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게 그렇게 베란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어제 심한 모래 바람이 지나고 나서 그런지 하늘이 한결 깨끗해진 느낌이다.
차 향도 날씨도 좋은 아침이다.
그런데 순간 머리 위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Good morning!!"
'아....'
우리 윗집 인도 남자다.
'아뿔싸.... '
테라스 나오기 전에 항상 윗집 식구들이 있나 없나를 살피고 나오는데 오늘은 차 향에 취해 그냥 나왔다.
이미 늦었다.
나를 본 위집 남자는 자기네 테라스에서 몸을 쭉 빼고 나에게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한 동안 비어 있던 윗집에 인도 가족이 이사를 온 것은 올 초였다.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인도 가족이 이사 오고 얼마 안 있어 코로나로 세상이 시끄러웠고, 급기야 우리가 사는 도시가 봉쇄가 되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인사 정도만 했었는데, 집에 갇혀 지낸 지 한 달이 넘어가자 틈만 나면 윗집 인도 가족들은 이야기를 걸어온다. 이웃끼리 간단한 인사는 하고 사는 것이 뭐가 어렵고 싫겠는가 싶지만 윗집 가족은 아주 수다스럽다. 그중 애 아버지가 가장 수다스럽다. 한번 걸리면 몇십 분씩 이야기를 거는 통에 정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더군다나 윗집은 머리를 숙이고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 쪽에서 이야기를 나누려면 계속 머리를 쳐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 역시 고역이다. 몇 번 잡혀 고역을 치룬 뒤로 나와 딸아이는 베란다에 나가기 전에 윗집 식구들이 있나 없나 살피곤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나는 방심을 했고, 그 틈에 윗집 남자에게 딱 걸린 것이다.
아침부터 내 정수리 위로 강한 인도 억양의 영어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나는 '마을'이라는 이름의 마을에 살고 있다.
아랍어는 전혀 모르는 나에게 우리 동네에 사는 아랍 사람이 아랍어 이름의 뜻을 영어로 알려줬다. 우리 마을의 이름은 우리말로 하면 '마을'이었다.
우리 마을을 바다 근처에 조성된 마을 중 하나이다.
우리 마을의 이름이 마을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는 옆 마을 이름을 물어 봤다. '찬란한 빛'이란다. 그 옆의 마을 이름 역시 물어 봤다. '빼어난 아름다움'이란다.
뭐야, 다른 마을 이름은 찬란한 빛이니 빼어난 아름다움이라니 하고 지었으면서 왜 우리 마을 이름만 마을이야.
아무리 그래도 마을 이름을 마을이라고 짓다니.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는 몰라도 성의 없게 지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시 아랍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우리 마을의 이름이 '마을'이라고?'
나의 반문에 그 아랍 사람도 자신의 말이 웃기는지 피식 웃는다.
그러고는 내가 사는 아파트 이름의 뜻은 기분 좋은 바람, 산들바람이라고 알려준다.
"Breeze"
마을 이름이 마을이라 실망했던 나는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마을의 이름은 성의 없게 지었지만, 아파트 이름은 잘 지었다 싶었다. 아파트 이름을 지은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아주 칭찬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오호, 이름의 뜻이 너무 좋네"
나의 만족스러운 표정에 아랍 사람도 웃는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 부는 바람이 좋다고.
아파트 이름의 뜻을 알고부터 나는 아침저녁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면, 여기 아파트 이름을 잘 지었구나 싶다.
마을이라는 이름의 동네 산들 바람 아파트에 살지만 나는 내 이웃에 누가 사는지 관심이 없었다.
물론 옆집에 영국인 노부부가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사 오던 날 인사를 나누었고, 간혹 오가다 마주치면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그것이 다였다. 우리 윗집에 누가 사는지, 그 윗집의 윗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었고, 만날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도시가 봉쇄되고, 집에서 생활한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 나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게 되었다.
두 마리의 고양이와 사는 영국인 노부부는 평상시에는 집에 사람이 없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게 사시는 분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웃집 영국 할아버지의 의외의 음악 취향을 본의 아니게 알게 되었다.
코로나로 집에 갇혀 지내면서부터 옆집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 시간에 베란다에 나와 운동을 하시곤 하신다. 어느 날 베란다에 나와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이긴 했지만 분명 한국 노래였다. 그것도 한국 걸 그룹의 노래 같았다. 이상하다. 내가 음악을 틀어 놨나 싶었는데 우리 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아니었다. 그 음악의 출처는 바로 옆집이었다.
딸아이 말로는 옆집 할아버지는 주로 레드 벨벳과 블랙 핑크 음악을 듣고 계신다고 한다. 자신처럼 블랙핑크를 좋아한다고 딸 아이가 좋아라 한다. 코로나로 집에서 생활하면서 옆집 영국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한국 걸 그룹 음악을 들으시며 운동을 하시고 테라스 건너편에 사는 나와 딸아이는 키득거리며 노래를 흥얼 거린다.
우리 옆집 영국 노부부 윗집에는 프랑스인 가족이 산다.
그 집에는 언제나 보면 기저귀만 찬 채 헝클어진 금발 머리를 산발하고 뛰어다니는 딸아이와 도통 딸에게 옷을 입힐 생각이 없어 보이는 부부가 살고 있다. 아이 엄마는 굉장한 멋쟁이다. 딸아이는 그 집 엄마가 모델 같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날씬하고 키도 크다. 솔직히 나는 그 프랑스 여자가 우리 옆집의 윗집인 줄 몰랐다. 같은 아파트 내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기에 여기 사는 줄은 알았지만 우리 윗층에 사는지는 몰랐다.
모델처럼 우아한 그 프랑스 여자는 대부분의 백인들이 햇볕을 좋아하는 것에 반해 햇볕을 싫어하는지 창이 엄청 넓은 모자를 항상 쓰고 다닌다. 베란다에 나올 때도 그 여자는 그 창이 넓은 모자를 쓰고 나오곤 한다.
수줍음이 많은 남편에 비해 이 프랑스 여자의 수다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우리 윗 집인 인도 가족의 윗집에는 바다 수영을 좋아하시는 운동 광 독일인 아저씨가 혼자 사신다. 독일 전후 베이비 붐 세대인 그 아저씨는 유쾌한 농담도 잘 하시고,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 꾼이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주로 나와 옆집 노부부는 청취자이고 인도 남자와 프랑스 여자가 말을 하는 편이고 가끔 독일인 아저씨가 웃음을 보태곤 하신다.
국적이 제 각각인 우리가 주로 나누는 이야기는 당연히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다.
언제 봉쇄가 풀릴지, 확진자 수가 증가하는 것에 대한 걱정부터 이 나라가 과연 코로나에 대응을 잘하고 있는지 걱정을 한다. 또한 각자 본국에 대한 걱정도 한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가 여전히 코로나와 고전 중 이기 때문에 다들 본국의 가족과 나라를 걱정한다. 그러면서 한국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물론 다 자기 나라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 남자는 항상 본인의 나라에 대해 아주 객관적으로 이야기 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던데, 그렇지 않는지.... 아니면 자신의 나라에 대해 더 이상 기대 할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인지. 인도 남자는 인도의 상황에 대해 냉담하게 이야기 한다. 인도 상황은 어쩌면 여기 모인 사람들의 국가 중 가장 최악인거 같은데, 인도 남자는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을 거라 이야기 한다. 그리고 실제 상황은 더 안 좋을 것라고 덧붙인다.
자신의 나라에 대한 실망이 얼마나 깊으면 저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각자 나라의 걱정도 하지만 요새 우리가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정리 해고 이야기다.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다 보니 이 나라에 나와 있는 외국 기업들이 정리 해고를 시작 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유 회사 사정이 안 좋다.
짙게 저물어 가는 저녁 노을을 바라 보고 있는데, 정유 회사 다니는 인도 남자가 영국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회사 사정을 묻는다. 인도 남자의 회사는 사정이 안 좋아져서 불안하다고 무겁게 이야기한다. 문득, 아이 둘을 키우며, 타국에서 해고 위험에 불안해 하는 윗집 남자가 안쓰럽게 보인다. 인도에서는 떠나고 싶어 나왔다는 저 남자 얼굴 위로 노을이 진다. 자신의 조국에서 떠나고 싶어 다른 나라를 떠돌아 다니는 그의 얼굴이 쓸쓸해 보인다. 정리 해고 이야기에 다들 조용히 노을만 쳐다본다.
'오늘 노을은 정말 아름답군요'
프랑스 여자가 말한다.
정말 아름다운 노을이다.
우리는 타국에 사는 이방인들이다.
각자 선택한 삶을 살고 있고, 지금은 다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상황 안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이방인들이고 서로에게도 이방인이다. 그리고 여전히 각자를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한 마음으로 이 상황이 끝나기를 그리고 이 끝이 해피엔딩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