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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희 Oct 01. 2019

피터는 왜 미트볼을 싫어할까?

긴 노동시간에 잠식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여기와 살면서, 한국사람들이든 스웨덴 사람들이건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 주제가 있다.

바로 "음식"이다.

음식 이야기만 나는 쉼 없이 이야기를 한다.

스웨덴에서도 한국 음식점들이 있고, 특히 비빔밥, 불고기, 삼겹살과 쌈장, 그리고 김치는 많이 알려진 음식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 음식은 맛도 맛이지만 건강한 음식으로 인식이 되고 있다.


그날도 나는 산책하다 만난 이웃인 카롤리나와 피터와 함께 음식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이야기의 중심에는 음식으로는 빠질 수 없는 한국 대표 나와 역시 만만치 않은 전통 음식 문화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대표 카롤리나가 주로 이야리를 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집에 뭐있다고 자랑하는 어린아이들 마냥 우리는 급기야 서로 휴대폰으로 음식 사진까지 찾아대며, 자존심 대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신경전 사이에는 스웨덴 아저씨 피터가 끼여있었다.


피터는 현재 구직 중이다. 오래 다녔던 회사 에릭슨의 구조정으로 정리 해고가 되고, 실업 수당을 받으며 현재 교육을 받고 있다. 실직 중이긴 하지만 실업 수당을 받고 있어서 그런지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이 시간을 피터는 상당히 여유롭게 지내고 있었다. 타고난 성품이 여유로운 사람 같기도 했다.

스웨덴 나무 마냥 큰 키의 피터 아저씨는 상당히 수줍음이 많다. 웃을 때도 꼭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곤 하신다.  피터 아저씨는 현재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으시다. 슬하에 세 명의 자녀들이 다 독립을 했고,  대학을 가서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는 막내 딸과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 스웨덴 아저씨, 피터. 그날 우리는 우연하게 동네 공원에서 만났다.


카롤리나와 은근히 기 싸움을 벌이고 있던 나는 문득 피터 아저씨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하다 우리를 만나 이게 무슨 봉변이가 싶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에 나는 피터에게 스웨덴 전통음식은 뭐가 있는지 물어봤다.

"글쎄.....뭐가 있지?"

나의 갑작스런 질문에 피터 아저씨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너희 나라 전통 음식이 뭐냐라는 질문에 쉴 틈 없이 음식 이름이 줄줄 나오는 나와 카롤리나와 달리 피터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 스웨덴은 그리 내세울 전통 음식이 많지 않다.

대답을 못 기다리고 카롤리나가 대답한다.

"미트볼 있잖아."

나는 속으로 '미트볼이 어떻게 전통 음식이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터는 웃으면서 " 그래, 미트볼이 있네" 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하, 미트볼~ 너 미트볼 좋아해?"

나의 질문에 피터는 예상외의 대답을 한다.

"아니 나는 미트볼 싫어해. 나 뿐 아니라 우리 형도 미트볼 정말 싫어해!!"


피터는 왜 미트볼을 싫어할까?

우리 딸과 친구들은 학교에서 미트볼이 나오면 참 좋아하던데...


피터의 부모님은 맞벌이셨다.

항상 회사에서 늦게 오시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피터 형제는 어머니가 냉동실에 만들어 놓으신 미트볼을 꺼내 데워 먹었다고 한다.

그때 하도 지긋지긋하게 미트볼을 먹어서 피터와 그의 형은 커서는 절대 미트볼을 먹지 않았다.


스웨덴 전통 음식이고 대중 음식인 미트볼을 싫어하는 피터 아저씨의 사연을 들으니,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두 형제가 냉동실에서 미트볼을 꺼내 먹으며 부모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 했다. 저렇게 큰 키를 가진 피터 아저씨가 왠지 안쓰럽다.


1960년대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급속하게 증가하였지만, 1965년 그리고 1968년까지도 스웨덴에서 공공보육시설에 다니는 아동의 비율의 전체 아동의 5~7%에 불과할 정도로 낮았다.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67.8%에 이르렀던 1975년 당시 0-2세 아동 중 보육시설 등록 비율은 13%, 3-6세 아동은 19%에 불과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짐에 따라 아동 보육의 공백은 스웨덴 사회의 큰 문제로 부각되었고, 1975년 스웨덴 정부는 공적 아동 보육시설 5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 보육시설 등록율은 전체 아동의 80%에 육박할 정도로 보육시설은 급속히 확충된다. 물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역시 1990년 당시 81.3%에 이를 정도로 높아진다.


1970년대 이후 맞벌이 부부는 스웨덴 사회에서 일상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와 가족의 변화 속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아이를 돌봐줄 보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스웨덴은 공공보육시설을 급속히 확장시킨다. 하지만 보육시설의 확충만으로 모든 돌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요새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보육기관 방문을 오시는 분들이 많다. 보육 서비스 관계자들이 주로 오셔서 기관 탐방을 하고 가신다. 스웨덴이 보육과 교육으로 우리 나라에 많이 알려져서 스웨덴 보육과 교육 시스템을 보기 위해 먼 이곳까지 오신다. 간혹 이 곳에 오셔서 어떻게 연이 닿아 나를 만나고 가시는 분들도 계시다.


그 분들이 오시면, 빠지지 않고 하시는 질문들이 있다.

스웨덴은 야간 보육을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으로 보면, 야간 보육 혹은 시간 연장 보육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것이다.


한국은 OECD국가 안에서 장시간 근무를 하는 국가이다. OECD 회원국 안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길게 노동을 하는 국가이다. 당연히 부모들의 노동시간 역시 길다.


현재 한국 보육시설의 종일제 반은 아침 07:30분 부터 19:30까지 운영된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시간과 퇴근 시간등을 고려해 보육시간의 연장에 대한 요구들이 많고, 현재 보육시설 운영시간은 종일제를 기반으로 시간연장보육의 경우 19:30분 부터 24:00, 야간 보육의 경우 19:30분 부터 익일 07:30까지 운영된다. 그리고 24시간 보육시설도 있다.


반면 스웨덴의 경우 보육시설의 운영시간은 06시 30분 부터 18시 30분까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은 스웨덴 보육 시설 중에도 한국처럼 시간 연장 보육이나 야간 보육이 있는지 궁금해 하신다.

하지만 스웨덴에는 이러한 보육시설이 없다.

물론 규정상 부모가 원하면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설은 스톡홀름을 기준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두 곳정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없어졌다. 이용율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 스웨덴에도 야간 근무를 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그분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야간 보육을 원하는 경우) 아동 돌봄미를 파견하는 방법이 선호된다. 아동 돌보미는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 주로 조부모나 친인척을 아동 돌보미로 지정해 쿄뮨에 신청하면, 쿄뮨에서 조부모나 친인척(부모가 선택한 아동 돌보미)에게 급여가 나가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역시 수요가 거의 없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급속히 증가하던 1970년 스웨덴에서도 보육시설의 시간 연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논의 안에서 스웨덴은 과연 보육시설 운영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아동을 기르는 부모들의 노동시간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된다.

사실 부모의 노동시간과  보육시설에 있는 아동의 보육시간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부모의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보육시설에 아동들이 있어야 하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길어지기 때문이다.


과연 아동은 얼마나 보육시설에 있는 것이 적당한가? 부모의 긴 노동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보육시설 시간 연장에 대한 논의는 부모의 노동시간과 아동의 복지적 측면에서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1975년 스웨덴 정부 보고서인 SOU보고서(SOU, 1975; 2005)는 부모의 노동시간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긴 노동시간으로 인해 부모가 아동을 돌볼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아동 역시 부모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너무 오래 아동보육시설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당시 50%의 아동들이 최소 9시간 이상 보유시설에 있으며, 이렇게 보육시설에 장시간 아동들이 있는 것은 아동 발달에 좋지 않음을 지적한다. 당시 이 보고서는 초점은 부모들의 장시간 노동시간으로 부모들이 정작 집으로 되돌아 갔을 때 시간과 힘에 부쳐 아동을 제대로 돌볼 수 없다는 점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아동 역시 오랜 시간 한 장소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동의 발달과 건강에 좋지 않다고 보고한다. 그러면서 이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부모 노동시간의 단축을 주장한다. 물론  당시 이 연구 결과는 정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SOU 1975, Förkolan arbetslid för smabarusföräldurar. Stockholm: Fritze

SOU 2005, Reformerad Föräldraförsäkring: kärlek, omuardnda, tyggbet.Stockholm: Fritze



하지만 1975년 이 보고서는 장시간 노동으로 지쳐 있는 부모와 아동의 현실을 직시했다고 본다.

노동 단축에 대한 경제적 손실과 같은 자본주의 시장의 패러다임이 아닌 장 시간 노동으로 지쳐있던 부모와 아동에 대한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춘 보고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시 이 보고서의 주장과 정책적 제안은 정부와 노동시장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 보고서는 당시 부모의 긴 노동시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스웨덴 사회는 보육 시간의 연장이 아닌 부모의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적 사용에 더 무게를 싣고 움직인다.

 

이후 스웨덴은 노동시간의 단축을 시행한다. 1970년대 주 40시간 노동시간에 대한 규정이 만들어지고 이에 맞는 노동시간의 단축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아동을 기르는 부모의 경우 주 40시간 안에서 탄력적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권리가 만들어 진다. 부모휴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제도이다. 물론 스웨덴 안에서도 노동시간의 단축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스웨덴은 현재 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37.5시간이다. 그리고 아동을 기르는 부모의 경우 본인의 노동시간을 유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있다.

1975년 한 보고서에서 제시하였던 노동시간 단축과 아동을 기르는 부모의 노동시간 유연제는 당시 사회 상황에서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스웨덴에서 그 모든 것들은 실현이 되었다.


일하는 부모들은 안다.

어린이집 끝날 시간은 다가오는데, 회사 일은 늦게 끝나거나 혹은 야근을 해야 할 때,

급히 남편(혹은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남편 역시 일이 많아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을 때 그 막막함.

기댈 곳이라고는 어린이집 선생님 뿐이라 선생님께 전화로 사정을 말하면서 연신 허리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하던 그 민망함과 죄송함.

그리고 어둑어둑한 어린이집 안에서 선생님과 단 둘이 놀고 있던 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뛰어 와 안길 때 그 작은 나의 아이를 꼭 품에 안으며 들었던 미안함.

친구들이 한 두명 집에 갈때 왜 우리 엄마 아빠는 안오는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딸 아이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미안했다. 내 몸도 지쳤지만,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아이를 생각하면, 지체할 틈이 없었다.

대충 챙겨 먹은 저녁상을 치우고, 아이를 씻기고, 자는 아이의 머리를 한 없이 쓰다듬으며, 아이 정수리에서 나는 비누 냄새에 그제서야 하루가 끝났음을 느끼곤 해다.


아마 많은 부모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긴 근무시간에서 그나마 기댈 곳이 보육시설이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들이 졸린 눈을 비벼가며 부모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지만 연장 보육과 야간 보육을 원하는 것이다. 그나마 기댈 곳이 어린이집 선생님이라서....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보육 시간이 아니라, 근무시간에 있다.


부모는 긴 노동시간에 지쳐가고 우리 아이들 역시 어둑어둑 해진 어린이집 교실에서 부모를 기다린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이런게 아닐 것이다.


유행어가 되어버린, 저녁이 있는 삶 혹은 워라벨은 근무시간 단축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올 7월 부터 300인 사업장을 기준으로 최대 노동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된다. 이 개정안은 5년간 긴 논의 끝에 통과된 것이다. 그만큰 일각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노동에 잠식되는 순간, 인간은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 도구로 전락한다.

그리고 노동에 잠식이 되는 그 순간 나 뿐 아니라 나의 아이들 역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사회시스템에 묶여 자랄 수 밖에 없게 된다.


지금은 연장보육 혹은 야간 보육이라는 서비스 자체가 필요 없게 된 스웨덴이지만,

피터 아저씨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1970년 스웨덴에서 맞벌이 부부는 장시간 노동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했고, 아이들은 텅빈 집에서 혹은 보육시설에서 부모님을 기다렸야 했다.


하지만 피터와 피터의 형은 그렇게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

그들은 1970년대 후반 도입된 노동시간 단축법과 다양한 근무시간 유연제(근무시간 유연제와 부모휴가 등)를통해 본인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비록 피터와 피터 형은 항상 늦는 부모를 기다리며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그들의 부모 세대가 도입하고 피터와 그의 형제 세대가 지켜내고 정착시킨 제도를 통해 피터 형제는 본인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1970년대를 살아가던 그 시대 스웨덴은 장시간 노동을 위해 보육서비스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근무시간 단축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은 옳았다.


긴 노동시간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선택을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그것이 옳다면, 우리는 꼭 해내어야 한다.


비록 지금을 부모로 살아가는 우리 세대는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 놓는다면,

우리를 어린이집에서 학원에서 혹은 텅빈 집에서 기다려 주던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은 우리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도 여기 스웨덴 부모들처럼 본인 아이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을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그렇게 일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 안에 살 수 있을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거창한 삶이 아니다.

단순하지만 소소한 그 일상의 행복감을 우리는 잊어 버렸다.

단순하고 소소하다고 생각한 그것을 찾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이제 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에게 찾아주자.

우리는 못 누렸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물려주자. 그런한 정책을 만들어 꼭 물려주자.

삶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물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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