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마무해야 할 일을 아직도 지지부진하게 붙잡고 있다. 며칠 잡고 있었으면 벌써 끝냈을 일이련만 늦장을 부리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제는 정말 연말에서나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딸아이 방에서 BTS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바쁜 중에도 내 어깨와 다리는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눈치없이 흥을 타고 있다.
'아.... 정말...'
" 애들아 소리 좀 낮춰!!"
딸아이는 듣지를 못한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일어나 딸아이 방으로 간다.
방문 앞에서 노크를 해도 듣지를 못한다. 방문을 열었더니,
맙소사 그 좁은 방에서 딸아이와 딸 친구들은 BTS 뮤직비디오를 틀어 놓고 춤을 추고 있다.
방이 비좁다 보니 한 명은 아예 침대 위에 올라가 있다. 방 안에는 열기가 가득하다.
정신없이 춤 연습을 하던 아이들은 놀란 내 모습에 본인들도 민망한지 웃는다.
땀 냄새가 가득하다.
창문을 열면서 내가 한 소리 한다.
" 엄마가 집에서 너무 뛰지 말라고 했지!!"
내 머리도 식힐 겸 그리고 이제는 내 키만큼 큰 아이들이 더 이상 집에서 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꼬드겨 데리고 나가기로 한다.
방금 전까지 BTS 춤을 추던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소리에 후다닥 신을 신고 따라나선다.
각자 취향에 맞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아이들은 동네 슈퍼마켓 앞 그늘에 쭉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이스크림을 고르면서도 그리고 심지어 먹으면서도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떠들고 웃는다.
에고 정신이 사납다. 뭐가 저리 신나고 뭐가 저리 할 말이 많을까?
신기하다.
매일 학교에서 만나고 학교 끝나고 또 만나 놀고, 주말에 약속 잡아 놀고 심지어 문자로 수시로 이야기를 하는데도 저렇게 할 이야기가 많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이들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만 나온다.
저기서 웃고 떠들고 있는 딸아이 친구들은 다 국적이 다르다.
미국, 영국, 인도, 남아프리카, 캐나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말레이시아, 그리스에서 온 아이들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가족은 더 다양한 국적을 갖고 있다.
인도계 미국인, 프랑스인 엄마와 레바논 아빠가 있는 영국 아이, 카자흐스탄인 엄마와 영국인 아버지가 있는 아이 등 정말 처음 만나면 이 아이가 혹은 이 가족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감을 도통 잡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이야기는 더 다양하다.
하루는 딸아이가 새로 전학을 온 친구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리스에서 온 아이라 했다.
아주 활짝 웃는 유쾌한 아이 었다. 그런데 그리스 아이라 하는데 생김새는 동남아시아 아이 같았다. 나는 부모가 동남아시아 분들이 신데 그리스로 이민을 가셨나 했다. 그런데 이후 만난 그 아이의 부모님들은 백인이었다. 그 아이의 부모를 보는 순간 나는 당황을 했고, 그 당황스러움의 이면은 부모와 가족은 무조건 혈연관계로 맺어져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었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한다. 다시금 내 안의 편견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맞다. 그 아이는 입양아이었다.
그 아이의 부모는 학교 행사에 항상 부모가 같이 참석을 하곤 한다. 항상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그 아이의 부모를 보면서 아이가 그렇게 활짝 웃는 것이 부모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친구도 잘 사귀고 지금은 딸아이 반에서 인기가 많은 아이가 되었다.
딸아이 친구들의 가족을 보면 이 아이 말고도 입양아 가족이 더 있다. 대부분은 같은 국적 혹은 같은 인종의 아이를 입양한 경우가 많아서 입양에 대해 본인 가족이 말하지 않고는 잘 모르기 쉽다. 그런데 여기서 만난 가족들은 서로 친해지는 사이가 되면 아이도 그렇고 부모들도 그것을 자연스레 말한다. 처음에는 그들이 자신들의 가족 이야기를 할때 어떻게 대꾸를 해줘야 할지 영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입양한 아이와 그들 부모는 닮아 보였다. 물론 같은 인종이라면 더더욱 그러겠지만, 그렇지 않다하더라도(그리스 가족 마냥) 그들의 표정이 혹은 분위기가 닮아 있었다. 사랑하면 닮는다 하지 않던가.
부모가 이혼을 해서 엄마 혹은 아빠 하고만 여기서 사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부모의 재혼으로 새로운 가족들이 생긴 아이들도 있다. 여기 아이들은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이 되면, 주로 본국으로 방학을 보내러 가곤 한다. 보통 조부모의 집을 방문하는데, 종종 이혼해서 지금은 재혼을 한 아버지의 집이라던지 새아빠의 부모님 댁(그러니까 아이에게는 새로운 할아버지 할머니 댁이 된다)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혼과 재혼으로 확대가 된 가족 안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가족 구성원들과 관계를 맺고 지낸다.
하루는 딸아이와 친구가 영화 구경을 한다기에 데려다주는데, 딸아이 친구가 휴대폰으로 한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휴대폰 속의 아이는 아주 어린 여자아기였다. 누구냐 묻자. 아버지가 재혼해 낳은 여동생이라는 것이다. 평소에 이 아이는 본인 아버지 이야기를 잘 안 하고 방학 때 아버지 만나러 가는 것도 무척 불편하는 기색이 역력한 아이였기 때문에 이렇게 이복동생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예상외였다.
하지만 아이는 본인의 여동생이 너무 이쁘다 했다. 본인은 여동생을 꼭 갖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사진 속 아이의 눈 색깔이 연 초록색인 것이 딸아이 친구와 닮았다.
'동생 눈이 너를 닮았어'
나의 말에 딸아이 친구는 수줍게 웃는다.
재혼을 한 아빠에 대해 이 아이는 아직 여러 상충되는 감정을 갖고 있다. 간혹 내비치는 그 아이 감정에서 나는 아직 이 아이가 본인의 아빠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 아이의 마음에 새로운 태어난 여동생은 이 아이의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이 들어온 것은 확실해 보였다.
딸아이 친구 중 내니(nanny 혹은 babysitter로 불리며 집안 일과 동시에 아이 돌봄을 봐주시는 분들로 이 나라에서는 이렇게 고용된 된 분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대부분은 동남아시아 여성분들이 이러한 일들을 하신다)와 사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그중 한 아이는 내니와의 관계가 각별한데, 벌써 내니와 산 세월이 13년 남짓이라 했다. 그 내니의 이름은 아넷(가명)이다. 가끔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오는 아넷을 만나곤 하는데,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표정이 다른 내니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니라기보다는 이모 같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거 같다. 딸아이 친구와 그 동생은 아넷을 정말 따르고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아넷에게는 고향(필리핀)에 13살 딸이 있다. 그리고 아넷은 자신의 딸이 젖도 떼기 이전에 여기로 와서 본인의 딸아이와 동갑인 우리 딸아이 친구를 길렀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아넷은 자신의 가족과 딸을 부양한다.
딸아이의 친구는 아넷을 이야기할 때 가족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넷은 가족이라고. 본인을 키웠고, 본인 동생은 세상 누구보다 아넷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며, 두 자매가 무서운 꿈을 꾸었을 때 베개를 들고 찾아가는 곳은 부모님 침대가 아니라 아넷을 품이었으며, 두 자매가 아플 때 가장 많이 밤을 지새운 사람이 아넷이었음을 두 자매는 안다. 그리고 아넷 역시 두 자매를 살뜰하게 챙기고 사랑한다. 가끔 딸아이 친구는 아넷의 딸 이야기를 하며 미안한 감정을 표시하곤 한다.
나는 아넷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아넷은 자신의 딸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국으로 와서 타인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자신의 아이와 또래인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녀는 어떠한 마음일까..... 그 감정이 느껴져 가슴이 아려오지만 그렇다고 감히 다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흔히들 가족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질문을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이 '혈연'을 바탕으로 같은 공간에 사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답이 과연 유효한지 모르겠다.
딸아이 친구들 중 가장 유쾌하고 재미가 있는 그리스 아이의 가족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 구성원이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이들을 '가족'이라고 부르는데 어떠한 이견을 달 수 없다.
엄마의 재혼으로 새롭게 만난 아버지 쪽 할아버지와 자신은 통하는 것이 많고 심지어 낚시를 좋아는 것도 같아서 같이 낚시를 자주 다닌다는 아이를 보면 나는 가족은 과연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그리고 가족의 유형은 얼마나 새로울 수 있을지 생각을 한다.
이혼한 부모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복동생은 스스럼없이 본인의 휴대폰 배경 화면 사진에 저장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다양함과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기복을 가늠하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을 한다.
자신의 내니를 가족이라 생각하는 딸아이 친구와 그 동생에게 가족은 또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13년간 본인의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도 여전히 가족을 위해 타국에서 본인 딸아이 또래를 정성으로 키우고 있는 그렇지만 정작 자신의 딸은 그렇게 키우지 못하는 아넷에게 가족은 무엇이고 어떠한 의미일지 가늠을 하기 힘들다.
이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토록 많은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곤 한다.
나는 아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다.
UAE는 자국민이 전체 인구 중 10% 밖에 안되고 90%가 외국 이주민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도대체 세상 어느 곳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가족 이야기는 이들의 국적보다 더 다양하고 다양하다.
가족을 공부하고 정형화된 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 적인 허상인지 공부한 나이지만,
이 곳에서 그러한 나 역시 정형화된 가족상에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매번 실감하곤 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는 더 다양한 문화와 종교 그리고 경제적 상황과 겹치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그 수를 왜 헤아려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형태를 보인다.
무엇이 가족이라 규정 조차 어려운 다양한 가족들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처럼 다양한 가족들이 모여 이루어져 간다.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 앞에서 과연 무엇이 가족이고, 가족은 어떠해야 한다는 가치나 생각이 얼마나 부질 없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가족'은 없다. '가족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본인들이 사랑하고 의지하고 믿는 '타인'을 '가족'이라 부른다.
나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싶을 때쯤,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아이들은 편의점 앞 계단 앞에서 어설프게 춤을 추며 웃고 있다.
너무나도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BTS 노래와 춤을 추고 있다.
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이들 곁으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이토록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다름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가족 이야기가 궁금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저렇게 다양한 국적과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한국어로 BTS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