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Jan 05. 2021

1월 4일

 내가 태어난 날이다. 겨울 방학이 한창일 때, 연휴의 뒤끝. 그래서 어려서부터 내 생일은 그냥 자연스레 묻혀 지나가는 날이었다. 지금처럼 온갖 SNS에서 생일이라는 걸 동네방네 광고하지도 않고, 휴대 전화도 없던 시절이니 아무도 내 생일을 굳이 묻지 않았고, 나도 일부러 알려준 적이 없다.  한번은 그게 못내 신경이 쓰이셨는지, 엄마가 겨울방학식날 친구들을 모아 파티를 열어 주신 적도 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원래 그랬던 건지, 선후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난 계속 기념일을 기념하는 것에 딱히 의미를 두지 않는 성인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올해는 겨울방학이 뒤로 미뤄진 탓에 내 생일은 학기 중인데다 새해 첫 업무 개시일이며 수도권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시작되는 날이 되었다. 다들 갈 곳이 없으니 집안에서 휴대전화만 붙들고 내 생일을 카운트다운이라도 하는 것처럼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자정무렵부터 4일에서 5일로 넘어가기 직전까지 하루종일 카톡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날아 들었다. 나만큼이나 기념일에 무감한 남편 빼고 내 휴대 전화 연락처에 들어 있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메시지를 받은 건가 싶을 정도였다. 

 나역시 메시지들에 답을 하느라 아침부터 전화기를 계속 손에 들고 있었다. 연휴의 길이는 출근의 괴로움과 비례하는 법, 제아무리 새해 첫 출근길이라 해도 싫은 마음을 달래가며 꾸역꾸역 학교에 도착했건만,  출근하자마자 옆 자리 선생님과 수다를 떨며 소독 티슈로 책상을 닦다 보니 내 자리에 비어 있는 노트북 거치대가 눈에 들어 온다.  나는 짐을 안 챙겨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가 안되느니 귀찮더라도 필요가 있어 보이는 모든 것들을 짊어지고 다니는 매시멀주의자다. 요 며칠 갑자기 학교 안에 확진자가 발생해 셧다운된다든가,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해 재택근무로 전환되는 일에 대비한답시로 업무용 노트북을 싸들고 다니던 차였다. 출근 하는 도중에 노트북을 안 챙겨 집에 돌아가서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출근할 때까지 노트북의 존재를 까맣게 잊었던 것은 처음이다. 이게 다 아침부터 내게 온 생일 축하 메시지 때문이다. 

 학년 부장 선생님께 여차저차해 노트북을 가지러 다녀오겠다고 하니 그냥 집에 가서 오지 말라고 하신다. 안그래도 재택 근무를 권장하는 시기에 노트북 하나 때문에 집에 갔다가 다시 오는 건 너무 지나치다고. 급한 업무도 없고 몇 가지 일들은 집에서 처리해도 충분하다고. 민망한 마음에 대여섯 번을 학교에 오겠다고 얘기했지만, 내 부탁(?)을 딱 자르셨다. 

 "잠깐 앉아서 차나 드시고 좀 쉬시다가 들어가세요."


 한 시간 가량을 멍하니 앉아 휴대 전화만 만지작거리니 어서 가라며 등을 떠미셨다. 

 그 사이 또 친했던 선생님들은 생일이랍시고 선물과 인사들을 건네 오니, 그것만 받고 먹튀를 감행한 셈. 


 월요병이 유달리 심한 동료 선생님은 신박한 퇴근 방법이라며 집으로 향하는 나를 너무나 부러워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왔건만, 우리집은 겨울 방학을 맞이한 아이 두 명 때문에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짐들을 밀다시피 해 겨우 자리를 확보하고 업무 태세로 앉았는데 애들이 싸우는 소리, 엄마가 애들을 혼내는 소리에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결재를 올리다가 두 번이나 다른 선생님의 타박을 받고 서 겨우 무사통과되었는데, 그 사이 오전 시간이 다 날아가버렸다. 오후도 뭔가 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근무 시간이 끝날 무렵 둘째는 휴대 전화를 가지고 나한테 뭘 보여준다고 하다 전화기를 떨어뜨려 액정이 깨져버렸다. 집 근처 수리점을 찾았더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당분간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참을 더 가서 수리를 받아 왔다. 수리비로 몇 만원이 날아갔다. 

 그러고 보니, 퇴근하면서 연가를 쓰고, 연가를 썼는데도 나의 행각이 찔려 근무 시간까진 책상 앞에서 업무 모드로 있었으니 연가도 하루를 날려 먹었다. 

 

 새해가 되며 맞은 내 생일, 내 삶의 신조와도 같은 '인생지사 새옹지마'와 같은 날들을 보냈다. 뭐가 복이 되고 화가 될지 알 수 없는 삶. 한 발짝 멀리서 보면 별 거 아닌 문제들. 그저 그 순간을 살아내면 되는 일들. 그렇게 한 해를 평온하게 보내리라는 다짐. 


내 삶이 나에게 준 생일선물이다.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의 실수 앞에서 취해야 할 태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