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승희 May 04. 2020

새의 선물

코로나 19 이후의 세상

저 놈의 갈매기가 또 우리 집 베란다 모서리에 앉았다.

훠이~훠이 ~

요란스럽게 팔을 흔들며 내쫓기를 하루에도 몇 번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바닷가 바로 옆이라 그런지 갈매기들을 매일 본다.

처음에는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고 나는 갈매기의 모습이 보기 좋을 수 없었다.

파란 하늘과 그 하늘빛을 머금고 있는 바다 위를 시원하게 가르며 나는 갈매기들을 보고 있으면 저 비상하는 갈매기들이 조나단(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주인공 갈매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을 타고 각을 세우며 공중 부양을 하고 있는 갈매기라도 보고 있으면 멋있다는 생각에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갈매기들이 우리 집 베란다에 찾아올 때면 반갑고 그들이 신기할 수가 없었다 매서운 부리와 매끈한 하얀 가슴팍의 곡선은 유려해 보이기까지 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과 거센 바람을 가르는 나의 멋진 조나단들......


하지만 웬걸....

그 수많은 조나단이 우리 집 베란다에  하루에도 몇 번씩 똥을 싸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베란다에 갈매기가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급히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다.


그런데 나의 존재가 요 녀석들에게는 그리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는가 보다.

사람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는커녕 잘 도망가지도 않고, 심지어 어떤 녀석들은 내 소리가 시끄럽다는 듯 우리 집 방향으로 앉아 있던 자세를 바다 쪽으로 돌아 앉는 것이 고작이다.


괘씸하다.

아니 고작 새 주제 사람을 무시해?


조나단들의 배설물을 치우면서 이 놈들 다음에 오기만 해 봐라 가만 두지 않겠다고 이를 간다.


하지만 말만 이렇게 할 뿐이지 실상 나는 새를 무서워한다.

새를 내쫓을 때도 새 근처는 얼씬도 못하고 베란다 창문만 열고 손만 요란스럽게 내 젓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 아마도 내 모양새가 여기 갈매기들에게는 무슨 어설픈 춤 동작쯤으로 보이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례한 조나단들의 배설물을 다 치우고 베란다 화분들에게 물을 주고 있는데, 베란다 구석에 있는 빈 화분에 초록 풀이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잡초려니 하고 뽑아 버릴까 했는데, 빈 화분이기도 했고 이 사막에 잡초도 귀하다 싶어 물을 주었다. 그뿐이었다. 생각나면 한 번씩 물을 주는 것이 다였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 보니 어느덧 내 손 반절만 하게 자라 있었다. 그동안 식물 취급도 안 하고 신경도 안 썼는데 혼자 잘 자란 것이 신통하기도 하고 내 인심이 너무 박한 거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물을 아침저녁으로 주니 더 빨리 잘 자라는 것 같았다.

잎사귀가 더 커지고 가지가 자라더니 어느새 초록 잎사귀 사이로 하얀색 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요 녀석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 꽃 아래로 초록색 열매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완두콩만 한 것들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열댓 개가 열렸다.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방울토마토라 했다.

거기서 오죽 심심하면 방울토마토를 키우냐고 웃는 지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방울토마토를 심지 않았다.

지금 베란다에 키우는 화분들도 그냥 이 나라 환경에 강한 가시나무 정도이고 그나마 거의 죽어가는 형편인지라 나는 무엇을 키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방울토마토라니!

아무튼 초록색 열매는 점점 커지더니 노란색으로 익어가기 시작했다.

노란색 방울토마토가 열린 것이다!!


도대체 이 방울토마토는 어디서 왔을까?


바람에 실려왔다고 하기엔 우리 집 앞바다가 너무 넓다.

그리고 뒤에는 공허한 모래사막뿐이다. 이런 곳에서 토마토 씨앗이 바람에 실려 올 수 있을까?


설마 저 녀석들의 배설물을 통해 온건가?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조나단들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이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저 녀석들이다.

저 녀석 중 한 녀석이 토마토(갈매기가 토마토를 먹을까?)를 먹고 우리 집 빈 화분에 똥을 싼 것이다.

저 거만한 조나단 녀석들이 오래간만에 쓸만한 짓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렇게 날아온 토마토를 나는 아주 귀하게 키웠다. 햇볕이 강하면 혹 시들까 옮기고, 아침저녁으로 잎사귀에 붙은 벌레도 잡아주었다. 그렇기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나의 정성을 아는지 토마토는 실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을 주러 베란다에 나갔는데, 토마토 열매 중 몇 개가 터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는데 화분 주변으로 터진 토마토 잔해가 남아있었다. 누가 이랬을까?


범인은 작은 새였다. 


엉덩이가 노란색인 요 녀석들은 지저귀는 소리가 듣기 참 좋고 우리의 박새처럼 작고 귀여운 새였다.

바로 고 녀석들이 범인이었다. 책을 읽다 낌새가 이상해 쳐다보니 요 녀석이 베란다에 앉아 망을 살피다 총총 토마토 화분으로 다가가 잽싸게 열매를 부리로 쫒아 대고 있었다.

혼비백산해서 요 녀석을 내쫓긴 했지만, 우리 집 베란다에 맛있는 토마토가 있는 줄 아는 요 녀석은 매일 그것도 집요하게 우리 집 베란다를 찾아와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조나단들과 신경전을 벌이던 나는 이제는 저 작은 악당 녀석들과도 대치를 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은 똥만 싸고 가는 조나단과는 달랐다.

내 토마토를 노리고 있는 아주 얄미운 것들이었다.


급기야 나는 토마토 화분에 그물망을 씌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망도 무용지물이었다. 요 녀석들이 이제는 두 마리씩 덤벼 그물망을 부리로 쪼아 버리는 통에 그물망 안에 있는 토마토는 몸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 집 토마토는 잎사귀만 남았다. 토마토에 잎사귀만 남자 더 이상 그 작은 악동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 기웃거리는 녀석들이 있지만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다시 날아가곤 한다.

내가 저 작은 새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니 저 작은 녀석들이 여간 얄밉지 않다.


어차피 새가 가져다준 씨앗이었으니 새 모이가 된 것이 뭐 그리 억울한 거 싶지만 그간 토마토에게 공들인 것을 생각하면 작은 새들이 얄밉다.


내가 작은 새들을 얄미워하자 남편이 말한다.

왜 저 토마토를 갈매기가 가져왔다고 생각하냐고 토마토를 저렇게 좋아하는 작은 새들이 가져온 것일 수 있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왠지 갈매기와 토마토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저 작은 새들과 토마토는 어울린다.

그러고 보니 토마토를 키우는 내내 갈매기들은 토마토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정말 이 토마토는 저 작은 새들이 가져온 것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왜 나는 이 토마토가 내 것이라 생각을 했는지 싶었다.


내가 심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처음엔 잡초인 줄 알고 뽑아 버릴까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토마토인 것을 알자 180도 태도가 돌변해 극진한 대우를 한 것이 아닌가.

토마토를 먹어보고자 한 욕심으로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나에게도 억울한 일은 아니었다 싶다.

키우면서 신기하고 기뻤으며,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까지 했다.

그리고 첫 열매를 먹기까지 했으니 내가 손해 보았다는 생각은 가당치도 않다.

그런데도 나는 처음부터 이 토마토는 내 것이고  새들은 내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도둑 취급을 했다.  

어쩌면 양심 없고 얄미운 것은 저 새들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모든 것에 주인 행세를 하고 싶어 하는 내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이 적막하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사람들만은 생각일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람들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공기가 좋아지고, 바다가 깨끗해지고, 오지 않던 새들과 돌고래가 찾아오기 시작했다던 뉴스를 간혹 듣는다.

그런 뉴스를 보면,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자연이 우리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자문을 하게 된다.

 

인간의 발길이 뜸해지자 숨을 쉬기 시작한 자연의 모습에 그동안 우리가 너무 이 지구의 주인인양 행세하고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지구의 모든 것에 대해 너무나도 당연히 우리 인간은 우리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산 것은 아닐까?


TV에서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 이야기를 한다.

 

방역 의료 시스템의 변화부터 산업구조에 대한 변화 경제 구조와 고용구조에 대한 변화.... 그리고 우리 생활 패턴 역시 변화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변화 안에서 어떻게 혹은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를 꾀하고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적은 거 같아 아쉽다.

나는 코로나 이후 세상의 변화가 궁금하다.

그리고 이 변화 안에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생각 역시 달라지기를 바란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태도와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너무나 당연했던 사람 간의 친밀한 거리감, 너무나 당연했던 등굣길, 너무나 당연했던 일상과 사람의 소중함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인내하고 견뎌왔는지 잊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자연에 대한 태도 역시 바뀌기를 바란다. 누가 우리에게 주인 행세를 하라고 한 적이 없었던 동물에 대해, 공기에 대해, 물과 흙에 대해, 자연에 대해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변화되기를 바라본다.  


베란다 화분에  새로운 새싹이 또다시 움텄다.

이번에는 두 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찾는 바람은 어디로 갔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