. 교육면에서 보자면 정서발달은 여전히 인간발달의 본질 중 하나이며 그것을 키우기 위해서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교육 매개체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족이 함께 식물의 성장을 돌보고 가꾸는 가드닝은 정서적 균형이 깨지기 쉬운 온라인 디지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의 정서발달뿐만 아니라 부모의 심리적 안정까지 기대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입니다.



어린 콩이 세상에 첫 잎을 냈습니다


더 큰 자연의 품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가 멈췄습니다. 숨이 끊어진 채 길 가에 드러누운 파란 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블루제이였습니다.


"엄마, 오늘따라 죽은 새를 많이 본다 그치?"

"그러게. 그동안 우리 주변에 많았는데 우리가 못 봤던 걸까, 아니면 오늘만 이렇게 많은 걸까?"

"글쎄..."



트랙을 잃어버린 블루제이

 

 땡볕에 드러누운 게 안쓰러워 나뭇가지로 새를 들어 올려 근처 숲으로 보내주었습니다. 트랙을 잃어버린 영혼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자연이 잘 거두어주기를 빌며 우리는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동안 많았는데 내가 못 봤던 건지, 아니면 오늘만 유난히 많은 건지‥‥.’


집으로 오는 내내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언컨택트 시대에 유용한 가드닝을 통한 정서발달 교육의 팁들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아이와 함께 자연의 이야기를 듣고, 자연에 말을 걸고, 자연 속에서 더 큰 우리를 발견해가는 여름이의 가드닝 여정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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