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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22. 2020

보이지 않는 여자들_Invisible Women

심심해서 읽는 책1 

 "저는 왜 여자들이 그렇게 피해받는다고 생각하며 사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제 세대에는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이 대우받고 자랐거든요. 그런데 차별 받았다며 불만인 여자들을 보면, 이해가 안돼요. 그래서 전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너무 싫더라고요."


 동갑내기 남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를 띵.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반응에 뭐라고 대꾸할 말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대놓고 이야기 하진 못했지만, 가장 어이없었던 지점은, 대학을 막 졸업한 그가 우리 학교에 임용이 되었을 때, 비슷한 점수대의 후보군 중에 그가 선택되었더 것은 그가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노력하고 무관한 '성별'이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알 리가 없을 것이고 최종 관문까지 갔다가 미끄러진 여교사도 마지막엔 그녀의 실력과 상관없는 '성별'이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다는 것도 모른 채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 터이다. 

  하도 세상이 바뀌었다길래, 정말로 그런 줄 알았더니만 '여자'로서 살아가는 세계는 다른 것들에 비해 변화의 속도가 참 더딘 것 같다. 

 얼마 전엔 남편의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뽑는데, 사장 면접을 앞둔 최종 후보 5명 가운데 1명이 남자였단다. 팀 내부에서 '남자는 꼭 한 명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결정적 실수만 없다면 그 남자는 뽑기로 거이 내정이 된 상태였단다.  3명의 사원을 뽑는데 가장 마지막 문턱을 그 한 명은 '남자'라는 이유 때문에 무사히 통과하고, 나머지 네 명의 여자들은 남은 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 경쟁에 참여했던 어느 누구도 마지막에 '성별'이 그들의 취업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곤 차마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반대의 상황으로, 우리 학교에서 교사를 뽑는데 '여자'라서 뽑혔다거나, 남편의 회사에서 최종 후보 5인 중 1명만이 여자였을 때에도 '여자'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선발의 잣대를 적용할까? (이런 상황이 된다면 '역시 여자보다 남자가 실력이 낫나봐.'라는 말을 누군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나.


 우리는 이제, 여자와 남자가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착각 속에들 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예전에 비해 명시적으로 여자를 차별하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러나 남녀의 차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곳들, 우리 삶의 구조의 속을 세밀하게 파고 든 고정관념과 편견들은 여전히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 우월성을 부여하는 기재로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모르거나 모르는 척 해왔던 것일 뿐. 당장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러나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기에 의식하지 않으면 정말 보이지가 않는다. 남자의 눈에는 물론이고, 그 차별의 희생양이 된 여자들의 눈에도. 그래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와도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잦아들기 일쑤고, 일부러 의식하지 않는 한 알기도 어렵다. 남편 회사의 채용 과정을 듣고 너무나 분해, 친하게 지내던 남편 회사의 '여자' 후배에게 나의 분노를 털어놨을 때의 반응. 

 "언니, 근데 저도 사실 저희 팀 뽑을 때 그랬어요. 점수 높은 애들이 다 여자밖에 없어서 한동안 여사원만 뽑았더니 여자 특유의 꽁하고 서로 의식만 하고, 팀 전체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지들만 생각하며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다음에 사원을 뽑게 되면 꼭 남자를 뽑자고 저희 '여자' 선배와도 이야기 했었어요. 남자만의 그 능글거리면서 조직과 융화되는 모습이 필요했거든요."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판단과 결정일까. 이미 본인이 여자인데,  본인은 여자여도 없는 단점이지만 후배들은 여자로서의 단점이 있는 것 같다? 

 함께 살아가는 누구나 다 개별 성향이 있고, 거기서 파생되는 장단점들이 있다. 그 중 개별 여성이 보이는 약점들은 '여성 집단'으로 치환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남성 집단'으로 치환되는 것들은 개별 남성의 '장점'인 경우가 많다. 사실 남편의 회사에서도 뭔가 큰 사단이 나는 경우들을 보면 '남성'이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때는 결코 '남자들은'이라는 틀을 씌우지 않고 개별의 사안으로 판단한다. 


 진학 간담회에 가면, 대입 전형 중 '소프트웨어 전형'이라는 게 있는데, 그 부분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입학 사정관들이 남녀 학생의 격차가 정말 크다는 이야기를 한다. 남학생들은 이미 프로그램 언어 2,3종류는 능숙하게 다루고 개발자의 수준에 이른 경우도 보는데, 여학생의 경우에는 그저 컴퓨터에 관심이 있음 수준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학생들의 진학을 지도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소프트웨어 전형은, 남녀공학 대학보다 여대를 지원하는 것이 낫다는 비법 아닌 비법이 공공연하게 전해지곤 한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얼마 전 AI교육 관련 포럼을 듣다 사례 발표에 마침 남학생의 이야기들만 계속 언급이 되기에 여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컴퓨터 활용 능력 등 AI관련 분야 역량에 대한 성차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그런데 느닷없는 사회자의 반응. 

 "아, 사례에 남학생만 등장해서 불편하시다고 합니다. 발표자 분께서 질문하신 분께 사과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내가 삶 속에서 느끼고 있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여자와 남자가 어떻게 분리되고, 남자가 '디폴트'값으로 존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시 되고 있는 구조 속에서 여자가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알려준다. 하다못해 제설작업에 바탕이 되는 사람들의 동선도,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성들'에 편향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이 '보이지 않는' 속에서 나는 내 학생들을, 그리고 내 딸들을 어떻게 보이는 존재로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여자로서, 여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딸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의식을 하고 살아가는 중에도 차마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벽들을 만나게 된 기분이다. 답답하지만 그 벽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깨뜨리고 넘어서려는 노력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계속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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