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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in Jun 22. 2020

작은 식당 창업기

창업, 그 거창함 속에 담긴 소소한 일상 1

나는 경험 우선주의자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해서 실현하는 인간 유형이 아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다 길은 있다'라는 막연하고 무식한 마음가짐으로 일단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앞만 보고 돌진한다. 그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고 부끄럽지만 나의 창업도 이런 단순함에서 시작됐다. 창업을 꿈꿨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철저한 준비성은 없었다. 자본은 턱없이 부족했고 경험도 없었다. 나는 꽤나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여느 회사원들이 퇴직 후를 생각하듯 창업에 대한 막연하고 흐릿한 그림만 있었을 뿐이었다. 무턱대고 시작하기에 너무 무지했기 때문에  언젠가 일어날 일을 대비한다는 마음가짐과 주말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에 주말 직원으로 들어갔다. 평일에는 회사에 출근해야 하니 내가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얼떨결에 요즘 유행하는 N잡러가 되었고, 평소 운동으로 다져온 내 체력에 대한 맹신만이 존재했다. 일을 시작하고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지만 휴일 없이 주 7일을 일한다는 건 단순히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엄청난 멘털 훈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이렇게 참으로 나답게 창업의 첫 발을 내디뎠다. 


누군가가 왜 식당 창업이었냐고 물어본다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좋은 말들과 거창한 이유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내가 가진 기술이나 자본의 한계는 명확했고, 현실적으로 내 현재 위치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식당 창업은 포화 상태이지만 역설적으로 접근하기 가장 편한 아이템이었다. 정보도 많은 편이고. 개인적으로는 대학생 시절 끊임없는 아르바이트 내공으로 작은 식당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에 대한 경험이 있었고(물론, 고작 몇 시간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과 대표가 되어 사업체 전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다른 일이지만...) 나는 손이 빠르고 부지런한 타입의 인간이니 여러모로 나에게 딱 들어맞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주말 직원으로 3개월 정도 일 했을 무렵 내 막연했던 생각은 점점 뚜렷해졌고 확신이 섰다. 내 예상대로 나는 이런 일이 잘 맞았고 재미도 있었다. 역시, 경험이 최고다. 그리고 그 무렵 이 식당이 부동산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고 사실 여부를 물으려던 찰나 가게를 인수하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계약일이 언제인지 물었고 당장 내일 계약을 하기로 했다는 말에 "아직 계약 전이시면 제가 가게 인수하겠습니다."라고 홀린 듯이 내뱉었다(이건 말한 게 아니라 진짜 내뱉어버린 거다). 지금 되돌아봐도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그렇게 대책 없이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참으로 한결같은 방식으로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한 건 저지르고 말았다. 인생도 연애도 타이밍이라고 하지들 않던가. 때론 삶은 생각보다 더욱 극적인 순간들을 맞딱들이기도 하고 중대한 선택의 순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연이 개입되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내가 직원으로 있던 가게의 사장이 되었고, 현재 진행 중이다.


주변만 둘러봐도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듯싶다. 모두 각자의 이유들로 창업을 꿈꾸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임에는 분명하다. 나는 그래도 어느 정도 리스크를 줄이고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지만 온전히 처음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은 내가 거저 얻었던 것들을 모두 감수하면서 시작했을 거라는 걸 안다. 나는 운이 좋았고, 우연이든 필연이든 나는 그 운을 가질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었다. 결과론적으로 내 성향은 이럴 때 장점을 발휘한다. 생각만으로 끝내지 않고, 꿈꾸는 일 주변의 작은 일이라도 뛰어들어 시작해보는 점 말이다. 내 경험은 온전히 개인적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기 일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나도 여전히 초보 사장이고, 고단한 노동 후에 빈 가게에 덩그러니 앉아 버거움에 울기도 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이 비루한 경험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이렇게도 시작하는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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